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탄핵, 박정희 신화 청산할 기회 촛불시위는 민주주의의 안전망"

구영식 입력 2016.12.09. 20:48 수정 2016.12.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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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말하는 '촛불과 탄핵'

[오마이뉴스 글·사진:구영식, 편집:최유진]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 구영식
7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의 오래된 카페 '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을 지냈던 다니엘 튜더(34)는 만나자마자 신이 난 표정으로 기자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동영상에는 광주 시민들이 플라스틱 '바가지'를 깨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가 담겨 있었다. 

"광주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시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서울보다 작은 도시지만 좀더 짜릿하고 맵게 말이죠. 플라스틱 바가지를 깨는 퍼포먼스는 정말 창의적이었어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아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그는 "촛불집회는 모든 면에서 아름다웠다"라고 촌평했다. 경이로움, 감동, 부러움 등의 감정이 묻어나는 평가다. 그는 "평화로운 저항이 너무나 아름다웠다"라고도 했다.  

"한국 친구들은 최순실씨 때문에 계속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해요. 그런데 촛불시위를 보니까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할 것이 아니라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씨가 지배했다... 너무 비이성적"

다니엘 튜더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불연속적이지만 7년여 간 한국에 거주했고, 지금도 수시로 영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 밀착해 한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을 꼼꼼하고 예리하게 관찰해왔다.

그러한 관찰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2013년),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2015년) 출간으로 이어졌다. 언론(<중앙일보>,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들도 호평을 받았다. 그는 "나는 '우아한' 영미권 저널리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그는 7일과 탄핵안이 가결된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물정을 모르는 일부 외신기자들은 '모든 한국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이런 스캔들을 겪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지만 한국에 오래 산 외신기자들은 '이것은 다르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했다"라며 "제3자의 처지에서 보면 최순실 게이트는 엄청난 비리사건이고 당황스러운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전직 대통령 때에도 비리사건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런 정도로 비이성적인 비리는 없었죠. 다른 대통령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지배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씨가 지배했어요.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나 김기춘씨에게 권력을 밀어주고 자신은 꼭두각시였죠. 박 대통령이 뭐 하는지는 모르고 퍼블릭 페이스(public face, 공식 발표)만 해요. 너무 비이성적이고 이상해요."

그는 "그동안 한국 우파들은 국가에 집착해왔고, 국가를 해외에 자랑해왔다"라며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이미지를 파괴시켰고, 결국 한국의 우파들도 박 대통령을 외면하게 됐다"라고 꼬집었다. "다시 투표한다면 박 대통령이 얻을 표는 3-4%에 불과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혈통 숭배로 유력 정치인이 됐고, 대선주자에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어요. 2012년 대선 당시 TV토론을 보니까 말도 잘하지 못했고, 아는 것도 부족했고, 이슈를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선거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박정희'였어요."

그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광화문에 가서 나이 많은 분들이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들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를 생각하고 있었다"라며 "박 대통령을 '박정희의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제가 무속을 믿지 않지만 첫 번째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당을 인터뷰하다 보니 무당과 무속을 존경하게 됐다"라며 "그런데 최순실 사태로 무당들의 명예가 파괴돼 안타깝다"라고 꼬집었다.

"해외언론에서는 비선실세문제보다는 샤머니즘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한국정부는 샤머니즘이 지배한 정부이고, 비아그라 문제도 있었다'는 식이에요. 해외언론들이 여러 가지 엽기적인 서브 스캔들(sub scandal)에 집착하다 보니 그런 것인데 문득 무당들이 불쌍해졌어요."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 구영식
"영국에는 비선실세도, 100만 이상 시위도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 두 달 간 광주에 내려가 있던 다니엘 튜더는 광주와 서울에서 열렸던 촛불집회에 참여해 '촛불혁명'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촛불집회는 미학적인 면이나 의미적인 면에서 아주 아름다웠다"라며 "시위가 평화로워서 참 좋았다"라고 말했다.

"촛불은 정말 아름다운 저항의 상징이었어요. 외국사람으로서 참 부러웠죠. 특히 '박근혜 하야하그라', '대한민국 청와텔', '아웃백 아웃박' 등의 포스터, (시위현장에) 설치했던 단두대, 이마트에서 내건 '닭잡는 날' 광고 등 풍자와 유머감각이 넘쳤어요. 이러한 풍자와 유머가 있어서 아주 좋았어요. 역시 폭력보다는 풍자죠!"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다녔던 그는 "제가 아는 한 영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위가 열린 적은 없었다"라며 "토니 블레어 총리 때 이라크전쟁 반대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시위규모는 수십만 명에 불과했다"라고 전했다.

