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흰까마귀를 죽였나?..BJ 주노, 추락하다

박지혜 2016.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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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5회> 주노, 학창시절의 비밀

[머니투데이 박지혜 ]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5회> 주노, 학창시절의 비밀]

일러스트=디자이너 임종철

4.

여고생이 교무실에 들어서자 문에 매달린 풍경이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푹푹 찌는 바깥 날씨와 달리 교무실 안은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로 가득 차 있다.

교무실을 둘러보던 여고생은 어깨에 하얀 카디건을 걸친 여교사의 자리로 향한다.

책상에 일주일 전 치렀던 교내 백일장 답안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 그 위에 놓인 출석부 표지에는 ‘2학년 1반 담임 신지수’라고 쓰여 있다.

왔구나.

신지수 선생님은 웃으며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킨다. 여고생은 주뼛주뼛 자리에 앉는다. 선생님은 여고생에게 얼음을 띄운 녹차를 권한다.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있니?

……네.

여고생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선생님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선생님이 널 부른 건 지난주 네가 낸 백일장 답안지에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야.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여고생은 놀란 듯이 고개를 든다. 선생님은 파일에서 두 장의 원고지를 꺼내 여고생 앞에 펼쳐 놓는다.

네가 한번 비교해 봐. 두 사람의 글이 어떤지.

여고생은 원고지를 들여다본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쓴 작품이다. 두 답안지를 번갈아 읽던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간다.

백일장 당일 제시된 주제어는 총 세 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를 중심 소재로 잡아 글을 전개해 나갔다.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쪽의 글을 베껴 썼거나, 사전에 작문 주제와 내용 구성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서야 이렇게 비슷한 답안은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여고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전 아니에요.

그녀가 말한다.

정말이에요. 전 절대로 남의 글을 베낀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네 친구가 글을 베꼈다는 얘기로구나.

선생님이 냉정하게 말한다. 여고생은 초조한 듯 무릎 위에 놓은 양손을 꼼지락 거린다.

아니에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선생님은 다시 그녀에게 묻는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글을 쓰기 전 친구와 의논을 하거나, 미리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본 건 아니니?

의논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백일장 글 쓰는 법을……가르쳐준 적은 있어요. 대회 이틀 전에.

좀 이상하구나. 고작 이틀 배웠다고 이렇게 친구와 똑같은 답안을 쓸 수 있을까? 백일장 주제는 당일에 제시됐고, 만약 우연히 같은 주제를 선택했다 해도 내용까지 똑같을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사실은…….

사실은?

예전에 그 애한테 우리 엄마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있어요.

네가 백일장 답안에 쓴 내용을 그대로?

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글로 옮기고 싶다고……. 그렇지만 우연일 거예요.

뭐가 우연이라는 거지?

그, 글이 똑같은, 아니 비슷한 게요. 그 애는 절대 제 글을 베끼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럴 애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여고생은 머리를 떨군다.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창밖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멀리 운동장에서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은 여고생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바라본다.

― 장준오

그리스 신화에 이런 얘기가 있어.

선생님이 그녀에게 말한다.

까마귀는 원래 아름다운 흰 깃털을 가진 아폴론 신의 심부름꾼이었지. 그런데 아폴론 신에게 아내가 간통을 했다는 거짓말을 전했다가 벌을 받아 검게 타 죽게 돼. 그 뒤로 모든 까마귀의 깃털이 검은 색으로 변했다는 거야.

여고생은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신화 이야기가 이번 상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은 얼음이 녹아 묽어진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내용이 있어. 까마귀는 대체 왜 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신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면 금방 들킬 거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글쎄요. 원래 거짓말쟁이에다 성격이 나빠서 그런 것 아닐까요? 아폴론의 아내를 질투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선생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신지수 선생님은 출석부를 펼쳐 반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페이지를 들여다본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폴론 신에게.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으로 끝났지.

여고생의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아폴론은 애초에 까마귀를 믿지 말았어야 했어.

선생님이 말한다.

