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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백남기씨 부검 집행, 명분 잃었다

김성환 입력 2016. 10. 19. 04:42 수정 2016. 10. 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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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에 부상" 경찰 속보 드러나

"7시10분 쓰러져” 30분 단위 작성

“뇌출혈 증세 호흡기 부착” 등 내용

'빨간 우의' 내용은 전혀 없어

姜 전 청장 “9시 뉴스 보고 알았다”

李 청장은 국감서 “상황속보 없다”

야당.유족 "위증 혐의로 검찰 고발”

백남기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작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백남기씨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앞세운 경찰의 부검 강행 논리가 정면으로 위협받게 됐다. 경찰 스스로 작성한 상황보고서(상황속보)에 이미 사건 당시 정황이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며 구체적으로 적시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당 문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이미 파기했다고 밝힌 경찰의 그간 행태를 감안하면 은폐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18일 공개된 경찰 상황속보에는 ‘오후 7시10분 SK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70대 노인이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어 구급차를 요청했다’(오후 8시ㆍ18보) ‘백씨가 뇌출혈 증세로 산호호흡기를 부착하고 있다’(오후 10시ㆍ22보) ‘백씨가 (경찰) 물포에 맞아 부상을 당해 후송됐다’(오후 11시20분ㆍ25보) 등 민감한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직접적 사인을 가늠할 수 있는 정황(뇌출혈 증세)은 물론이고 부상을 유발한 원인(경찰 물포)도 지목됐다.

이날 상황속보는 당일 현장을 관리하던 서울경찰청 정보과 직원 8명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집회ㆍ시위는 경찰 수뇌부와 관련 부서에 관련 내용이 실시간 전파된다는 점에서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 및 구은수 서울경찰청장, 경비ㆍ수사 담당 간부들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강 전 청장은 지난 6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출석, 백씨 부상 사실을 “9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답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은 그 동안 줄곧 사고 당일 상황속보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폐기했다”며 존재 자체를 부인해 왔다. 경찰은 지난 6일 경찰청 국정감사를 앞두고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도 “30분 단위로 상황속보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상황속보의 존재가 일부 드러난 건 김 의원이 경찰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위해 법원에 제출한 문서(5월 9일)를 공개하면서다. 자료에서 경찰은 백씨가 물대포를 맞은 것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30분 단위로 작성되는 상황속보(오후 8시30분ㆍ19보)에서도 언급이 없었고, 오후 9시 20보에서 비로소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인 규명의 핵심 내용이 담긴 18보, 22보, 25보는 쏙 빠진 셈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6일 국감에서 “현재는 없다”고 천명한 뒤, 이번에 상황속보가 공개돼 이 청장은 위증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서울경찰청 고위관계자는 “상황속보를 생산한 정보 부서에서 문서를 공식 폐기한 만큼 당일 보고를 함께 열람한 다른 부서에서 유출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청장은 담당 부서 보고를 근거로 답변했기 때문에 국감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경찰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백씨 사건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문서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은 지휘체계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많다. 또 상황속보에는 검찰이 백씨 사고 원인 가능성으로 제시한 ‘빨간 우의’ 남성도 전혀 등장하지 않아 부검 강행 명분도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백씨 유족 측은 이 청장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손영준 백남기투쟁본부 집행위원장은 “경찰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거짓말을 한 정황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청장 사퇴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 경찰 "백남기씨 물대포 맞아 부상" 폐기했다던 당일 상황속보 드러나(http://hankookilbo.com/v/4c2ef33cb2c247a180c179b5ba57ac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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