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편견으로 물든 기부, 해야할까?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16. 10. 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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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포장해 판매하는 사람들, 기부하면서 자신이 돋보이려는 사람들, 대상자에게 상처주는 사람들

[미디어오늘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부나 후원과 관련해 주위에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모습을 생각해보자.

모습1. 큰 눈망울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흑인 아이
모습2. 여린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 아이와 그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부모
모습3. 환하게 웃고 있는 기부금 전달자와 그 옆에 같이 서있는 노인들
모습4. 기부금의 일부를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모금조직에 관한 신문기사

모습1과 모습2. 우리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울고 있는 흑인 아이나 아파서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를 보여주고 기부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모금방송이나 모금캠페인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 모습이 안쓰러워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기부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별개로, 이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모금활동에 대해 왠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런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불쌍한 사람들만 보여주는 모금활동은 기부를 단지 우리보다 못사는 또는 나보다 비참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기부란 민간 시민사회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핵심적 활동으로 사회복지나 구호활동뿐만 아니라, 환경, 문화, 예술, 시민사회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 이년마다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재단의 한국인의 기부에 대한 인식조사의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기부는 대체로 사회복지와 해외구호영역에 집중되며, 주로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단순하게 보면 기부이든 기부가 아닌 그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아동에 집중하는 해외지원은 우리들로 하여금 해외의 국가들에 대한 지역적 또는 인종적 편견을 만들어내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대규모 모금캠페인의 주요 목표가 되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미지 또는 그런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우려가 단순히 우려가 아닐 수도 있다.

셋째, 불쌍한 아이들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식의 모금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 웬만한 자극에는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게 되고, 점점 더 자극적인 내용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다소 자극적으로 불쌍함을 강조하는 모금캠페인의 내용에 대해 필자가 직접 인터뷰를 한 대규모 모금단체의 모금관계자는 실제로 당장 죽어가는 아이들은 일부임에도 이를 강조하는 것은 모금액을 채우기 위한, 모금자체를 위한 앵벌이 같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금을 위한 모금은 기부라는 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그리고 전체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다.

넷째, 장애를 가진 또는 특이한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 그 아이의 사생활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많은 비영리조직들이 이런 모습을 공개적으로 사용하며 사진 속의 주인공에게 허락을 받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줄 사람에게 사진 찍기를 거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모든 모금활동이 모습1, 2와 같은 모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모금활동을 보면서 우리는 기부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기부금은 나보다 불쌍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또는 우리 보다 못사는 나라를 위해 쓰여야만 하는가? 기부는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혼자서 하기는 어려운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 이유로 사회자원이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는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빈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동이나 장애인 개인을 위해 기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나 법률제정을 위한 옹호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다. 때로는 비싼 예술 활동이나 문화 활동을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나 그 결과가 현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위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부는 사회를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 왜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쌍한 아이, 장애인, 또는 노인 개인의 처절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런 안쓰러운 모습에만 반응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습 3. 우리는 매해 연말 불우이웃돕기 시즌, 또는 꼭 그러한 시즌이 아니더라도 직접 기부금의 수혜대상자를 찾아가서 그들과 웃는 모습으로 기부금액수가 커다랗게 적혀진 카드를 들고 또는 라면이나 쌀과 같은 생필품을 쌓아놓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저사람 좋은 일을 하는구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모습은 진정으로 사회의 발전이나 수혜대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림으로써 무엇인가 자신을 위한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사진 속에서 같이 웃고 있는 생활시설의 아이, 노인, 또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은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남의 도움이 있어야만 생활할 수 있는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낙인과 편견을 초래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기부자 자신을 위한 기부는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동기를 지니고 기부를 하게 된다. 기부관련 연구들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기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부를 함으로써 자신이 얻게 되는 혜택이 있기 때문에 기부한다고 제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부의 동기는 매우 복합적이며 이러한 동기는 기부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기부와 관련하여 어떤 동기가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이들이 제공하는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부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사진 찍기가 정말 즐거울까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는 있다. 특히 기부자와 기부를 받는 사람을 매개하는 비영리조직은 동기와 관계없이 개인의 기부경험이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기부의 수혜자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들 모금조직들은 기부자의 요구가 혹시 불가피하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사진찍기와 같은 기부자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습 4. 우리는 기부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직원들을 위해, 보다 심각하게는 직원들의 유흥비를 위해 사용했다는 고발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2010년 아이티 지진당시 구호활동을 떠난 한 단체의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고가인 소주를 마시기 위해 돈을 썼다는 기사나 막대한 액수를 모금하는 조직이 방만하게 조직을 운영하며 기부금의 일부를 사용했다는 기사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또한 최근에는 많은 모금조직들이 길거리에서 정기기부회원을 모집하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를 수당으로 지급했다는 기사를 보며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기부여부와 관계없이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역시 비영리조직은 믿을 수 없어서 기부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왜 기부를 받는 비영리조직들은 기부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재단의 기부자 인식조사 결과 역시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제외하고 기부처가 되는 비영리조직의 투명성이나 책임성 문제 때문에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다.

여기서 다시 기부의 본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보자.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부를 하는가? 모금단체를 위해 기부를 하는가 아니면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는 정말 재정자원을 필요로 하는 분야의 발전을 위해 기부를 하는가? 아마도 궁극적인 기부의 목적은 후자가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기부를 할 선한 마음을 가진다 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대신 전문적으로 도움이나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비영리조직을 매개체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이러한 비영리조직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곳에 기부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 조직이 기부금을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동시에 이 조직의 기부금 활용에 있어서의 책임성이나 신뢰성은 반드시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 조직이 없다면 기부도 또한 기부금을 정말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일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러한 조직 활동에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내가 한 기부금의 일부가 보다 나은 자원의 배분을 위한 조직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부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부를 한 이후 나의 기부금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다. 모금활동을 하는 비영리조직 역시 운영비 사용과 관련된 현실에 대해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기부금을 많이 모금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제제기. 기부나 모금활동과 관련된 이런저런 모습들이 맘에 들지 않는데, 기부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답은 아주 명확하게 전자이다. 기부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할 수 있는 또는 개인이 전체사회 발전을 위한 최고의 자율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모든 비영리조직이 기부자를 속이거나, 방만하게 운영되며, 일부 비용을 잘못 사용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비영리조직들은 개인들의 선의를 조직화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또는 나를 포함한 전체 사회를 위해 이 선의를 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다만 모금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선의가 왜곡되지는 않는지, 기부금은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또는 약자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적절하게 보호되는지 등에 대해서 기부를 하는 사람과 그 기부를 매개하는 비영리조직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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