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서 이렇게 한 것인지 정말 알고 싶다"

2016. 10. 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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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의식불명 상태부터 영면까지…
고 백남기 농민 큰딸 백도라지씨 단독 인터뷰

<한겨레21>은 지난 10월4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씨를 만나 단독으로 2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백도라지씨는 지난해 11월14일 밤 9시께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의식불명 상태인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부터 영면 직전까지 목도한 일을 차분히 복기했다.

전날인 10월3일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백선하 교수가 “가족들이 적극적 치료를 원하지 않아 병사라고 기재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단독 인터뷰를 통해 백선하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병원의 석연치 않은 행태의 세부사항이 드러났다.

‘소생 불가’, 병원 옮겨진 날 의료진의 결론

10월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 정용일 기자

부친(고 백남기씨)이 쓰러진 지난해 11월14일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갑자기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와서 수술하자고 했다는데, 그때 상황을 다시 말해달라.

아빠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계신다는 전화를 받은 게 저녁 7시20분 정도였다. 7시30분께 출발했는데 병원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께였다. 택시를 탔는데 다 막혀 있어 경복궁까지밖에 못 간다고 했다. 지하철도 경복궁역에 서지 않고 무정차 통과했다. 그래서 경복궁역에서 서울대병원까지 걸어왔다. 그러느라 1시간30분이 걸렸다. 응급실에 도착한 게 밤 9시 좀 넘은 시간, 9시3~5분쯤이었다. 다른 곳에 있던 남편도 비슷한 시간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병원에 소생실·응급실·응급중환자실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엔 아빠가 소생실에 계셨다. 소생실에서 응급의학과 ㄱ의사가 나에게 “딸이냐”고 하더니 “엄마 안 오시냐”고 물어서 “안 오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빠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랐다. “안 오신다”고 했더니 “그래요? 그럼 엄마랑 통화를 해야겠다. 엄마가 보호자니까”라고 했다.

그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ㄱ의사와) 통화를 시켜드렸다. 엄마가 “사망하신 거냐”고 물었는데 ㄱ의사가 “심장은 뛰고 있어서 사망한 건 아니지만 가망성이 없다”고 답했다. 그다음에 ㄱ의사가 나를 불러 뇌 사진을 보여주면서 “출혈이 이 정도로 심해서 수술 자체가 불가하다. 아버님 못 돌아오신다. 신경외과에서 다 보고 갔다. 수술을 못한다고 결론이 내려졌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니 “일단 주말은 지내시고 월요일, 화요일쯤 집 근처 요양병원에 모시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없잖은가. 이미 수술이 불가하다고 하니까.

그런데 ㄱ의사가 “심폐소생술 할 거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심폐소생술이라는 게 심장이 멈춘 뒤로 5분 내에 심장을 압박해서 뇌로 피를 보내려고 하는 건데, 부친 같은 경우 이미 뇌 손상이 엄청 많이 돼 뇌로 피를 보낸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 갈비뼈만 부러진다. 심폐소생술을 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럼 저희도 안 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 뒤 나는 소생실에서 나왔다. 좀 있다가 아빠도 소생실에서 나와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에서 아빠 상태를 봤다. 겉모습만 봤는데 코랑 귀에도 피가 있고 혹시 다른 다친 곳이 있나 싶어 봤는데 딱히 다른 데는 없었다.

부친의 머리 상태는 어땠나.

출혈 때문에 베개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다친 부분이 어떻게 될까봐 만져볼 수는 없었다.

이미 당시에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가족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 당시에 수술도 못한다고 했으니까. 인공호흡기를 그때부터 끼고 있었다. 눈도 다 풀려 있고, 심장만 뛰고 있지 모든 게 다 멈춘 상황이라고 했다. 엄마도 그런 이야기를 ㄱ의사와 통화해서 다 들었으니까. 이후 ㄱ의사가 아빠를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고 해서 옮겼다.

“수술 자체가 연명시술이었던 것”

백선하 교수는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진 뒤에 나타났나.

