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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임에도 너는 잘 살 것이다"..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

손호영 기자 입력 2016. 11. 02. 14:29 수정 2016. 11. 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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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 살 것이다. 성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 것이다. (중략) 나처럼 소화불량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불면증에 괴로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택시에서 강제추행이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 택시를 타지 않지만 너는 별생각 없이 탈 수 있을 것이다. (이하 생략)”

같은 대학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 학생이 가해자와 함께 계속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2일 고려대 여학생위원회에 따르면, A씨는 2년 전 동료 학생 서모(24)씨에게 택시 등에서 강제추행 당했지만 이번 학기부터 함께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 이에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잘 살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학내 성폭력 사건과 학교 측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고 나섰다.

가해학생인 서씨는 지난 2014년 10월 학교 축제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A씨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만취한 A씨의 얼굴, 가슴, 음부 등을 강제 추행했다.

서씨는 또 A씨를 성동구청 부근 모텔 앞에서 내리게 한 다음 강제로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려 했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과 욕설을 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5월 강제추행혐의로 기소된 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강의 80시간 수강과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어린 대학생이며, 지도 교수와 선배들이 장래를 걱정하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서씨가 항소하면서 형은 더 줄었다. 올해 1월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북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홍승철)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지만 들뜬 분위기에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며 벌금 700만원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피해자와 다시 마주치지 않을 방편으로 의무경찰 입대를 신청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서씨는 실제로 의무경찰에 입대하지 않았고,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지 반년만인 올해 9월 학교에 복학했다.

고대 학생상벌위원회는 서씨에게 2015년 2학기까지 두 학기 정학 처분을 내렸지만, 여학생위원회는 “서씨가 자숙 기간을 가지라는 양성평등센터 지시를 어기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교내를 돌아다녔다”며 “징계와 관련해 A씨에게 주어진 재심 요청 기간도 단 열흘뿐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와 여학생위원회는 서씨에 대한 재심의를 진행하고 퇴학 처분할 것 등을 학교에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이미 징계가 확정된 사건에 대한 재심의는 어렵다”고 했다.

이에 여학생위원회는 “학내 성폭력 피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응하겠다”면서 “학교는 해당 성희롱 사건을 전면 재검토하고, 그간에 발생했던 모든 미흡했던 부분들을 직접 찾아내 사과하고 시정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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