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순실 게이트 녹음 게이트

조백건 기자 입력 2016.11.30. 03:06 수정 2016.11.30. 1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정호성 녹음 파일 등 알려진 것만 10개.. 결정적 증거로]
녹음이 사건 열쇠 되는 경우 늘어
휴대폰 확보 실패하면 수사 차질.. 수색 대비해 '깡통전화' 만들기도

최근 법조계에선 "최순실 게이트는 녹음 게이트"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건의 길목마다 협박이나 회유 등의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녹음 파일, 이를 문서로 정리한 녹취록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호성 녹음 파일'이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자택에서 압수한 휴대전화 2대에서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및 최순실(60·구속)씨와 나눈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들을 발견했다. 이 녹음 파일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나 청와대 기밀 유출과 관련한 대통령과 최씨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란 관측이 검찰 주변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던 광고감독 차은택(47·구속)씨와 그의 측근 송성각(58·구속)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검찰에 덜미를 잡힌 것도 녹음 때문이었다. 차씨의 지시를 받은 송 전 원장이 한 광고사 대표에게 "(포스코 산하 광고사인) 포레카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고 당신도 묻어버린다"고 협박한 내용이 고스란히 휴대전화에 녹음돼 언론에 공개됐다. 검찰이 지난 21일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해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압박한 혐의(강요미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핵심 증거도 녹음 파일이었다. 조 전 수석이 2013년 CJ 측과의 전화 통화에서 "VIP(대통령)의 뜻이니 (이 부회장은) 물러나라"고 한 내용이 파일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수영선수 박태환씨에게 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하는 녹음 파일과 대통령 대리처방 의혹을 받는 차움병원 관계자의 녹음 파일, 최태민씨의 의붓아들 조순제씨의 녹취록 등도 언론에 공개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녹음 파일들은 외부에 알려진 것만 10개 가깝다.

일선 수사 검사들은 "휴대전화 속 녹음 파일이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지검 부장검사는 "녹음 파일은 그 어떤 물증보다 강한 증거 능력을 갖기 때문에 사건 관련자의 휴대전화에서 녹음 파일을 찾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 됐다"고 했다.

검찰은 작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졌을 때도 '친박 실세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육성(肉聲)이 담긴 휴대전화 녹음 파일을 핵심 증거로 내세웠다. 2013년 불거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내란 음모 사건에서도 이 전 의원이 RO(혁명조직) 비밀모임에서 "철탑 파괴가 군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 내용 등이 담긴 녹음 파일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녹음 파일은 강력·도박 사건 등 일선 수사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작년 1월 서울에서 내연녀가 소주에 청산가리를 타 본처를 살해한 사건에서도 핵심 증거는 휴대전화에서 나왔다"고 했다. 내연녀의 휴대전화에서 '청산가리를 소주에 타야 한다' 'CCTV를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와 통화 녹음 파일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검찰이 작년 해외 원정 도박을 알선한 '범서방파' 조직원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도 일부 조폭의 휴대전화 속에서 도박 빚을 독촉하는 녹음 파일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반면 휴대전화 확보에 실패하면 수사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서울의 한 지검 평검사는 "작년에 기업 관련 수사를 했었는데, 관련자들이 압수 수색에 대비해 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버리고 '깡통 전화'를 갖고 있어 어렵게 수사를 했다"고 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범죄에 관련된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에 간편한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이용해 상대방의 약점 등을 남겨두려 한다"며 "각종 사건에서 녹음 파일이 등장하는 사례가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상대방에게 불리한 부분만 녹음을 하는 식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분명 생길 것"이라며 "편리해진 휴대전화 기능이 때론 수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