ㄱ의사한테 얘기를 들은 게 밤 9시30분쯤이었다. 그리고 10시30분쯤 응급중환자실로 옮겼던 것 같다. 응급중환자실로 오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백선하 교수가 등산복 차림으로 있었다. 아빠 침대 옆에 서서 나를 불러서 “꼬집으면 약간 움찔하는 게 있다”며 “수술을 해보자”고 했다. 그전까지는 아빠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했었다. 눈도 다 풀려 있고, 여기(목 아래 부분)를 누르면 캑캑거리는 기침반사도 없고.

나중에 다른 신경외과 교수님한테 들어보니 꼬집어서 움찔하는 것은 척수가 끊어져도 그런 반응이 있다고 하더라. 아무튼 꼬집어도 움찔하는 게 있으니까 수술하자고 했다. 그런데 여기(10월3일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가 기자회견 때 배포한 보고서의 ‘진료경과’ 부분을 가리키며) 다른 게 쓰여 있다.

서울대병원 특위 보고서의 ‘진료경과’에서 2015년 11월14일 응급수술 관련 부분은 “내원 당시 환자는 혼수상태였습니다.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빛 반사, 통증에 대한 반응이 없었으며 자발 호흡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각막반사, 두부 움직임에 대한 동공반사, 기침반사 등 뇌간 기능은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었습니다”라고 설명돼 있다.

기침반사 각막반사, 두부 움직임에 대한 동공반사는 없었다. 백선하 교수도 수술 직후 우리에게 설명할 때 응급실에 실려왔던 초기에 아무런 반사가 없었다고 확인해줬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특위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마치 응급실에 아빠가 실려오셨을 때 기침반사가 있었던 것처럼 써놨다. 당황스럽다.

아빠는 꼬집었을 때 움찔하는 것밖에 없었다. 꼬집었을 때 움찔하는 것은 무릎을 치면 무릎이 들리는 조건반사 같은 것이었다. 의사들도 생체 징후 같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무튼 초반에 그것을 보고 수술을 하자고 했던 것이다.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수술동의서를 받으면서 “환자가 이 정도 상태일 때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는 교수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이건 생명 연장 의미밖에 없다. 소생할 수 없다.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설명해줬다. 수술 자체가 연명시술이었던 것이다.

아빠가 입원한 중간에 관련 서류를 떼려고 남편과 남동생이 서울 혜화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혜화경찰서 형사들이 “우리 서장이 되게 실력 있는 의사를 불러 수술하게 한 거다” “그분이 명의고 수술해서 살려놓은 거다”라고 얘기했다고 하더라.

우리는 그때만 해도 ‘아니, 경찰서장이 전화한다고 대학병원 교수가 밤중에 오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한 것과 관련해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니, 실제로 경찰서장이 전화해서 백선하 교수가 온 거였다.

경찰은 백씨 가족이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국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뒤 지난 5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백남기의 부상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당시 이 사건 대회 관련 지역 책임을 맡고 있던 혜화경찰서장의 근무를 종료시키고 곧바로 원고 백남기가 후송된 서울대병원으로 보내어 원고 백남기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조치했다. 혜화서장은 당시 주말 야간이어서 응급실 인턴밖에 없던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장에게 긴급히 협조 요청하여 서울대병원 신경과 최고 전문의인 백선하가 급히 병원으로 와서 백남기의 진료 및 수술 집도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적고 있다. 정용근 당시 혜화경찰서장은 지난 1월부터 청와대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수술 뒤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서 백 교수에게서 아빠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몇 번이나 “대뇌 절반 이상이 손상되거나 뇌뿌리가 손상되면 의식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아버지는 둘 다 해당된다. 의식이 깨어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이후에도 다른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이 누누이 “일어날 수 없다”고 얘기했다.

레지던트 의사들에게서 여러 차례 “장기가, 특히 신장이 나쁘면 약을 다 쓸 수가 없는데 아빠는 신장이 워낙 건강해서 제한 없이 약물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뇌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의 투여량을 높이면 장기에 무리가 가고 다발성 장기부전이 올 것이고, 결국 사망하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중에 처음 예상대로 진짜 신부전이 왔다.