*

태풍이 불어오려는지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주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복도 한 가운데 대자로 뻗어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덮쳐왔다. 빨간 펜으로 표시된 백일장 답안지, 책장이 절반은 뜯겨 나간 교과서, 죽어버리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쪽지, 악플로 도배가 되어 있는 미니홈피, 머리가 깨져 뇌가 흘러나온 고양이 시체. 그녀의 눈앞에 화질이 좋지 못한 영화필름이 산발적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은 이내 사그라졌다. 주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동물들에게 산채로 뜯어 먹히던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건강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최신 VR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머리 전체를 둘러싸는 VR 헤드기어는 매초마다 무수히 많은 신호 소자를 내보내 뇌를 자극한다. 특히 인간의 감각을 주관하는 전두엽과 기억을 관장하는 측두엽에 가장 막대한 양의 자극이 주어진다. 그런데 장시간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극심한 두통을 동반한 어지럼증이 일어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의식불명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IOM2는 인간의 공포를 근원부터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사람들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를 잊어버렸다. 플레이어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스릴을 즐기려는 것이지 끔찍한 트라우마를 영상으로 지켜보거나 괴물들에게 팔다리가 뜯겨나가는 체험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주노는 이번 방송이 끝나고 나면 두 번 다시 VR 공포게임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였다. 주노의 귀에 꽂힌 인 이어에서 치직거리는 신호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커지는 신호음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주노 씨! 주노 씨! 제 말 들리세요? 들리면 대답해주세요!”

PD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PD에게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막상 입을 열자 발작적인 눈물이 터져 나왔다.

“피, 피디님.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계속 연락이 안 됐던 거예요?”

“이것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작가들이 몇 번이나 게임 공략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주노 씨가 계속 게임 오버되면서 중간에 우리가 서버에서 튕겨나갔지 뭡니까.”

“제, 제가 계속 게임 오버되었다고요?”

주노가 멍청히 되물었다.

“일단 스마트 워치로 시청자 실시간 반응을 봐주세요.”

“PD님, 저 시계가 없어요. 아까 잃어버려서…….”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럼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건 뭡니까?”

PD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주노는 팔을 내려다보았다. 은색 스마트 워치는 처음부터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손목에 매달려 있었다. 주노는 기억이 어디서부터 헝클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채팅창에 밀린 대화 목록이 폭주했다. 눈으로 쫓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채팅이 빠른 속도로 밀려올라가더니, 곧이어 시청자 반응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 미친, 어떻게 같은 부분에서 열 번이나 죽을 수가 있지? 한심하다, 진짜.

- 게임 전문 BJ라 재밌는 진행 기대했는데 기대이하네요. 전 이만 퇴장합니다.

- 제대로 진행될 때까지 두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지루해서 더 이상 못 보겠다. 오늘 WGN 개국특집인데 주노가 다 망쳤네.

그 밖에도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비하 발언이 난무했다. 주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주노 씨. 괜찮으세요?”

PD가 물어왔다. 자기가 악플을 읽어보라고 해놓고선 괜찮다고 묻는 건 어느 나라의 매너인지, 주노는 가슴만 더 답답해졌다.

“PD님. 죄송한데요, 저 진짜 못하겠어요. 그냥 게임 클리어 실패했다 치고 편집만 해서 내보내주시면 안돼요?”

그녀가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PD는 그녀보다 더 저자세로 매달렸다.

“주노 씨.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오늘은 방송국 개국 기념 생방송이에요. 지금까지 힘내서 달려왔는데 이대로 끝내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

“저, 저 출연료 그냥 포기할게요. 계약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잖아요. 게임 도중 제가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안전을 위해 방송이 중단될 수 있다고요!”

그녀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당장 게임에서 빠져나가 현실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깟 출연료쯤은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었다.

“주노 씨. 우리는 프로잖아요. 출연자가 마음먹은 대로 방송이 안 돌아간다고 촬영을 포기해버리면 그게 어디 프로입니까? 아마추어지.”

“저 진짜 못하겠어요. 이대로 게임을 계속하면 정말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애초에 IOM2가 플레이어의 심리를 분석하는 게임인 걸 알고 출연에 동의하신 거잖아요. 게다가 여기서 발을 빼면 가장 애매한 처지가 되는 사람은 주노 씨에요.”

