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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 국고보조금 훔치는 '도둑들'

손진석 기자 입력 2016. 10. 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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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통신장비 업체 대표 A씨는 2011년부터 4년간 정부에서 45억원을 지원받았다. 국책 연구 과제 수행 회사로 지정돼 연구 개발비로 국고 보조금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A씨는 그중 20억원을 연구와는 무관한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축산 업체 대표 B씨는 2014년 키우던 한우 13마리를 아들의 축사(畜舍)로 옮겨놓았다. 그러고 나서 한우를 모두 팔아버린 것처럼 꾸민 후 폐업 보조금을 신청해 1100만원을 챙겼다.

한 해 60조원에 달하는 국고 보조금을 빼먹는 악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갖가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세금이 재원(財源)인 보조금을 받아가 자기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10일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보조금 부정수급 신고센터가 출범한 2013년 이후 올해 8월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받아갔다가 환수된 보조금이 230건, 430억여원에 달했다.

◇6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 구멍 숭숭

국고 보조금은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사업에 쓰라며 정부가 예산에서 떼어내 주는 돈이다. 매년 규모가 늘어나 올해 60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의 15.6%에 이르는 액수다. 지자체 집행금이 46조원, 민간에서 쓰는 돈이 14조3000억원이다.

문제는 보조금 사업이 1789개나 되다 보니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복지시설이나 농어촌에서 보조금 비리가 만연해 있다. 경기도 어린이집 원장 C씨는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교사를 고용한 것처럼 허위 신고해 어린이집 보조금 1억5187만원을 받아갔다가 적발돼 환수 조치를 받았다. 지방의 한 비닐하우스 재배 농민들은 비닐하우스 설치비를 시공 업체와 짜고 부풀리는 방법으로 농가 보조금 10억2700만원을 받았다가 들통났다. 국고 보조금 사업을 소관 부처별로 보면 보건복지부가 26억4552억원으로 전체의 44%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6조6154억원으로 11%를 차지한다.

권익위가 환수 조치를 내린 사례 중에는 화물차 차주(車主)와 주유소 대표가 짜고 주유비를 부풀린 뒤 화물차 유가(油價) 보조금 1억1100만원을 빼먹은 비리가 있었다. 검찰이 올해 초 R&D(연구 개발)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교수 8명을 기소했는데, 가로챈 보조금으로 커피머신·게임기·노트북 등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조금 사업 관리하는 전산망 아직도 없어

수사기관에 적발되거나 환수 조치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만 아직도 보조금 사업 전체를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이 없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는 뒤늦게 내년 7월 개통을 목표로 '국고 보조금 통합 관리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 외에 정부는 부정수급 신고 포상금을 최대 2억원 지급하고 있고, 지난 4월부터는 부정수급 보조금에 대해서는 지원금의 5배에 이르는 액수를 벌금으로 납부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과감한 사업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병호 한국재정학회 회장(부산대 교수)은 "보조금 사업별로 평가를 거쳐 유사 중복 사업은 통·폐합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축소 또는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불필요한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보조금을 끊으면 실직자가 생긴다며 보조금 사업 구조 조정에 소극적이다. 지난 7월 기재부는 내년부터 3년간 31개 사업을 없애 7000억원을 절감하기로 했는데, 사업 숫자로는 전체의 1.7%, 액수로는 1.2%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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