"영국 같은 경우 10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있다면 폭동이 일어나죠. 자동차를 뒤집고, 불을 붙이고, 돌을 던져요. '촛불이 무슨 소용이냐? 돌을 던져야지'라고 할 거예요. 수십만 명이 모인 이라크전쟁 반대 시위 때도 폭력성(폭력적인 일)이 있었어요. 영국에는 비선실세가 없지만 한국처럼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큰 시위가 생길 수도 없고,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다고 해도) 한국처럼 평화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예요."

자신도 대학생 때 등록금 문제 때문에 한두 번 시위에 참여한 것이 전부란다. "저는 학생운동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조용히 글을 쓰는 스타일이었다"라고 강조한 그는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나라이고, 최고의 시위문화를 보여준 나라다"라며 "영국에도 이런 시위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많은 외신기자들이나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사람들이 맨날 시위하니 짜증난다'고 하는데 저는 (촛불시위가)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라고 생각해요. 영국은 예전부터 충분히 성숙한 민주주의 나라여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안주에 빠져 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도 언론자유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갈등이 생기고 있어요. 영국은 루퍼트 머독이 지배하는 나라에요. 루퍼트 머독이 지지한 후보나 정당이 항상 당선되거나 이기잖아요. 그래서 이제 영국에서도 민주주의와 정치 의식을 높여야 할 때가 왔죠."

물론 영국은 정치제도에서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통한 책임정치의 실현이다. 그도 "한국에서 생기는 비선실세문제가 영국에서 생길 리는 없다"라며 "의원내각제와 책임총리 등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제왕 같아요. 하지만 영국의 총리는 국회 제1당이 선택한 지도자일 뿐이에요. 정당지도자라는 얘기죠. 총리의 파워(power)는 정당에서 나와요. 그래서 정당이 총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하면 그냥 끝이에요. 최순실게이트 같은 사태가 생기면 제1당이 지도자(총리)를 버려요. 또는 총리는 정당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당이 어려워지면 정당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사퇴하죠."  

이어 그는 "한국이 민주주의 나라이긴 하지만 비리문제 등 사람들이 시위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라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안전망은 시위문화다"라고 강조했다. "시위하지 않으면 사회문제, 정치문제, 비리문제 등이 악화된다"라는 점에서 시위가 '민주주의의 안전망'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통찰은 미국의 저명한 사회운동가인 사울 알린스키(Saul D. Alinsky)의 언명을 떠올리게 한다. 사울 알린스키는 최근 한국에 번역된 <래디컬-급진주의자여 일어나라>(원제 'Reveille for Radicals', 1946년)에서 "인민(people)의 압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불꽃, 에너지, 생명이다"라며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은 더 많은 인민과 더 많은 집단이 의사를 표현하고 그들의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박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들에게도 책임은 있어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그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촛불시위를 벌인 것 아닌가요? 국민들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촛불(시위)로 그 책임을 표현했다고 봐요.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책임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는 동의하고 이해하지만 약간 지나치다, 한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나라는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도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시위를 많이 하는 편인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 구영식
"박근혜 몰락으로 박정희주의를 제거할 수 있게 됐다"

다니엘 튜더는 "이번 사태는 (한국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에게서 박정희라는 유령을 쫓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박정희주의, (박정희식) 발전주의는 1960-70년대 한국사회나 경제에 맞는 시스템이지만 21세기 한국에는 진짜 안 맞는 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벌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가 역사국정교과서에요. 아버지를 숭배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박정희 잔재, 레거시(legacy, 유산)를 제거해야 해요."

그는 "유신헌법을 기안한 김기춘씨가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다스 베이더(Darth Vader :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인)로 살아남아 있지 않나?"라며 "이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독재정권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이제부터 정부나 대기업,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다는 시니컬한(냉소적인) 태도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좀 더 합리적인 보수와 좀 더 합리적인 진보가 나올 수도 있죠. (한국의 보수세력은) 박정희 영향이 없는 국제적 수준의 보수주의가 되어야 해요. 다음 대선에는 합리적 보수나 합리적 진보쪽에서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특히 비리, 지배구조문제 등 대기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바로잡고, 지난 10년 간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일들을 해소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요."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으로 한국정치와 경제 등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박정희주의, 박정희 신화를 제거할 수 있게 됐다"라며 "박정희 그늘이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촛불과 탄핵은 한국사회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며 "박정희주의가 없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끝으로 그는 "민주주의는 투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법치주의, 언론의 자유, 반비리반부패 등과 관련된 일이다"라며 "한국이 민주주의의 나라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질(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관련기사-다니엘 튜더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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