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민들 "평생 처음 시위"..경찰도 "나라사랑 이해"

윤준호|김훈남 기자|기자 입력 2016.10.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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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문'에 분노, 평범한 이웃들 거리로 쏟아져..경찰, 강경대응보다 안전위주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김훈남 기자] ['최순실 파문'에 분노, 평범한 이웃들 거리로 쏟아져…경찰, 강경대응보다 안전위주]

"난생 처음 집회라는 걸 참석해봤다"(20대 대학생 A씨)
"오늘만큼은 잠시 고시공부를 멈추고 나가봐야겠다"(모 대학 커뮤니티 게시글 中)
"나라 걱정하는 마음에 TV에서나 보던 촛불집회에 나왔다"(30대 주부 B씨)

평범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어디 산하 무슨 노조'처럼 조직에 속한 활동가들이 아니었다. 29일 서울 한복판을 메운 이들은 거리에 나서 구호를 외친 게 평생 처음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게 나라냐' 손에 들린 피켓 문구처럼 끝 모를 실망과 분노가 시민들을 거리로 모이게 만들었다. 시위 주최 단체와 경찰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2만명 이상의 인파가 서울 청계광장에 운집해 '비선실세' 최순실 파문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9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첫 대규모 시위로 올 들어 서울 도심 집회 중 최대 규모다.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파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기온이 7도 남짓으로 떨어진 날씨에도 가족, 애인, 친구들과 함께 온 시민 2만명 이상(주최 측 추산 3만명, 경찰추산 1만2000명)이 운집했다. 참가자들은 국정농단 사태를 빚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 규명과 대통령 해명, 정권 퇴진 등을 촉구했다.

참가자 면면은 다양했다. 홀로 촛불을 들고 온 사람부터 애인과 함께 한 대학생, 서너살짜리 아이까지 함께한 가족 단위 참가자, 대학생 딸의 손을 잡고 온 중년 아줌마 등 말 그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투쟁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야 '시위'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한 서울 시내 대학생 한모씨(21)는 "국정농단에 참담한 심정이 들어 주말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왔다"며 "작은 촛불 하나하나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정상화되길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부인, 아이와 함께 참여한 김성운씨(37)는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됐는지 개탄스럽다"며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길에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생 딸과 함께 나온 고영숙씨(51·여)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을 보니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시민들의 염원이 꼭 높으신 분들한테까지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저녁 7시30분 청계광장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청계광장을 시작으로 광교→보신각→종로2가→북인사마당까지 약 1.8㎞를 걸어갈 예정이었으나 행진 초반 청와대 방향으로 틀며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 현장과 행진 구간 주변으로 60개 중대 경력 4800명을 배치했다. 경찰의 1,2차 방어선이 뚫리고 시위대는 광화문광장에 진출했다.

한쪽에선 몸 싸움을 하는 시위대를 밀쳐내고 "너희도 부끄러운 심정이란 거 잘 안다"고 아들뻘인 의경을 위로하는 중년의 시위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이날 경찰도 해산 위주의 강경 대응보다는 안전 유지에 방점을 뒀다. 홍완선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집시법을 위반한 불법시위 중이다"는 딱딱한 해산명령보다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방송하며 시위대에 합법 집회를 호소했다. 살수차나 최루액(캡사이신)도 등장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집회 이튿날 입장자료를 내고 "경찰은 시민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대처했다"며 "시민들도 경찰의 안내에 따라주고 이성적으로 협조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도 밝혔다.

시민들의 촛불은 다음 달 12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공식 계정을 통해 다음 달 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매일 촛불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투쟁본부는 "29일 촛불집회에 예상인원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신 점 감사드린다"며 "(주말인) 5일 대규모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12일 '박근혜 퇴진! 2016년 민중총궐기'를 개최한다"고 안내했다.

윤준호 기자 hiho@, 김훈남 기자 hoo13@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