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김정렴 "박근혜 영애 시절에도 최태민 청탁받고 업체 대출 민원"

입력 2016.11.29. 03:05 수정 2016.11.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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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김정렴 前 박정희대통령비서실장 "40년뒤 같은일 벌어져 안타깝다"
[동아일보]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업체 두 곳의 융자 얘기를 하며 나에게 ‘좀 해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바로 최태민과 관련이 있는 업체였다.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2개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셨던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92·사진)의 말이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질이 나쁜 사람(최태민)이 자기 딸을 박 대통령 측근에 앉히고 자기가 한 짓을 또 하도록 한 모양”이라며 “언론 보도를 보니 딸이 더 악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업체는 대기업이 아닌 건설회사 한 곳과 섬유회사 한 곳이었다. “왜 그러시냐?”는 김 전 실장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구국봉사단을 후원하는 기업체”라고 설명했다. ‘큰 영애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김 전 실장은 곧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히 기억을 복기하던 그는 기업 관련 청탁과 재단 설립 문제 등으로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와 공범이 된 박 대통령의 현 상황에 대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해 “최 씨 일가에 완전히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 당시 최태민 전횡 못알아채… 지금 ‘최순실 선의’ 믿는것과 똑같아”

1977년 3월 16일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대한구국봉사단 총재 최태민 씨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경로병원 개원식에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약 40년 전 일이었지만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기억은 비교적 또렷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출 청탁’ 시기에 대해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께 최태민 보고를 하기 전에 미리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앙정보부가 관련 보고를 한 때는 1977년경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업의 대출 건이 있으면 큰 영애가 아니고 행정부나 은행에 이야기해야지. 그 어떤 사람이 큰 영애를 이용해 부당하게 융자를 받느냐고…”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씨와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물었다. 박 대통령은 “내가 하는 사업(구국봉사단)의 후원자”라며 말을 이어갔다. 최 씨가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내 딸이 고생하고 있다.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박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대출 건은 무엇이며 큰 영애와 (육 여사) 꿈을 꿨다는 녀석하고는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건 완전한 협작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딸로서 아버지를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 영애가 구국봉사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건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큰 영애’의 청탁을 처리하거나 별도로 취급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당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큰 영애를 통해서 접근하는 최모 목사가 있는데 내가 각하께 말씀드려 차단했다. 전원이 그런 줄 알고,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승규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는 “큰 영애에게 오점이 생기면 안 되니 주의 깊게 (최 씨를) 관찰하라”고 별도로 당부까지 했다.

 이후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는 최 씨 관련 정보를 모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백광현 수사국장 등이 최 씨 비리를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그 자리에서 큰 영애가 ‘절대로 아니다’라며 (최태민을) 옹호하셨단 말이지”라며 당시 상황을 그렸다. 결국 최 씨 처벌이나 수사는 유야무야됐다는 게 김 전 실장의 기억이다.

 김 전 실장에 따르면 당시 최 씨는 집요하게 박 대통령만 공략했다. 청와대에서 최 씨를 조사하면 한동안 잠잠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큰 영애를 돕는다’며 계속 박 대통령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당시 큰 영애는 최 씨의 전횡을 잘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가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렇게 얻은 돈을 빼돌린 걸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지금도 큰 영애는 그저 (최순실이) 자기를 좋게 도와주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에 대한 과거 중앙정보부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최순실 씨의 범행은 아버지 최 씨와 똑 닮았다. 최 씨는 재벌 회장이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자신이 박근혜 영애를 모시는 사람’이라며 기업인들이 알아서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구국봉사단에는 이례적으로 큰돈이 모였다. 결과적으로 최태민 부녀(父女)가 모두 재단을 세워 현 정권과 친분을 과시하며 재벌의 돈을 갈취해 온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일 뿐 아니라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 주일 대사를 지내며 박 전 대통령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봤다. 지금도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1997년 회고록 발간 때 박 대통령의 ‘대출 청탁’ 건을 적은 이유에 대해 “큰 결심을 하고 그자(최태민)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굳이 남의 이야기까지 썼다”고 말했다. 1997년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대선 캠프 고문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해다.

 “내가 책을 갖다가 모두에게 나눠줬으니 (박 대통령도) 회고록의 그 내용을 읽으셨을 텐데…. (최 씨 일가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아쉽지….”

강성휘 yolo@donga.com·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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