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당선> 거대한 '유리천장'에 가로막힌 첫 여성 대통령의 꿈

입력 2016.11.09. 16:57 수정 2016.11.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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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권 도전 144년·참정권 획득 96년에 패배로 끝난 클린턴의 위대한 도전
힐러리 클린턴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유리 천장'(소수 인종과 여성의 진출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은 첫 여성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끝내 열리지 않았다.

미국의 유리 천장은 8년 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라는 첫 흑인 대통령에게 창을 열었지만, 여성에겐 닫혔다.

손에 닿을 듯 가까웠고, 오바마 대통령이 낸 균열로 산산조각이 나기 직전이었음에도 여성에게만큼은 여전히 강고한 모습 그대로 남은 셈이다.

빅토리아 우드헐이 1872년 34세의 나이에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 후보로서 미국 여성 최초로 대권에 도전한 지 144년 만이자 여성 참정권을 획득한 지 96년 만인 올해, 클린턴 후보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미국 여성 참정권사의 새 이정표 수립을 향해 위대한 도전에 나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로서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한 그는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에 가장 근접한 후보였다.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대선 결과를 지켜보기로 한 곳도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으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의 재비츠 컨벤션 센터였다.

대통령 당선으로 유리 천장을 꼭 깨부수겠다는 의지였으나 '미국 우선주의'와 변화를 앞세워 '침묵하는 다수'인 백인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에게 백악관행 티켓을 내줬다.

슬픔에 빠진 클린턴 지지자들 (뉴욕 AP=연합뉴스)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의 가장 화려한 행사장인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센터'에 모여있던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대선 개표 결과 클린턴의 패배로 나타나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메일 스캔들과 고액 강연료 논란 등에서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클린턴의 잘못이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최강 미국을 이끌 새 대통령으로 아직은 여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미국민의 보수적인 시각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 여성은 1920년 수정헌법 19조가 비준된 뒤에야 투표권을 얻었다. 수정헌법 19조는 '미국 국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미 합중국 또는 어떤 주(州)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고 명시해 자국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이는 남북전쟁(1861∼1865년) 직후 노예제 폐지로 흑인 남성이 1870년 투표권을 쟁취한 것보다 무려 50년이나 늦은 것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 선구자들은 노예제 폐지 당시 미국 정부가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확대할 때 여성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등 당시 세계열강들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터라 이들의 요구는 번번이 묵살당했다.

미국 여성인권과 참정권사의 어머니로 통하는 수전 B 앤서니(1820∼1906년)는 여성의 투표권 보장을 설파하며 정부를 상대로 저항과 투쟁에 앞장섰고, 이들의 요구는 1920년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뉴욕 주 세니커폴스에서 세계 최초의 여성권리 집회가 열린 지 72년 만이었다.

"오늘 힐러리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겁니다" (뉴욕 AP=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패색이 짙어진 9일(현지시간) 새벽 존 포데스타 선대본부장이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의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센터'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에게 클린턴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뒤 떠나고 있다. 유리로 만들어져 뉴욕에서 제일 화려한 이 컨벤션센터는 순간 가장 음울한 장소로 변했으며 수천명의 지지자들은 충격 속에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미국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여성의 기여를 인정해 헌법으로 남녀동등 투표권을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8일 투표를 마친 미국 유권자들은 뉴욕 로체스터의 한 공동묘지에 있는 앤서니의 무덤을 찾아 묘비에 "나는 투표했다"(I Voted)는 글자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무덤 주위를 미국 국기로 장식했다. 앤서니의 투쟁 덕분에 클린턴이 미국 주요 정당 사상 첫 여성 대권 후보가 된 사실을 기린 것이다.

참정권 획득 후 미국 여성의 정계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1922년에 지명 절차를 거쳐 딱 하루를 재직하긴 했으나 레베카 레티머 펠턴(조지아·민주)가 첫 여성 상원의원 시대를 열었다.

이보다 5년 앞선 1917년 지넷 랭킨(몬태나·공화)은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각 주 정부가 수정헌법 19조를 비준하기에 앞서 몬태나 주가 1914년 여성 참정권 제한을 푼 덕분이다.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민주)는 2007∼2011년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을 지내 미국 정치사에서 여성 최고위직 기록을 작성했다.

"클린턴이 지다니"…눈물 흘리는 지지자들 (뉴욕 AP=연합뉴스)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의 가장 화려한 행사장인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센터'에 모여있던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대선 개표 결과 클린턴의 패배로 나타나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1997년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에 오른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비롯해 30명의 여성 각료도 탄생했다.

하지만, 미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직만큼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클린턴은 대통령 당선 후 '여풍당당 내각'을 구상했을 만큼 여성 정치인을 중용할 예정이었으나 패배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남녀 임금·고용에서의 성차별 개선도 당분간 요원해졌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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