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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아, 넌 딱 중2병 딸~ YO ♬

정상혁 기자 입력 2016. 10. 31. 03:04 수정 2016. 10. 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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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으로 스트레스 푸는 주부들] 학원 찾아 가족·家事 불만 발산.. 英 연구팀 "우울증 완화에 효과" 한 아파트 반상회선 단체 수강, 드라마에 주부 랩 장면 등장도

랩, 주방용품이 아니다. "결혼 전에 약속할 땐 내 인생의 디딤돌, 이러려고 결혼했니 내 인생의 걸림돌!" 8년 차 주부 개그우먼 김효진(40)씨가 속사포 랩을 발사한다. "가사(家事) 스트레스를 가사(歌詞)로 풀어내고 그걸 소리내 발사하는 거죠. 일종의 건강한 정신 수양." 거의 매주 서울 광진구의 랩 학원에서 1시간 정도 일대일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남편에게 쌓인 불만, 딸을 향한 헌시를 랩으로 풀어낸다. "랩은 어린 친구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주부야말로 래퍼에 더 가까워요. 삶의 응어리가 있어야 하니까."

◇랩 학원 향하는 주부들

주부들이 랩 학원을 향하고 있다. 살림과 회사 일, 남편과 상사에게 쌓인 울분을 랩으로 발산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 노래교실 혹은 악기 연주 등에서 식상함을 느끼자 상대적으로 젊은 문화인 랩을 여가 수단으로 택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8년째 일반인 대상 랩 레슨을 하고 있는 한 래퍼는 "아파트 반상회에서 주부 7명이 단체로 수강을 신청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은 대략 1~2시간, 수강료는 한 달 4회에 20만~30만원 수준. 직접 작사를 하기 전, 기존 래퍼의 랩을 따라 부르며 감을 익히는 '카피 랩(copy rap)'부터 시작한다. 자녀들의 적극 추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50대 주부에게 랩을 가르치고 있는 래퍼 라마(Rama·35)는 "팝송을 좋아하는 분인데 음치라 평소 불만이 컸다고 한다. 아들이 랩 학원을 추천해줬다는데, 랩은 정확한 음정보다 가사 전달에 주력하다보니 덜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랩 세러피(Rap therapy)'

201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일명 '힙합 세러피(hiphop therapy)'가 우울증·정신질환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부 대상 랩 수업을 해봤다는 래퍼 MC메타(45) 역시 "치과의사·교사 등 직종은 다양했지만, 음악적 성취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자기 얘기를 직설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주부가 많았다"고 말했다.

랩의 백미는 '디스'.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약자로, 랩에서 거친 표현을 동원해 남을 꾸짖는 걸 일컫는다. 한 종합편성 채널의 중장년 여성 대상 랩 예능에 출연했던 배우 문희경(51)씨는 지난 6월 '엄마야'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전부 이해할 만한 살얼음판 같은 상황을 '디스'했다"며 "내 안에 있는 걸 뱉어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부들의 랩, 대중문화 판도 변화?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주부들의 랩 열풍은 거세진다. 랩 레슨 13년 경력 김의성(34)씨는 "30~40대 주부의 경우 랩을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라며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거쳤고, 최근 Mnet '쇼미더머니'까지 관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청률 조사기관 TNms에 따르면, 여성들의 랩 서바이벌 예능 Mnet '언프리티랩스타'의 주 시청층은 30대 여성(2.17%), 40대 여성(1.81%), 20대 여성(1.59%) 순이었다. 대중문화도 응답하고 있다. 성공이 불안해 보였던 종편 중장년 여성 랩 예능은 시즌2가 방영 중이고, 아예 지상파 황금 시간대 일일드라마에 주부의 랩 장면을 끼워넣기도 한다. 지난달 KBS '여자의 비밀'에는 대기업 실장으로 출연 중인 문희경씨가 딸을 향해 디스 랩을 쏟아내는 장면이 등장했다.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아. 웃기지도 않아. 웃겨, 넌 딱 중2병!" 이강현 PD는 "드라마 주 시청층인 40대 이상 주부들이 랩에 가까워진 만큼, 드라마에도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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