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5세.. 세상은 아무리 다녀도 신기해"

백수진 기자 입력 2016. 12. 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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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할배들의 무한질주' 낸 김영기 프로농구연맹 총재]
일흔 살 넘은 옛 동료 다섯 명과 12년 동안 알프스·호주 등 여행
절약하려 쥐 나오는 창고서도 자 "'꽃보다 할배'보다 우리가 한 수 위"

"여행사에서 일흔 넘은 노인은 패키지에 끼워주기 싫은 티를 팍팍 내요. 느리고 생리 현상 잦고 입맛도 까다롭다는 거예요. 더럽고 치사해서 우리끼리 떠났지."

김영기(80) 프로농구연맹 총재가 여행 에세이 '할배들의 무한질주'를 펴냈다. 옛 동료 다섯 명과 2004년부터 6회에 걸쳐 미국·호주·알프스 등 2만4400㎞를 렌터카와 기차로 돌아다닌 기록이다. 평균 연령 일흔다섯인 노인들이 번갈아 가며 봉고를 몰아 로키산맥에 올랐고 돈을 아끼느라 알프스 텐트촌에서 청년들과 밤을 새웠다.

김 총재는 1956년과 1964년 올림픽에 농구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고교 2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불려가 농구 선수가 됐지만 시험 쳐서 고려대 법대에 진학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농구 코트를 떠나선 은행원으로 취업해 중소기업은행 지점장·신용보증기금 임원까지 지냈다.

할배들 여행의 기본 원칙은 '저비쾌유(低費快遊·적은 비용으로 재미있게)'였다. 은퇴 후 생활이 빠듯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란다. 캐나다 로키산맥을 12일 여행하는 동안 18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한때는 비즈니스석 타던 사람들이지만 이젠 다 이코노미 타요. 돈 아끼려고 쥐 나오는 창고에서 자기도 했죠."

그는 여행 성공 비결로 치밀한 준비성을 꼽았다. 숙박·총무·요리 등 역할을 나누고 속초에서 서울을 렌터카로 오가며 교통 담당을 선발했다. '아침·점심은 자유롭게, 저녁만 같이' '새벽 6시 기상, 밤 11시 취침' 등 세부 행동 요령도 정했다.

tvN 예능 '꽃보다 할배'를 봤냐고 묻자 "거긴 짐꾼과 스태프도 있지 않았느냐"며 "우리가 한 수 위"라며 웃었다. 장난기도 예능인 못지않았다. 10달러 걸고 돌아가며 수수께끼를 내거나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분화구 먼저 찾기' 같은 게임도 했다. 잠자리는 무조건 사다리 타기 '복불복'이었다.

등산복 입은 아시아 노인들이 몰려다니자 눈에 띄었다. 한번은 숙소 경비원이 '작업공은 출입금지'라며 쫓아냈다. "그래도 이렇게 입고 호주 골드코스트도 갔어요. 비키니 아가씨들은 우릴 구경하고 우린 우리대로(웃음)."

좌충우돌 여행을 책으로 남기기로 하고 지난해 다시 모였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술을 먹으면서 "오늘은 유럽편이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복기했다. 여행 중간에 찍지 못한 사진은 김 총재가 직접 삽화를 그렸다. 경비도 표로 추가했다. "노인을 위한 가이드북이기도 해요. 그대로 따라가도 될 정도로 자세합니다."

그는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글을 썼을 것"이라 했다. 존 그리샴과 시드니 셸던의 소설 원서를 찾아 읽는 독서광이다. 책 머리말에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인용했다. "노인이 바다에서 청새치를 잡았듯, 우리도 바다 밖으로 가 자부심을 얻었어요. 떠나기 전엔 누구나 안 될 거라고 말렸거든요."

아침 인사는 "밥 먹었어?"가 아닌 "약 먹었어?"였다. 통풍·고혈압·당뇨 등 질병도 다양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이유를 물었다. "늙으면 건강·친구 등 잃는 게 많죠. 하지만 '잃다'는 영어로 'lose', 스포츠에선 '진다'는 의미로 쓰잖아요. 늙었다고 지긴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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