의료진 의견과 결이 다른 특위 보고서

10월4일 고 백남기씨의 부인 박순례씨(가운데)가 ‘병사’로 기재된 사망진단서의 정정을 요청하는 문서를 접수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의사가 부친의 신장이 건강하다고 했다고.

중환자실에 와서 신경외과의 다른 레지던트들이 그랬다. 우리가 면회 때 들어가서 어떻게 되는 거냐, 지금 상태 어떠냐고 물어보면 ‘오래 버티신 게 아버님이 워낙 건강해서 가능한 거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지난해 12월 병원에서 뇌파검사를 하자고 했다. 뇌파검사를 해서 뇌사로 판정되면 장기 기증을 하자고 했다. 뇌파검사 결과, 오른쪽 측두엽에 뇌파가 미약하게 남아 있어서 뇌사는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 내가 생각할 때 아빠 나이가 많으신데 장기 기증이 가능한가 했다. 그때도 의사 선생님들이 “나이와 전혀 상관없고 장기 기능이 원활하면 얼마든지 기증할 수 있고, 아버지는 신장이랑 간이 워낙 건강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장도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고 했다.

어쨌든 뇌파가 보이니까 뇌사라고 판정할 수는 없지만, ‘뇌사랑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특위 보고서에는 ‘식물인간 상태’라고 했는데, 그것도 당시에 설명 들었던 부분과 다르다. 식물인간 상태는 인공호흡기 없이 스스로 호흡하는 거라면서, 아버지는 자발 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도 못 된다고 했다.

또 식물인간 상태는 소화나 배설, 체온조절 같은 대사작용이 정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처음부터 체온조절이 안 됐다. 뇌가 부어서 뇌하수체를 누르니까, 뇌하수체호르몬이 안 나와서 소변량도 마음대로 나오고, 체온조절도 안 됐다. 열이 나면 선풍기 쐬고 열이 떨어지면 온풍기 쐬는 식으로 처음부터 인공적으로 체온을 유지했다. 심장 뛰는 것도 처음부터 심박 조절 약을 맞으셨다. 소변 조절이 안 돼 항이뇨호르몬을 투여받고 있었다. 당시 백선하 교수도 ‘식물인간도 안 된다’고 했다.

뇌파검사 결정은 백선하 교수가 했나.

그랬을 것이다.

서울대병원 특위 보고서는 뇌파검사 결과에 대해 “2015년 12월2일 뇌파검사 및 뇌전산화 단층촬영을 시행하였고, 뇌 부종 및 전반적인 심한 뇌기능 장애를 보였습니다. 이에 뇌사 상태는 아니지만, 지속적 식물 상태에 부합되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부검’ 얘기를 언제 처음 들었나.

혜화경찰서에 우리를 전담하는 정보관이 있다. 그분이 계속 병원에 왔다갔다 하고 거의 하루 종일 계시는데, 지난해 12월께 대책위 분들한테 “돌아가시면 부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얘기를 들었다. 그때쯤부터 부검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왜 7월과 9월 두 번 작성했나.

7월에 처음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할 때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이야기를 들었고 투석이 있었다. 인공호흡기는 아빠가 이미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심폐소생술은 잘못하면 갈비뼈만 부러진다고 설명을 들었던 터라 동의하지 않았다. 투석도 안 한다고 했다. 소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추가 수술이나 시술은 아버지에게 고통을 더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 선생님들께 여쭤봤을 때도 아버지 정도의 상태라면 의사들이 (연명시술을) 권하지 않고, 다른 보호자들도 (이런 경우에) 연명시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거 말고 나머지 항목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다. 우리는 연명시술 종류가 3가지인 줄 알았다.

우리가 아빠가 수혈받으시는 것을 보고 힘들어하자 레지던트가 마음 아파하면서 “피검사를 자주 한다.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냐”고 하니 “하루 세 번 한다”고 하더라. “아빠라서 그런 거냐, 아니면 이런 상태의 다른 환자한테도 세 번씩 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다.

