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블랙홀'에 묻혀버린 뉴스들

2016. 11. 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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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선체 ‘인양 방식’ 변경, 고 백남기 농민 장례 이후 ‘특검’ 주장, 철도노조 최장 기록 파업  

지난 11월3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10월31일 대통령 뒤에 숨어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마침내 온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씨 사진이 1면을 장악한 다음날 신문은 주요 기사를 배치하는 종합면을 통째로 ‘최순실 게이트’에 할애했다. 최순실씨가 검찰 수사 중간에 ‘곰탕을 먹었다’는 기사가 주요하게 다뤄질 정도로 한국 사회는 ‘최순실 블랙홀’에 빠졌다.

최순실씨가 모습을 드러낸 10월31일, 전남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제 모습을 드러낼 기회는 또 한 번 무산됐다. 해양수산부는 같은 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월호 인양 선미 작업 공정 변경’ 브리핑을 열었다. 사실상 기존 방식의 인양은 실패했다는 발표였다.

다음날 주요 일간지에서 해수부의 ‘인양 실패’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권영빈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은 “연내 인양은 물 건너갔다. 해수부가 수없이 말을 바꾸면서 인양 시점이 늦춰지고 있다. 수중의 세월호는 침몰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증거물로 해수부가 인양을 계속하는 게 적절치 않은 상황인데, 사회적 관심이 아쉽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폭발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누적된 실정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를 ‘최순실 게이트’가 덮는 아이러니가 빚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묻혀선 안 되는 이슈를 꼽아봤다.

① 세월호 연내 인양 무산

‘최순실 게이트’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세월호의 ‘현재진행형’ 이슈는 선체 인양이다. 해수부는 지난 5월 인양 작업에 돌입하면서 인양 완료 시점에 대해 ‘7월 말’이라고 공언했지만, 기술적 어려움을 이유로 인양 시점이 8월, 9월, 10월 등으로 자꾸 미뤄졌다. 급기야 10월31일 ‘인양 방식을 변경하겠다’는 해수부 발표로 ‘연내 인양’은 불가능해진 상태다.

정성욱 4·16 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고 정동수군 아버지)은 “인양 방식을 변경한다는데, 선체 훼손이 안 되는 방식인지 걱정된다. 해수부가 기술적 검토를 했다지만, 검토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요구에 기다리라고만 한다. 기술 검토를 했다는 것도 가족들은 모르고 있다가, 브리핑 당일 기술 검토 태스크포스(TF)에 들어간 분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도다. 기술 검토 TF에서는 자문위원들이 선체 인양에 불필요한 기술을 많이 언급했다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조사와 관련해 세월호 선체는 거의 마지막 남은 ‘증거물’이다. 권영빈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은 “미수습자 9명의 수습과 더불어 선체를 온전히 인양해 충돌 흔적이 있는지, 운항 시스템의 고장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해야 침몰 원인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조사를 맡을 세월호 특조위는 새누리당이 특조위 활동 기간을 선체 인양 이후로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한 탓에 9월30일 강제 해산된 상태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에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9월20일 <한겨레> 보도로 9월 말부터 점화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산 문제도 덮였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7월부터 해수부가 특조위를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선체 인양 문제를 해수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이라도 야당이 특조위가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나서는 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욱 분과장은 “‘연내 인양하겠다, 믿고 기다려달라, 이 방식으로 인양할 수 있다’는 정부 말만 믿고 있었는데 결국 그게 아니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정부가 애초 약속한 것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난 이상, 인양 과정에서 유가족들과 국민을 기만한 부분에 대해 해수부 장관이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 하니 답답하다. 가족들 처지에선 지금 사태가 이렇다보니 뭐라 말할 상황도 아니라 속이 탄다”고 말했다.

11월3일 검찰은 세월호 민간잠수사 공우영(61)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검찰은 세월호 희생자 수습을 위해 잠수 도중 숨진 동료 민간잠수사 이아무개(53)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2014년 8월 공씨를 기소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4·16 연대는 논평을 내어 “단 한 명도 안 구했던 박근혜 정권의 구조 책임을 또다시 국민에게 떠넘겼다. 목숨 걸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수습한 잠수사를 법정에 세워 괴롭힐 게 아니라 ‘단 한 명도 구하지 않은’ 박근혜 정권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② 철도노조 파업 최장 기록 경신

‘공공성 강화와 성과퇴출제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월26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최순실 의혹 규명을 요구하고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지난 8월27일 ‘성과연봉제 도입 철회’ 등을 요구조건으로 걸고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파업이 11월4일 39일을 맞았다. 이는 공공부문 노조의 최장 파업 기록인 2002년 발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 기간 38일을 경신한 것이다. 노조 교섭에 나서야 할 코레일이 사태 해결 조치에 나서지 않은 채 사실상 사태를 방관하는 탓이 크다.

