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학생, 정유라에 공개 편지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

주영재 기자 2016. 10. 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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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와대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 입학에서부터 학점 취득까지 갖가지 특혜 시비를 불러오고 있다. 출석을 안 해 학점이 낮아 제적 위기에 처하자 직접 최순실씨가 학교를 찾아 항의했고 이후 지도교수가 바뀌고 학점이 ‘수직’ 상승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화여대 학생들과 교수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자 최경희 총장이 사퇴했지만 아직 특혜 시비는 가려지지 않았다. 한 이화여대생은 체육 특기생으로 들어온 정씨의 특혜를 바라보는 심정을 편지 형식의 대자보로 썼다.

한 이화여대 학생이 정유라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에서 이 학생은 편법으로 입학하고 성적을 받은 정씨와 밤을 새워 공부하고 시험을 쳐 학점을 받은 자신을 비교했다. 그는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은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너보다 훨씬 당당하다”며 “이런 상황을 만든 부당한 사람들에게 그저 굴복하는 게 아니라, 내 벗들과 함께 맞설 수 있어서 더더욱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대자보 편지의 전문.

‘어디에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







나, 어제도 밤샜다. 전공책과 참고도서, 그렇게 세 권을 펼쳐 뒤적이면서 노트북으로는 프로그램을 돌리고 때로는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해가 뜨는 것도 모르고 밤을 꼬박 새워 과제를 했어.



고학번이어서가 아니야. 새내기 때도 우글 소논문을 쓰느라 미적 레포트를 쓰느라, 디자인 과제를 하고, 법을 외우느라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밤을 샜지. 아마 너는 모르겠지만, 이화에는 이런 내가, 우리가 수두룩해. (그리고 다들 정말 열심히 해서 이곳에 들어왔지.)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샐 때, 내 옆자리가 빈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너는 어제 어디서 뭘 했을까? 국내에 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인지 출석 점수는 다 받아내는 너. 채플 때면 대강당 앞 계단이 늦지 않으려는 벗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한 걸. 네가 알고 있을까.







누군가는 네가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하더라. 근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부럽지도 않아. 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 그게 어떻게 좋고 부러운건지 나는 모르겠다.







이젠 오히려 고맙다. 네 덕분에 그 동안의 내 노력들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그 노력이 모이고 쌓인 지금의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실감이 나. 비록 학점이 너보다 낮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너보다 훨씬 당당해. 너,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부당한 사람들에게 그저 굴복하는 게 아니라, 내 벗들과 함께 맞설 수 있어서 더더욱 기쁘고 자랑스러워. 아마 너는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할 수 없을거라니. 안타깝다.







다시 네게 이런 편지를 쓸 일이 없길 바라. 그럼 이만 줄일게.







2016년 10월, 익명의 화연이가.







우리는 모두에게 공정한 이화를 꿈꾼다. 이화인은 본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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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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