서울대병원 특위 보고서에는 7월17일 첫 번째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할 때 가족이 승압제 사용을 원했으나, 두번째인 9월6일 연명의료계획서에선 가족이 승압제 사용을 거부했다고 나오는데, 서울대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그렇다. 7월 (첫번째) 연명의료계획서에 내가 엄마랑 서명할 때는 인공호흡·심폐소생술·투석에 동의하는지 묻는 항목만 있었고, 승압제·수혈·피검사 등에 동의하는지 묻는 내용은 아예 없었다.

이후 레지던트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ㄴ레지던트로 바뀌었다. 8월에 우리가 아빠 수혈 받으시는 것을 보고 힘들어하자, ㄴ레지던트가 마음 아파하면서 “피검사를 자주 한다.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냐”고 하니 “하루 세 번 한다”고 하더라. “아빠라서 그런 거냐, 아니면 이런 상태의 다른 환자한테도 세 번씩 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다.

그때 ㄴ레지던트가 “피검사, 수혈, 승압제 사용 등을 가족들이 거부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후 ㄴ레지던트가 새로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줘서 서명했다. 두 번째 서명할 때는 1번부터 3번까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투석이 있고 4번 항목에 피검사, 수혈, 승압제가 있었다. 두 번째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면서 ㄴ레지던트의 말대로 승압제, 수혈, 피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지만 (서울대 병원의 결정에 따라) 승압제를 계속 썼다.

연명의료계획서라는 게 이미 의사가 이 환자는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호자에게 알리며 제시하는 서류다. 다른 의사 선생님들께 이런 설명을 들었다. 결국 아버지는 처음부터 소생 가능성이 없으셨고 의사들이 연명의료계획서를 보여줬다는 것은 이제 정말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우리는 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병원이 보호자한테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을 때는,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데 필요한 의사결정을 보호자에게 맡긴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병원은 가족 의사와 무관하게 연명시술을 지속했다. 그래놓고 뒤늦게 가족 탓으로 돌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라면 물대포라고 적어 낼 텐데 위에서…”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재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서울대병원·서울대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가 배포한 조사 보고서. 정용일 기자

사망진단서를 쓴 ㄴ레지던트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ㄴ레지던트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괴롭히고 싶지 않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 의사를 만난 것도 아빠의 마지막 복이라고 생각한다. ㄴ레지던트는 우리 가족의 이름도 알고 청문회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기사도 찾아보는 것 같았다. 청문회 전에는 “나라면 소견서를 적을 때 물대포라고 적어 낼 텐데 위에서 바뀔 것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내 의견은 힘이 하나도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 권력의 힘은 너무 세다. 도와드릴 것은 없지만, 혹시 의학적으로 청문회 전에 물어볼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와서 질문하시라”고도 했다.

부원장이 한번 보자고 한 적이 있다. 7월에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고 나서 보자고 했다. 집요하게 만나자고 했다. 우리 생각에 부원장이 무슨 상관일까, 아버지 담당의사도 아니고 신경외과 선생님도 아닌데, 그래서 안 만나겠다고 했다.

신찬수 부원장을 따로 만난 적이 있나.

부원장이 한번 보자고 한 적이 있다. 7월에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고 나서 보자고 했다. 집요하게 만나자고 했다. 간호사, 의사들이 전화해서 “부원장이 만나자고 한다”고 전했다. 우리 생각에 부원장이 무슨 상관일까, 아버지 담당의사도 아니고 신경외과 선생님도 아닌데, 그래서 안 만나겠다고 했다.

가족 뜻과 무관하게 이어진 연명치료

피검사나 수혈 등 서울대병원이 실시한 연명시술을 보고 상당히 충격받은 것 같다.

아빠 상태가 어떤 정도였냐 하면, 몸에 핏줄이 보이지 않았다. 안 찾아졌다. 그런데도 하루에 세 번씩 주삿바늘을 찔러서 피를 빼는 거다. 대체 왜 이런 몸으로 계신 분을 그렇게 괴롭힐까 생각했다. 핏줄이 없는데 피검사를 계속하니까 팔에 감염이 와서 피부가 부풀어올라 산처럼 피혹이 생겼다. 피고름이 찬 혹인데, 그게 터지면 지혈이 안 돼서 건드릴 수도 없다고 테이프로 친친 감아놨다. 그런 몸에 하루 세 번씩 채혈해서 검사를 했다.