노조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컨트롤타워 붕괴를 원인으로 본다. 김선욱 철도노조 사무처장은 “철도 파업은 청와대에서 지시를 받거나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라인이 없으니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의지도 없는 코레일 사장이 나 몰라라 손 놓고 있는 모양새다. 사장이 단독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만 공공기관의 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교섭을 회피한 채 대체 인력 투입에만 골몰하는 사이 철도 안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열차가 갑자기 멈춰서 승객 150여 명이 1시간10분 동안 열차 안에 갇히거나(분당선), 열차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 200여 명이 대피하는(3호선) 등 군 소속 대체 기관사들이 운행한 열차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철도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해 국방부에 군 대체 인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국민안전처나 국방부가 ‘철도 파업은 사회재난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 대체인력 투입도 한계상황에 달했다.

김선욱 사무처장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800억원을 강제 모금당한 대기업들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들의 숙원이던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을 가능하게 해준 점에서 기업들은 실속을 다 챙겼다. 이런 부분이 ‘최순실 게이트’ 분노로 다 묻히고 있다”고 말했다.

③ 교육부, 보복성 누리과정 예산 삭감

‘보육 대란’을 불렀던 누리과정 예산 분담 갈등은 올해도 반복될 조짐이 보인다. 10월24일 경기도교육청은 “교육부가 교부해야 하는 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가운데 5356억원을 삭감했다”며 “내년도 교사·교직원 인건비와 학교기본운영비가 모자라 교육재정 파탄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만 3~5살 유아 무상보육 정책을 일컫는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 공약으로 본격화했으나, 당초 ‘국고로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달리 시·도 교육청의 초·중·고 예산으로 부담하도록 해 교육감들이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등 2013년부터 해마다 갈등이 반복돼왔다.

특히 이재정 경기교육감과 김승환 전북교육감 등은 교육부 소관인 유치원과 달리 여전히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의 경우 주무부처를 일원화하는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통합)이 선결되기 전에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가 이번 예산안 편성에서 유독 경기도(5356억원)와 전북(762억원)의 예산을 삭감한 것도 이런 배경 탓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보육단체들까지 시국선언에 나설 계획이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한겨레21>과 통화에서 “무상보육 정책을 비롯한 국정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보육정책이 엉망이 되고 무상보육 공약이 철저히 내팽개쳐진 이면에 최순실 집단의 국정 농단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리되면 무상보육 정책을 비롯한 국정이 정상화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④ 고 백남기 농민, 특검이 남았다

‘백남기는 박근혜 하야 투쟁의 밑불이 된 거다. 불쏘시개는 원래 불을 붙이고 나면 그 역할을 다하는 거다. 이제 들불이 일어나면 된다.’ 고 백남기 농민의 부인 박순례씨가 장례 일정을 논의하면서 투쟁본부 관계자들에게 한 말이다. 10월25일 부검영장 집행 시한이 만료되고 나흘이 지난 10월29일 경찰은 ‘부검영장을 재신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고인의 장례위원회가 구성되고 11월5일 서울 명동성당 장례미사와 광화문광장 영결식, 6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장지로 하는 장례 일정이 확정됐다. 한국 천주교의 수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고 김희중 대주교가 강론하는 장례미사는 고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보여주는 일이다.

투쟁본부 관계자는 “추기경께서 장례미사 집전을 흔쾌히 수락했다. 추기경이 평신도들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백남기 어르신에 대한 신원의 의미, 명예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특별검사를 통해 책임자 처벌과 사망 이후 부검영장 발부와 집행 시도를 둘러싸고 새롭게 제기된 경찰과 서울대병원의 유착 의혹 등을 밝히는 일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물대포 퇴출을 공식화하는 일도 특검 과정에서 수반돼야 한다.

투쟁본부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에 의해 백남기 특검이나 세월호 특검이 묻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개별 사안으로 각각 특검을 추진하는 것보다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시민사회나 야당에 국민적 지지가 모이면 일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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