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러 "韓, 권위주의 잔재 정리못해..지금이 민주주의 변곡점"

안병준 입력 2016. 11. 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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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벤야민 베를린자유대 교수 "제대로 청산못하면 개헌도 소용없어"
"獨 6·8운동처럼 낡은 보수가치 깨고 민주주의 한단계 도약 계기가 돼야"
"의원내각제 도입할 포용력엔 의문"
하네스 모슬러 교수. [안병준 기자]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결단의 순간에 놓여있다.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헌이라는 약도 소용없다”

지난 8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사무실에서 만난 하네스 벤야민 모슬러 교수(40)는 “(현 상황에 대해) 적어도 의미있는 수준의 청산을 할 수 없다면 독일에서 말하는 ‘합의의 문화’, 즉 대의민주주의 기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슬러 교수는 독일내 대표적인 젊은 지한파(知韓派) 교수로 꼽힌다. 독일 홈볼트대 한국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베를린자유대에서 동아시아 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한국·일본·대만의 국회내 비정상적인 운영행태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고 있으며 모슬러 교수는 한국을 맡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멀리 독일에서도 ‘최순실 국정논단 게이트’로 촉발된 현재의 불안정한 정국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는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또다른 변곡점”이라 규정했다.

그는 ‘아직 지하실에 시체가 남아있다’라는 독일 속담을 인용하며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 시대를 정리하지 못했다. 시도했지만 안됐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된 것”이라면서 “(2012년 대선 당시) 국민들이 강한 인물에 기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국에서 약 100만명이 참여하고 있는 촛불시위를 1960년대 후반 독일내에서 젊은 세대들이 주도한 6·8운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슬러 교수는 “6.8운동을 통해 독일내 잔재해 있던 낡은 보수 가치들이 깨졌고 그 이후 포용적 대의민주주의가 탄생하는데 기틀이 됐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어떤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기본 틀이 나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고 서민들의 걱정은 충분히 다루지 않아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다”면서 “그 중에서도 박 대통령은 극단적인 예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모슬러 교수는 최근 국내 정치권이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롤모델 삼아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에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유용하고 맞는 제도”라며 환영했다. 이어 그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 하의 양당제보다 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고 사표발생이 적어 민주적이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악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제도든 잘 운영해야 한다”면서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국내 상황에 맞게 ‘문화적 해석’을 잘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을 직접적인 예시로 들며 한국 사회의 포용력에 대해 다소 의문을 제기했다. 통진당의 강령(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시켜야 한다”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고 “청와대가 나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당을 해산시켰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일 내에서도 노동자의 자결권 강화와 재벌·부유층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좌파당이 사유재산과 현 권력구조 타도까지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원천 봉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슬러 교수는 “좌파당이라 배제한다면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소외될 수 있으며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큰 맥락에서 충분히 수용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 좌파당은 지난 2013년 연방의회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8.6%를 기록하며 전체 의석 631석 중 64석을 차지했다.

또 의원내각제 도입시 비례대표제 확대에 따른 국회의원 증원이 불가피한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한국 특성상 가능할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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