시술받는 동안 부친 상태는 어땠나.

아빠 모습은 정말…. 비쩍 마른 몸에 대상포진이 생겨 진물 나고, 혹 나고, 몸은 다 말랐는데 배는 빵빵하고. 마지막 주에는 소변이 안 나오니 수액도 넣을 수 없었다. 아빠의 인공호흡기 산소 농도가 원래 30%로, 보통 대기(21%)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는데, 마지막 주에는 산소 농도를 60%까지 올렸다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에는 100%로 올렸다. 그런데도 혈액검사를 해보면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로 나왔다. 그때도 신찬수 부원장이 와서 승압제를 넣으라고 했다.

몸에, 혈액에 산소가 이미 돌지 않는다는데 무슨 약을 쓴들 효과가 나타날까? 우리 가족은 의학 지식이 없지만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뭐라 참견할 수도 없었다. 그냥 고통 속에 있는 아버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병원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적극적인 연명시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산소 농도를 높일 때도 농도가 너무 높으면 산소 중독이 온다고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농도를 100%까지 높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에 바로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몸에 산소가 없으니까. 부모님 돌아가신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그렇게 바로 얼굴색이 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백선하 교수는 10월3일 기자회견에서 병사라고 기재한 이유가 가족이 투석과 같은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아서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말 아빠 뇌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지 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뇌가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몸만 더 고생시키는 것이고 혹사시키는 것이다. 어느 보호자가 그걸 하고 싶겠나.

보통 환자의 투석은 다른 장기가 멀쩡하고 신장만 나쁠 때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에 가서 3시간 정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빠는 이미 다른 곳이 다 망가진 상태였다. 아빠가 여기 오고 나서 처음에 다 건강한 상태라고 했지만 폐에 감염이 오고 물이 찼다. 췌장이 나빠져서 그전엔 당뇨도 없었는데 인슐린을 맞으셨다. 그다음에는 장에 마비가 와서 변비약도 썼다. 5월에는 대변을 못 보셔서 ‘장이 터질 수도 있다’고 했다. 장이 터지는 게 중환자실 환자들 사인 중 하나라고 하더라. 관장도 했다. 배가 빵빵하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장기들이 망가진 상태에서 투석한다고 뇌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처음부터 병원에선 수술 자체가 생명 연장 목적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후 우리가 법원에 내려고 소견서를 뗐는데, 거기에도 뇌가 다친 게 회복되는 게 아니고 보존적 치료를 한다고 쓰여 있었다. 보존적 치료라는 게 뭔가, 결국 연명시술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정말 아빠가 최악의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됐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서 온몸에 진을 다 빼서…. 그 모습을 누가 보고 싶겠나. 투석을 하고 말고 논란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경찰이 물대포를 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이 논란이어야지, 왜 가족이 논란이 돼야 하나.

가족이 "적극적인 치료" 안 해서 병사로 적었다고 한 백선하 교수의 말이 너무 당황스럽다. 그때 투석을 했으면 아빠 뇌가 회복되나? 그렇게 살릴 수 있었다면 아빠 눈은 한 번이라도 뜨시게 고쳐놨어야 하지 않나? 왜 열 달이나 "치료"해놓고 회복 못 시켰나? 백 교수에게 묻고 싶다. 나도 이게 억지라는 건 안다. 의학이 만능 지팡이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가족 탓을 하는 백 교수의 억지 논리대로라면 우리 가족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발 반성하기 바란다. 전문인으로서, 교육인으로서.

부검 불필요 소견서 써달라는 요청 거부

10월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대병원의 진료 과정이 시작부터 모두 연명시술이라는 점을 가족이 인지하고 있었나.

