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0만 함성,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입력 2016.11.14. 01:55 수정 2016.11.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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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중고생, 중장년들까지"박근혜 퇴진" 한목소리 외쳐

황석영 주말 집회 참가기
집회 현장의 황석영씨.
지난 토요일 ‘3차 촛불집회’에 갔다. 오후 5시에 인파를 뚫고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덕수궁 대한문 앞이었고 우리는 거기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거의 육칠십대의 글쟁이 노인들이었는데 우리도 젊은이들과 함께 동참하자고 서로 연락하여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저 들끓는 함성 속에서 문득 1960년 4월 19일의 바로 이 장소가 떠올랐다.

56년 전 나는 고등학생으로 덕수궁 돌담길 모퉁이에서 ‘이승만 하야’를 외치는 시위 군중에 묻혀 있었다. 광장 건너편에서 실탄 사격이 시작되었고 내 옆에 있던 친구가 쓰러졌다. 그를 일으켰을 때 고개가 앞으로 툭 꺾이면서 피가 쏟아졌다. 나는 학생모를 벗어 그의 머리를 틀어막았다. 급우와 함께 그를 들쳐 메고 뛰다가 의대생 형들의 도움을 받아 응급차에 실었다. 뒤늦게 도착한 서울역 앞의 세브란스 병원 뒷마당에는 흰 시트를 덮은 시신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죽은 친구는 그 어딘가에 있었다. 나는 병원 화장실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친구의 피로 흠씬 젖은 교복을 빨았다. 붉은 핏물은 한참이나 흘러내려갔고 나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80년 광주 도청 앞에서, 87년 6월의 시청 앞 광장에서 어떤 이들은 피를 흘렸고 어떤 이들은 세월을 살아냈다. 이들 수많은 동시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거리에 서 나는 그들과 함께 착잡함과 뭉클함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시민 100만 명이 밝힌 촛불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세종대로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게 나라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단일 시위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보다 많은 사상 최대 규모다. [사진 강정현 기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과 그 엄청난 함성 속에서도 평화롭게 잠든 아가들, 올망졸망 어린것들과 아내를 앞뒤에 세운 월급쟁이 가장들, 까마득히 잊고 살다 학생 시절 함께했던 동아리들을 불러 모은 중장년들, 조심조심 행렬의 가장자리에서 구호의 끝마디를 따라 하는 노부부와, 낭랑한 소리로 단호하게 외치는 중고등학생 소년 소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축제의 마당을 내주기 위하여 거친 숨결을 가다듬으며 뒷길로 물러난 노동자·농민·시민 단체들, 질서와 안전을 위하여 길을 안내하고 청소하며 즉석 자원봉사자가 된 대학생들, 이들 위대한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김수영 시인의 말투로 외치고 싶다.

정치하는 사람들 재지 말고 자신을 던져라
대통령, 재벌, 총리, 장관, 검찰, 국회의원, 그리고 비선실세니 친 무엇이니 진 무엇이니 빌붙어 먹던 모든 부역자는 개×이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우리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지금 이 거리의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나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아쉬움을 넘어 절망감을 느꼈지만 아버지의 업보를 풀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글을 썼다. 사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 일간지에서 인터뷰하던 중에 기자가, 만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어쩔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서슴없이 그럼 이 나라에서 살 수가 없다. 차라리 프랑스의 평화로운 시골에 가서 가정식 밥집이나 하며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변해서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작가인 내가 모국어를 버리고 어디로 가서 살 것인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냐고, 나는 이 위대한 민중들에게 묻지 않으련다. 울산·포항·대구·부산·광주·전주·청주·대전 등 각 지역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올라온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비행기 타고 올라온 사람들에게도 그동안의 지독한 인내심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으련다. 그들은 참을 만큼 참다가 견딜 수 없게 되면 언제나 알맞은 때에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물결이 되어, 도도한 강물처럼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곤 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이들 모두가 새로운 세기의 위대한 시민들이다.

루쉰(魯迅)의 비유인 ‘물에 빠진 개 때리기’에 주저하지 말자. 물던 개를 건져주면 다시 우리를 물게 될 테니까. 페어플레이 대신 보내는 데 집중하자. 그것이 지혜로운 역사적 전례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 생애에 가장 큰 달이 떠오르고 있다. 광화문 빌딩 사이로 아직은 조금 모자란 달이 떠 있었고, 이제 곧 구름바다에 흰 달덩이를 탄 세월호의 꽃 같은 어린 넋들이 너울너울 춤추며 우리를 내려다볼 것이다.

정치하는 것들, 내가 할까, 쟤가 할까, 눈치 보고 재고 저울질하고 폼 잡지 말고 저 거리의 위대한 시민들과 함께 자기를 던져라. 이제 우리는 비로소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터널 끝에 도착했고 총체적인 사회개혁의 대전환을 모색해야만 한다. 현정부를 끝으로 개발독재 이래의 적폐가 마무리되는 새 공동체를 만들자.

황석영·소설가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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