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피해 입었는데 가해자가 되다니..

우주 2016. 11. 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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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권이야기 25] 가해자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모욕 그리고 두려움

[오마이뉴스우주 기자]

"너무 수치스러워서 강간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행과 협박을 견딜 수 없어 경찰서를 방문했다. 어렵게 강간 피해를 말하게 됐고, 경찰관의 도움으로 고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소가 끝이 아니었다. 검사가 가해자와 대질심문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 가해자가 너무 무서워 난 할 수 없다 했으나 검사는 자신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낮 1시께부터 밤 11시까지 조사를 받으면서 두려워 떨었고, 가해자는 여유있게 농담까지 했다.

검사는 나를 무고 가해자로 바라보며 압박했고 다그쳤다. 나는 피해자인데 가해자라니...계속해서 배가 아팠고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피해사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고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 강간 피해로 고소했다가 무고가해자가 된 A씨

"내가 추행을 당한 장면이 분명하게 CCTV에 나와 있었지만 무혐의로 불기소됐다. 추행을 당하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 장면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단순한 싸움으로 보이는가? 가해자는 나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했다. 정말 죽고 싶다." - 강제추행 피해로 고소했다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한 B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기막힌 상황

 강간 가해자와의 대질심문... 검사는 나를 무고 가해자로 바라보며 압박했고 다그쳤다.
ⓒ pexels
내가 만난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전에 성폭력 고소 경험이 있거나, 유흥업소를 운영하거나 그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경우, 가해자와 아는 관계일 경우, 수개월 지난 성폭력 사건을 고소할 경우, 피해 당시 술에 취했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임을 의심받았다.

피해자임을 의심받게 되면 성폭력 가해자와의 대질심문이 있더라도 절대 진술을 번복하거나 피해 장면을 명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하면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허위사실 신고라는 '무고죄'를 적용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는 언제나 피해자에게 '정확한 기억력과 일관된 진술'을 요구한다. 피해를 호소하러 간 자리에서 죄인으로 몰리게 되는 억울함과 분노, 가해자 앞에서 진술을 해야 하는 모욕감과 두려움 따위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진술 이외에 증거가 없는 경우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가해자의 협박에 시달린다. 

수사·재판기관의 무분별한 무고의심, 이제 그만

수사·재판 기관의 성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왜곡된 성통념, 성차별적 젠더 규범이 적용 될 경우 성폭력 피해자는 '무고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올 10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아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성폭력범죄 신고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검찰의 기소율은 2012년 1만103건으로 전체 신고율 가운데 43.9%에서 2015년 35.8%, 2016년 상반기는 34.5%에 불과했다.

추락하고 있는 기소율은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수사·재판기관의 냉정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성폭력피해자의 심리적 특성과 수사과정시 발생하는 심리적 압박감, 성폭력 피해의 맥락적 이해가 없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만을 문제 삼아서는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사·재판기관의 무분별한 무고의심이 중단돼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법적인 권리주장을 가로막고 성폭력범죄를 은폐시키는 무고죄 적용에 대한 새로운 기준마련과 성폭력사건 수사 시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수사·재판기관의 성폭력 및 성폭력 무고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과 별도의 수사지침이 함께 마련돼야 하고, 성폭력 범죄에서 형사사법 절차 종결 전까지 무고 조사가 금지돼야 할 것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성적 행위가 있었는가'이다. 이젠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피해자의 과거 성 이력, 직업, 두 사람의 관계성 등에 초점을 둔 '피해자 비난과 의심'을 멈추고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봐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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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우주 시민기자는 대구여성의전화(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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