“그게……무슨 소리에요?”

주노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말씀드리기 참 죄송한데요. 지금까지 게임 실황을 지켜봐온 시청자들이 의혹을 제기……아니, 궁금해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주노 씨의 학창 시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죠.”

“…….”

“절대 제가 주노 씨를 의심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실시간 채팅과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이런 반응이거든요. 백아영은 누구냐, 선생님은 왜 괴물로 변했느냐, 애완동물을 열 마리나 키우는 여자의 무의식에서 왜 동물들이 좀비로 변해 나오느냐. 뭐 이런 얘기들이요.”

“……PD님도 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뇨, 그럴 리가요! 제작진 측에서도 너무 심한 악플이나 루머를 작성하는 시청자에게는 신고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주노 씨가 게임 플레이를 포기해 버리면 떠들기 좋아하는 악플러들이 신이 나서 달려들 게 빤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지금 스마트 워치로 스테이지 공략 법을 전송해 드릴게요. 이번 위기만 잘 넘겨주시면 시청률도 다시 오를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힘내주세요. 아시겠죠?”

PD는 마지막으로 파이팅이라는 말만 남긴 채 통신을 종료해버렸다. 주노는 씩씩대면서 마음속으로 그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더러운 방송국 새끼들. 내가 팬이 떨어져 나갈까봐 자기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들을 거라 생각하나 보지? 방송만 끝나봐. 온갖 SNS에 당신들의 만행을 다 퍼뜨려놓겠어. 출연자를 정신적으로 혹사시키는 것도 모자라 불법적인 계약서를 꾸며서 출연료 지급도 하지 않으려고 하잖아. 당신은 프로 방송인 아니냐고? 지랄하고 있네! 다들 겉으로는 나를 칭찬하는 척, 예뻐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창녀처럼 웃음을 팔면서 사이버머니나 모으는 BJ’라고 욕하고 있잖아!

주노는 갑자기 손톱으로 스쳐지나가는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자신이 아까 전 부터 엄지손톱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큐빅을 붙여놓은 엄지손톱이 절반이나 뜯겨나가 피가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잇새로 욕설을 씹어뱉고는 옆에 있던 교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낡은 나무 문짝이 앞뒤로 흔들리며 삐걱댔다.

시계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참 빨리도 전송해주시네. 주노는 빈정거리며 문서 파일을 열었다.

플레이어의 기억 속에 있는 여러 요소들이 환상의 재료가 되고 있음.
현재 가장 방해가 되는 선생님 캐릭터를 없애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본인만이 알고 있는 대상의 약점을 이용해야 함.
가장 중요한 건 게임의 최종 목적을 파악하는 것.
스스로 단서를 찾아 조합해 나가야 함.

“이걸 지금 공략이라고 준 거야?”

주노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입을 떡 벌렸다. 공략이란 모름지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서라거나, 암호 해독이라거나, 게임 완수 목적을 말해줘야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법한 당연한 이야기 몇 줄을 공략이랍시고 던져주다니!

이제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만도 없었다. 일단 뭐라도 찾아 단서를 만들어야 게임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긴다. 주노는 방금 걷어 찬 나무 문짝을 올려다보았다. 2학년 5반이라고 쓰인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뭐야 이게. 다음에 또 죽으면 이번에는 3학년 교실로 가게 되는 건가?”

짐짓 여유로운 척 중얼거렸지만, 주노는 자신이 3학년 교실로 가게 될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학창 시절은 2학년 5반에서의 기억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 친구 백아영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날 아영은 유일하게 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받았나?’

분명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영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 애가 추락한 뒤 피투성이가 되어 차갑게 식어가던 와중에 그녀는,
노래방에 있었으니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영이 그렇게 된 후 준오는 2학기 중간고사를 완전히 망쳤고 학교에 무단결석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끊임없이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재혼한 엄마도 대여섯 번 정도 그녀를 찾아와 등교를 재촉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친구들이 모두 수능을 치르고 난 다음부터는 누구도 주노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게 되었다.

‘그랬었지.’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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