틀딱충·맘충·개저씨.. 흉기가 된 '혐오 신조어'
은퇴 후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정훈(65)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노인 빈곤 기사와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네티즌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 중 하나가 "'틀딱충' 부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였다. 이씨가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틀딱충'은 노인을 조롱하는 신조어 중 하나라고 소개돼 있었다. '틀니가 딱딱거린다'를 줄인 뒤 누군가를 비하할 때 쓰는 '벌레 충(蟲)' 자를 붙인 것이다. 이씨는 "'ㄳ(감사)'나 'ㅇㅋ(오케이)' 같은 줄임말까지는 이해하겠는데, 혐오가 담긴 이런 표현도 신조어로 인정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급식충(학교 급식을 먹는 10대를 비하하는 표현)',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 또는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로 40~50대 남성을 조롱하는 표현)',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라는 뜻)'처럼 특정 연령층이나 성별을 싸잡아 욕하는 '혐오 신조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혐오 신조어처럼 남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정보를 담은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신고는 2012년 149건에서 지난해 891건으로 3년 만에 6배로 늘었다.
벌레 충자를 붙인 혐오 신조어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 베스트' 회원을 가리키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후 '맘충(극성 엄마)' '설명충(과도한 설명을 하는 사람)' 등으로 퍼져 나갔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지난 2011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블로그·트위터 등에 게시된 글을 분석한 결과 '일베충'은 85만 건 이상 언급됐다. '한남충'은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올해에만 18만 건 이상 쓰일 정도로 퍼졌다. '개저씨'는 2013년 188건 사용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엔 8만 건 가까이 쓰였다.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에도 다른 인종(人種)이나 피부색 등을 겨냥한 혐오 표현이 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을 성별이나 세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비하하는 표현은 외국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차별 언어'라는 책을 쓴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어는 사회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며 "현재 사용되는 '혐오 신조어'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치·사회적 집단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했다. 세대와 성별을 둘러싼 갈등이 '틀딱충' '한남충' 같은 혐오 신조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금기시 하는 미국·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아직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부 네티즌은 "혐오 신조어는 온라인에서만 재미 삼아 쓰는 표현"이라며 별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혐오 신조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정복 교수는 "ㅄ('병신'을 나타내는 말) 같은 표현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담긴 언어이지만 이제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며 "지금 유행하는 신조어들도 반성을 통해 걸러내지 않으면 일상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말은 물과 같아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라며 "10~20대만 탓할 게 아니라 미디어도 이런 신조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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