그렇다. 애초 수술 자체가 연명시술의 시작이었다. 2018년 시행되는 존엄사법 보니까 항암제, 투석,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가 연명시술에 해당하더라. 그때까지 아빠가 하고 있던 것은 인공호흡기밖에 없지 않나. 법상으로 딱히 우리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무리하게 시술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병원의 결정이니까.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연명시술을 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다 받아들였는데, 가족이 "적극적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며 ‘병사’라고 기재한 자신의 잘못을 가족 탓으로 돌리는 것에는 말문이 막힌다. 언제가 됐든 백 교수의 해명을 들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여러 가지로 경찰과 결탁한 느낌도 있고 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일단 아빠 정도 되는 위중한 상태의 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많지 않고, 만약 옮기다가 잘못되면 그게 다 가족 탓이 될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계속 여기 있어야 하고, 의사들이 하란 대로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가족 탓으로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병원이 가족 탓을 한다. 병원을 옮기지도 않았고, 병원에서 하라는 거 다 했는데도 말이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엄마가 백선하 교수한테 가서 부검이 필요 없다는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다. 백 교수가 정치적 사건이라면서 ‘나는 못 쓴다’고 했다. 환자가 요구하면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는 게 당연한데 아예 발급 자체를 거부했다.

백선하 교수의 평소 태도는 어땠나.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엄마가 백선하 교수에게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는데, 백 교수가 써줄 수 없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악화되신다는 연락을 병원으로부터 받았다. 이후 경찰이 부검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변호사가 담당 교수한테 가서 부검이 필요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 검찰에 내자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9월23일)에 엄마와 대책위 분이 같이 백선하 교수를 찾아가서 소견서를 써달라고 얘기한 거다. 그때 백 교수가 정치적 사건이라면서 자기는 써줄 수 없다고 했다. 법원에서 쓰라고 하면 쓰겠지만, 자기가 먼저, 가족들이 써달라고 하면 안 쓴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간 대책위 분이 법원이 쓰라고 하든, 가족이 써달라고 하든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어쨌든 ‘나는 못 쓴다’고 했다. 환자가 요구하면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는 것이 당연한데 아예 발급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의사 소견서를 못 내고 일요일(9월25일)에 돌아가셨다.

경찰이 관여한 정황은 있었나.

혜화경찰서 정보관이 상주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에는 가족들 담당하는 정보관이 있었고, 서울대병원 바깥에 농성장 담당하는 정보관도 있었다. 7월에 아빠 소변이 안 나온다고 병원에서 설명을 들은 뒤 이를 대책위에 말하려 전화했다. 만약 돌아가신다면 장례 준비를 같이 해야 하니까. 병원에서 아빠 상태 변화에 대해 설명 들으면 바로 대책위에 전하곤 했다. 그런데 대책위 관계자가 말하기를, 나보다 정보관이 먼저 ‘어르신 위독하시다면서요’ 하고 전화가 온다는 거다. 정보관한테 전화가 오고 나서 10~15분 있으면 내가 전화를 한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가족이 듣고 전하기 전에 아무도 몰라야 하는 게 맞다. 경찰이 먼저 알고 대책위에 확인 전화를 한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

경찰과 병원, 원칙 거스르며 왜 결탁했나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나 의문점이 있나 .

아빠와 같은 상태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모두 이렇게 적극적 연명시술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다. 백선하 교수는 ‘가족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안 해서 병사라고 적었다’고 했는데, 아빠 말고도 이런 환자 많았을 텐데 다 이렇게 '치료'했는지, 죽기 직전에 가족이 무의미한 연명시술에 동의를 안 해서 결국 병사라고 적었는지 궁금하다. 아빠라서 특별히 이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모든 환자를 다 이렇게 대하는 건지 정말 알고 싶다.

경찰이랑 병원이 결탁했다는 것은 사실상 확인하다시피 했다. (서울대 병원에 대한 경찰의) 시설보호 요청도 7월17일에 이미 했다. 그날이 우리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날이다. 그때 이미 위독하다고 생각해 시설보호 요청을 한 거다. 시설보호 요청에 ‘17일부터 상황 종료시까지’라고 돼 있는데, 어떤 분들은 그게 경찰이 불러준 것을 그대로 쓴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라. 병원은 운명이라고 하거나 돌아가신다라고 쓸 것 같은데, ‘상황 종료’는 경찰이 쓰는 말 아닌가.

경찰은 처음부터 부검을 하려고 했다. 만약 서울대병원에서 외인사라고 했으면 부검영장을 안 냈을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굳이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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