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산초등학교는 117년 역사를 바로세웠다

박호열 입력 2016.11.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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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연도, 1912년→1899년으로 변경.. 학교 역사판 게시·기념탑 제막식 등 가져

[오마이뉴스박호열 기자]

 경기서남부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 안산초등학교가 지난 9월 12일 개교 113주년 기념탑 제막식을 가졌다. 기존 기념탑에 새긴 ‘개교 100주년’을 ‘개교 113주년’으로 변경했다. 기념탑 측면에는 ‘2016년 11월 15일 제12대 총동문회장 김경진’ 이름으로 정정 게시를 알렸다.
ⓒ 박호열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개교한 안산초등학교(안산초교)가 학교 역사바로세우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안산초교는 그간 개교일을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장이 부임해 '안산공립보통학교'로 재개교한 1912년 4월 1일로 정했다. 동문회에서는 1912년 개교를 기준으로 2012년 10월 3일에 운동장 한켠에 개교 10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개교 기준으로 삼은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지난 9월 12일 개교기념일을 1912년 4월 1일에서 1899년 9월 15일로 바꾼 후 본관 현관에 '안산초교 역사판'을 게시하고 설명회를 열었다. 또 기존의 100주년 기념탑을 2012년에 맞춰 113주년 기념탑으로 변경해 제막식도 거행했다. 1899년 9월에 설립된 '안산군 공립소학교'를 안산초교의 역사적 뿌리이자 공식 개교일로 변경한 것이다.

기념탑 측면에는 '정정 게시'를 통해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역사자료에 의해 실제 개교일이 안산군 공립소학교의 설립일인 1899년 9월(고종 36년)으로 밝혀짐에 따라 개교 113주년 기념탑으로 정정합니다. 2016년 11월 15일 제12대 총동문회장 김경진"이라고 알렸다.

역사 바로잡기를 기념해 전체 교사들이 학교의 옛 역사를 찾아 현장 답사에 나섰다. 학급별로는 우리학교 역사바로알기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개교기념일 하루 전에는 학생과 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학교 이름 삼행시 짓기, 퀴즈대회 등을 열기도 했다.

안산초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학생, 교사, 지역주민 등이 함께 학교 옹벽 150m에 '희망'을 주제로 '세월호의 기억'을 그린 학교다(관련 기사 : '100여명이 모여, 150m '세월호 벽화'를 그리다').

"10여 년에 걸친 역사 바로세우기...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교육하겠다"

 안산초등학교 본관 현관에 게시된 ‘안산초교 역사판.’ 개교 117주년의 학교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박호열
안산초교가 학교 역사를 바로 세우게 된 계기는 무얼까. 교장실을 찾아 정성조 교장과 이현덕 동문회 고문(50회 졸업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안산지역사연구모임 주최로 열린 3·1절 기념 안산 3·1만세 운동길 답사였다.

정 교장은 "당시 답사에서 우리 학교를 가장 먼저 갔는데 참석자들이 100주년 기념탑의 문제점을 지적해 그때부터 관련 자료 등을 찾다 교장으로 일을 하면서 학교 연혁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교직원들과 학교 연혁을 1899년으로 잡아나가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개교기념일 바로잡기를 논의해 갔다. 문제가 생겼다. 학교가 1899년 9월에 개교한 사료는 남아 있으나 개교일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정 교장은 당시 교원 부임 등을 추정해 개교일을 9월 15일로 결정했다.

이후 동문회를 상대로 끈질긴 설득작업이 진행됐다. 정 교장은 "현 동문회 임원진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00주년 기념탑을 세운 전임 동문회 임원들과 고령의 동문회 선배들에게 사료 등을 제시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론을 수렴해 갔다"라고 밝혔다.

안산초교 역사바로세우기는 실상 동문회 내부에서 일찌감치 제기됐다.

이현덕 고문은 "2007년께 동문회 내에서 개교일이 잘못됐다는 논란이 있었다"라며 "일부 동문들이 일본인 교장이 우리나라 교장을 내쫓은 잘못된 개교일이라고 주장했지만, 나이 많은 선배들이 우리가 배운 개교일은 1912년이라며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12년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동문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2009년 개교일 관련 사료와 일제강점기 <황성신문> 등 언론보도를 동문회 카페에 지속적으로 올리며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학교 측에도 자료를 제시하며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산됐다.

"학교 역사 바로 세워져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

 정성조 교장(오른쪽)과 이현덕 동문회 고문이 안산초교 운동장 한켠에 세워진 개교 113주년 기념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박호열
10여 년에 걸쳐 안산초교는 제 역사를 찾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월에 묻혀 아쉬움이 컸지만 올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한 책임감이 더 컸다. 정성조 교장과 이현덕 고문의 감회는 남달랐다. 두 사람의 소회를 들었다.

"학교 역사를 바로잡기까지 동문회와 지역주민 등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려주는 도리를 할 수 있어 기쁘다. 또한 지역사회 공교육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의미도 깊다.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교육을 잘 이어받고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 정성조 교장

"어려운 일을 해주신 교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마음 속 한 구석에 아픔이랄까 누적된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이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인데 이제라도 돼 다행이다. 고생하신 동문회 선후배 등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현덕 고문

안산초등학교 117년의 역사 톺아보기

 1937년 4월 1일 안산공립 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후 지역주민들의 학년연장운동 결과 4년제에서 6년제로 학제를 연장하고 1939년 제1회 졸업식을 가졌다. 졸업생 뒤로 학교 건물이 보인다.
ⓒ 이현덕
 안산공립 심상소학교 1939년 제1회 졸업증서.
ⓒ 이현덕
안산초등학교의 뿌리인 '안산군 공립소학교' 경기도 전역에서 세 번째, 서남부지역 공립 소학교로서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유서 깊은 학교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1894년 갑오개혁의 영향으로 고종은 조선을 근대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1895년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해 교육개혁의 방침을 제시했다. 이 조서로 조선에서는 근대적 교육 기관들이 경향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안산지역에서는 1899년 안산군수 남계술이 안산군 공립소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를 운영했다.

안산군 공립소학교는 1908년 4월 군내 유지들이 기금을 모아 신축교사를 낙성했으나 교실이 부족하자 안산향교를 임시로 빌려 교사를 사용할 정도로 교육열이 강했다. 1905년 불기 시작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민족의식이 고취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후 1912년 안산공립보통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 교장이 부임했다. 이후 1924년 11월 1일 학생 수가 늘면서 교실이 좁아 지금의 안산초교터로 옮겨 교실 4개의 학교 건물을 신축했다.

1937년 4월 1일 안산공립 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후 지역주민들의 학년연장운동 결과 1937년 5월 1일부터 기존의 4년제에서 6년제로 학제를 연장하고, 1941년 4월 1일 안산공립국민학교로 학교 이름을 다시 변경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폭격으로 학교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학교 관련 자료들도 불에 타 소실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62년 6월 10일 호동분교장을 설치하고, 1996년 3월 1일 교명을 현재의 안산초등학교로 변경했다.

안산초교는 2011년 안산에서 처음으로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혁신학교로 선정돼 내부형 공모로 이완섭 교장이 취임했다. 2015년 혁신학교로 다시 지정됐고, 그해 9월 정성조 교장이 내부형 공모로 취임했다.

올해 11월 현재 20학급에 모두 52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직원은 50명이 재직하고 있다. 지난 2월 102회 졸업식을 치르고 지금까지 총 878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고종36년인 1899년 9월에 설립해 117년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안산초등학교 본관 모습. 학교 교표 아래에 ‘SINCE 1899’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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