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달려 한 바퀴..1분 쉬고 다시 운행 나서야

입력 2016. 10. 10.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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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운전기사 잔혹사
 
욕설과 발길질, 흉기까지. 작년 승객이 버스 및 택시기사들에 가한 폭행은 3천149 건, 하루 평균 9건에 달한다. 조사 받느라 반나절이라도 빠지면 당장 임금손실이 불가피한 기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해자와 합의하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수의 운전자가 매일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2차, 3차사고까지 유발 될 수 있는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에 대한 위협은 그 위험성에 비해 범죄라는 인식이 낮다. 승객은 갑, 기사는 을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운행 중 쓰러진 택시기사를 외면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버스와 택시 하루 이용객 약 2천600만 명. 국민 절반의 안전을 매일 책임지고 있는 운전기사들은 괴롭다. 날로 심해지는 도로정체에 따른 장시간 운전과 저임금, 게다가 승객들의 높아진 '친절 눈높이'에 부응하기 위한 감정노동까지. 
 
SBS 스페셜 '운전기사 잔혹사'에서는 자긍심에 상처받고 있는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의 일상을 밀착취재,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살펴봤다. 바로 매일 위협 받고 있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 우리의 안전을 책임 진 그들이 위험하다 
   
"승객들도 참 희안한 게 그 현장을 다 보고 있었는데 누구 한 명 112에 전화하는 사람 한 사람 없었어요." - 전직 버스기사 허우환 씨 인터뷰 중에서
 
고향에서 사과 농사를 시작한지 2년 차에 접어든 허우환 씨는 전직 시내버스 운전기사. 정년퇴직할 때까지 버스 운전을 하는 것이 꿈이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그가 운전을 그만두고 귀농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운행을 하던 허우환 씨 갑자기 목에 날카로운 것을 느꼈다. 평온하던 버스 안이 한순간 끔직한 칼부림 현장으로 변한 이유는 그가 돈 통에 돈을 집어던진 승객에게 조심해달라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 불만을 품은 승객은 지니고 있던 칼로 그의 목을 수차례 찔렀고, 운행 중이던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무시했던 승객들의 모습과 사과의 말 한마디 없던 가해자의 태도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고, 천직으로 생각했던 운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천 원이에요. 동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백 원짜리 여섯 개입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그 3천만 원 가까이 까먹었어요." - 택시기사 안상권 씨 인터뷰 중에서
 
몇 달 전 택시기사 안상권 씨는 승객 때문에 지금까지 일궈놓은 소중한 일터를 한순간에 잃었다. 기본요금 3천원을 내지 않고 도망치던 승객은 쫓아오던 그의 택시를 훔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를 매달고 폭주하던 택시는 결국 길을 가던 할머니를 치고, 차량 석대를 들이박은 후 멈춰 섰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안상권 씨는 치료비와 2차 피해자들의 보상 등으로 수천만 원의 빚을 졌지만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다.
 
◇ 기사와 승객, 가깝고도 먼 사이
 
바쁜 출근길, 늦게 온 버스 때문에 짜증났거나 불친절한 버스기사 때문에 기분 나빴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 버스의 경우 매일 200여건의 불만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무정차, 불친절뿐만 아니라 난폭운전 등 승객들이 느끼는 불편은 다양하고 많다. 하지만 기사들도 할 말이 있다.
 
"단 1분, 1초도 못 쉬고 나가잖아요. 그게 이제 배차시간이 밀리면 밀리는 대로 휴게시간으로 대신 메워 나가는 거예요." - 버스기사 장순걸 씨 인터뷰 중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18시간의 운전. 하지만 정작 장순걸 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회사에서 정해준 배차시간이다. 예측하기 힘든 도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배차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사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반납한 채 운행에 나서야한다. 게다가 지연운행에 대한 회사의 압박은 기사들을 무정차, 난폭운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 운전기사는 감정 노동자?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항공기의 안전에 비행기 승무원 정도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지 않나…." - 이문범 노무사 인터뷰 중에서
 
시간에 쫓기는 버스기사들은 단순히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앞차와 뒤차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서 수시로 확인하고 승객이 안전하게 승하차하는지도 신경써야한다. 게다가 거스름돈도 직접 챙기고 가끔은 길 안내도 해야 한다. 그들의 시선처리 및 집중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일반 운전자보다 피로도가 2배를 넘었다.
 
"4시간짜리 노선버스는 그러니까 한 번도 쉬지 않고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셈인 거예요." - 세종대 김용국 교수 인터뷰 중에서
 
◇ "우리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노선버스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로 운행된다. 기준 근로시간은 17.5시간으로 정해져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날이 많다. 장시간 근로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최저시급 수준. 
 
"적게 잘 때는 두 시간 반. 평균 세 시간 반. 특히 따블(연속해서) 탈때는 세 시간 이상 못 잔다고 봐야죠." - 버스기사 A씨 인터뷰 중에서
 
12년 경력의 베테랑 버스 운전사 A씨는 당분간 버스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지난 1월, 아침운행을 마치고 난 뒤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날은 그가 17시간 이상 노선을 3일째 운행하던 날이었다.
 
"택시기사가 쉬지 않고, 계속 손님을 태우고 움직여야 그 사납금을 채우도록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 택시기사 강길수 인터뷰 중에서
 
서울법인택시 평균 사납금은 15만 원. 9시간 운전해도 채우기 만만찮은 그 사납금을, 심지어 어떤 곳에선 운행을 하지 않아도 매일 내야 한다. 몸 성한 곳이 없는, 움직이는 종합병원. 택시기사들의 현실이다. 
 
◇ 여러분은 어떤 승객입니까
 
장시간 운전, 낮은 임금만큼 운전기사들을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진상승객. 한참 어린 학생들의 욕설, 취객의 행패에도 그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백화점 판매원만큼이나 감정노동 강도가 높다는 대중교통 운전. 여러분은 어떤 승객입니까.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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