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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백남기 41일 만에 발인..장례미사·영결식

심동준 입력 2016. 11. 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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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백남기씨의 발인식이 5일 오전 8시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그 뒤로 투쟁본부에서 백씨의 관을 운구, 백도라지·민주화씨 등 유족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뒤따랐다. 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를 포함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 수백명이 함께했다. 고인의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가 1970년대 피신해 세례 받으신 이곳에서 장례미사를 치르게 돼 의미 있어 하실 것 같다"며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운구행렬은 장례미사 이후 종로1가를 통해 서린R까지 이동한 뒤 오전 11시30분부터 노제를 치르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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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운구차량이 명동성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6.11.05.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운구행렬이 운구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6.11.05.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운구행렬이 운구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6.11.05.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고(故) 백남기씨의 발인식이 5일 오전 8시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백씨의 발인식에는 유족과 친인척 20~30여명이 주변을 지켰다. 투쟁본부, 일반 시민 등 50여명도 고인의 발인을 지켜봤다.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유족 등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인의 옆을 지켰다. 기도를 마지막으로 백씨의 관은 운구차로 옮겨졌다.

선두에는 고인의 아들 백두산씨가 영정 사진을 들고 섰다. 그 뒤로 투쟁본부에서 백씨의 관을 운구, 백도라지·민주화씨 등 유족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뒤따랐다.

백씨의 관은 오전 8시7분께 검정색 운구차에 실렸다. 백두산씨는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차 앞자리에 앉았다. 유족과 친인척 등은 별도의 버스에 탑승했다.

백씨의 장례미사는 오전 9시부터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진행됐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전국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가톨릭농민회 담당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다.

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를 포함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 수백명이 함께했다.

염 추기경은 미사에 앞서 "일찍이 세상에서 주님을 따랐던 백남기씨가 고향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라고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내린 빛이 성당 가운데로 옮겨진 백씨의 관을 비췄다. 관 옆에는 촛불이 밝았고 관 좌측, 성가대와 수녀 등은 우측에 자리했다.

신도들과 시민들은 뒤쪽에 앉아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종걸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도 참석했다.

미사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뜻하지 않은 순간을 맞은 고인을 이제야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우리에게 남긴 고인의 삶과 이야기들은 기억과 마음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가 누울 장소는 절대적인 침묵의 장소인 이곳이 아니라 누렇게 익은 겨를 바라볼 수 있는 들녘"이라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농촌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우리가 그를 떠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국가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직 공식적인 사과 조차 없는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분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해 주기 바란다"며 "거리에서 권리 회복을 외치는 이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유족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나 미사는 대체로 엄숙한 침묵 속에 진행됐다. 성가대와 평신도, 시민들도 두 손을 모으고 침묵 속에 고인을 애도 했다.

유가족을 위한 기도문과 무너진 민주주의를 통탄하는 내용의 기도문도 낭독됐다. 염 추기경은 "세상을 떠난 백남기씨에게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한다"면서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현 했다.

고인의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가 1970년대 피신해 세례 받으신 이곳에서 장례미사를 치르게 돼 의미 있어 하실 것 같다"며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두 손을 모으고 두 입술을 굳게 다문 모습으로 고별식을 했다. 고개를 떨궈 표정은 감췄지만 어깨가 흔들리는 유족도 있었다.

오전 10시2분께 백씨의 관은 방향을 틀어 명동성당을 빠져나갔다. 백두산씨가 영정 사진을 들고 선두에 섰고 운구행렬이 뒤따랐다. 이들과 추모객들은 고인을 위한 송가를 불렀다.

명동성당 앞에서 백씨의 관을 실은 운구차, 그의 유족들은 종로 방향으로 향했다. 흰색 상의에 검은색 하의를 입은 상여 행렬, 사물패 등도 함께했다. 시민들도 줄지어 행렬을 이뤘다.

운구행렬은 장례미사 이후 종로1가를 통해 서린R까지 이동한 뒤 오전 11시30분부터 노제를 치르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엄수한다.

장례는 6일 오전 9시와 11시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역과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거친 뒤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에 시신을 안장하는 것으로 끝난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 동안 머물다가 지난 9월25일 숨졌다.

s.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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