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배려 없는' 생리대 지원 사업]가난하다고 부끄러움을 모르겠는가

박용근·정유진 기자 입력 2016. 10. 11. 22:48 수정 2016. 10. 12. 10:33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ㆍ“보건소 등 공개된 장소에서 신상정보 작성한 뒤 지급”
ㆍ복지부, 지자체에 지침 통보

정부가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무상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높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자세히 작성해야 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생리대를 받아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때 논란이 됐던 ‘가난의 낙인’이 저소득가구 생리대 지원 정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수급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고민 없는 복지정책이다.

11일 지자체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저소득층 여성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 안내 지침’을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냈다. 지원대상은 중위소득 40% 이하 세대의 여성청소년 가운데 만 11~18세 29만여명, 지원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생리대가 필요한 청소년은 보건소와 지역아동센터 등의 복지시설을 통해 3개월 분량의 생리대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서는 신청서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적어내야 한다. 이번 사업에는 국비와 지방비 50%씩 총 60억여원이 투입된다. 서울시는 전체 사업비의 70%를 부담한다.

이달 말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보건소를 방문해 개인정보를 자세히 적고 생리대를 수령토록 한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강원도 관계자는 “낮시간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보건소를 방문해 생리대를 받도록 하면 여학생들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달 초 복지부에서 회의를 할 때도 배부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자치단체들의 건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신발깔창 생리대’ 파문 직후인 지난 6월부터 자체 예산이나 후원금 등으로 생리대를 지원한 일부 지자체들도 이런 점을 가장 중시했다. 신상이 공개되지 않도록 자치단체가 대상 청소년을 찾아 생리대인지 모르게 택배로 보내거나 사이버머니를 지급해 자율적으로 구입하게 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소에서는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아동복지시설은 센터 직원이 일괄적으로 신청서를 작성해 보건소에 전달할 수 있어 신원 노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상급식 때 “부모가 신청하면 ‘가난의 비밀’이 지켜질 것”이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아동복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보건소를 직접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청소년이 더 많다는 점에서도 복지부의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복지부가 추산한 대로라면 전체 생리대 지원대상은 29만명이며, 이 중 보건소를 이용하게 될 청소년은 19만8000명에 이른다.

초경 시작 나이가 빨라지는 추세임에도 지원대상을 11세 이상으로 제한한 점도 문제다. 정부 통계를 보면 10세 이하 초경 청소년은 2.9%이다. 또 복지부가 국비지원 정책으로 추진하면 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해오던 생리대 지원사업은 중복사업 등의 논란으로 정부의 까다로운 협의를 거쳐야 하거나 아예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박용근·정유진 기자 yk21@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