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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찍은 것도 아니면서 '여성'대통령 욕하고 있다"

정민경 기자 입력 2016. 12. 11. 09:29 수정 2016. 12. 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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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로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말한 곽정은 작가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나는 굳이 메갈리아라는 단어로부터 나를 분리하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나는 메갈이 아니에요”라고 애써 이야기하는 것이 이미, 여성으로서 연대하려는 모든 움직임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답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냐는 물음에 대하여’(편견도 두려움도 없이, 221p)

곽정은씨를 ‘마녀사냥’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새 책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를 읽고 ‘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가 부제로 달린 책의 첫 챕터는 ‘산부인과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것에 대하여’다. 이 외에도 생리, 임신 중단, 이혼, 성형 등 여성에게 따라다니는 이슈들과 강남역 살인사건, 의학전문 대학원생 감금폭행 사건 등에 대한 생각도 읽을 수 있다.

곽정은씨는 “2년 전의 나라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성장에 자부심을 보이는 동시에 “다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부끄러웠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곽정은씨와의 인터뷰는 9일 서울 신사동 카페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전 작품들에 비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숙이, 세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곽정은: “원래 연애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24살 처음 직장에 입사 했을 때부터 여성의 행복, 직장생활, 꿈, 사회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나를 둘러싼 많은 상황들, 사회적 사건들을 고려할 때 부드럽게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이런 톤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책 전체적으로 ‘자기고백’같은 게 느껴졌다. 편견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고백하는 느낌. 예를 들어 ‘레깅스만 입는 게 어때서’라고 생각하면서도 운동갈 때 레깅스 위에 후드를 걸친다는 내용 같은 것 말이다.

“2년 전의 나라면 이렇게 못썼다. 책에도 여전히 편견으로부터의 100% 자유롭지 못한 내가 있을 거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을 기록하고 싶었다. 여기까지는 느끼지 못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도 싶었다. 책 인쇄 들어간 밤에 몇 년 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부끄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지금 읽어봐서 부끄러운 부분 같은 건 없나.

“책을 쓰면서 ‘여기까지 말하면 위험하려나?’라는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생각을 밝혔다는 이유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죽이겠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공격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책 작업이 늦어진 것도 있다. 원래는 이 책을 작년 가을부터 기획했고, 전작인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보다 먼저 나왔어야했다. 그런데 점점 늦어져서 내가 낼 수 있는 마지막 연애 책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을 먼저 내자고 생각했다.”

-마지막 연애책이라니 이제 연애와 관련된 글은 안 쓰는 건가.

“연애 글은 이미 많이 쓴 거 같다. 콘텐츠를 만들면서 경계하는 것이 자기복제이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랑을 한다면 그걸 소재로 한 다른 글들은 쓸 수 있겠지만 연애 실용서나 연애 에세이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연애 칼럼이라는 것이 여성성에 대한 강화나 고정된 성역할을 재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연애칼럼을 쓸 때와 지금과 생각이 많이 바뀌었나.

“사실 지금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때 썼던 연애칼럼은 굉장히 멍청했다. 한때는 ‘남자를 잘 유혹하는 방법’, ‘멋진 남성이 있는 술집’, ‘남자를 침대에서 기분 좋게 해주는 법’ 같은 글을 썼다. 멍청한 글들이겠지만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바보 같은 글에서도 뽑아먹을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더 이상 이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책을 썼다. 이건 내 나름의 ‘씻김굿’같은 일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 내내 책 작업을 했다. 쓰는 과정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장점이 글을 뚝딱뚝딱 빨리 쓴다는 건데 이 책은 한 줄 한 줄이 고통스러웠다.”
▲ 출처: 출판사 '달' 페이스북
-쓰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챕터는 어느 부분인가. 임신, 연애, 이혼, 성형부터 메갈 논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

"엄마 이야기였다. 나의 커리어적 성공, 여성으로 깨달은 것들은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버텨주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서 그 연결성을 명확히 깨달았기 때문에 제일 힘들었고 아팠다. 지금 제 또래나 어린 여성들은 대부분 엄마의 희생에 기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여자끼리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거다.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이러니 한 것은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39살에 딸린 식솔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여성들처럼 아이가 있었다면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가정을 꾸린 여성이 성공하기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정을 가지고 좋은 커리어를 쌓으려면 일이 두세배로 불어나버리는 거다.

"한국 기업의 문화를 결정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한국에서 여성은 양육과 출산을 거치면서 아예 밀려나니까. 그 과정에서 버텨줄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카르텔은 굉장히 견고한데 살아남은 여자는 또 ‘독한 것봐’하면서 타자화 된다. 그래서 결국 결론이 ‘역시 남자를 잘 만나야돼’로 난다. 그러면 또 김치녀라고 욕한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긴 하지만, 방송가는 더 심할 것 같다.

"방송현장 역시 방송 전반에 결정을 내리는 CP나 PD가 대부분 남자다. 그렇다보니 남자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다룬다. 방송에는 굉장히 다양한 타입의 남자들이 발언권을 가진다. 뚱뚱한 남자, 머리 벗겨진 남자, 이혼한 남자, 양아치, 막말하는 남자, 젠틀한 남자 등등. 

반면 여자들은 애교 있는 어린 여성 아니면 ‘아주머니 타입’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만 비춰진다. 다양한 여성들의 발언권이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활동한 지도 몇 년 지나지 않았나. 그동안 방송가에서 변화는 없는지.

"미세하게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장동민씨가 마녀사냥에 나와서 “여자가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라고 말했을 때 그때 현장은 다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말 자체가 여성들의 표어가 되버렸다. 만약 지금 누가 방송에 나와서 저런 말을 한다면 집중포화를 받지 않겠나. 최근 논란이 된 DJ DOC노래도 몇 년 전에 나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이의 ‘나쁜X’이라는 노래도 마찬가지고. 이미 사람들 안에 어떤 버튼이 눌려버린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탄핵의 날(인터뷰 당시 12월9일)이다. 요즘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과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별개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여성들의 자의식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 지인이 ‘박 대통령이 여성의 권익에 재를 뿌리고 갔다’고 하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만약 그분이 남성이었더라도 다른 안 좋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올림머리나 보톡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에 하지 않고 악을 저지른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분은 남자였어도 뭔가 다른 일을 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걸 두고 ‘여자라서 이랬다’는 식으로 가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여자라서 찍어준 것 아니지 않나. 불쌍해서 찍고, 박정희 딸이어서 찍고, 이제 여성성을 두고 욕한다.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남자대통령들은 훌륭하셨는지 묻고 싶다. 누구는 독재하고, 누구는 쿠데타하고, 누구는 IMF 만들지 않았나. 명예롭게 집권 후기 맞이한 대통령이 없는데 굳이 여성성을 욕하는 것은 애초에 여자를 욕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시국에 대통령을 욕하는 척, 여성들을 욕하는 모습을 티없이 드러내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시국이 가져다주는 좋은 ‘리트머스’라고 생각한다. 여자라서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는 것 아니냐.“

-하지만 그런 것을 지적하면 ‘프로불편러’ 같은 말을 듣기 마련이다.

"“싸움 붙이지 마세요”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는 ‘남자여자 싸우지 말아요’라는 말이 너무 싫다. 싸울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풀어야 하는 거다. 싸우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입 다물고 있으라는 폭력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생각할 때는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온 것 아닌가."

▲ 곽정은 작가. 사진=정민경 기자.
-최근에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나온다. SNL 이세영 사건도 그렇고.

"강간, 성추행, 성희롱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신체적 파워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상황에서 이를 이용한 남자들이 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 핵심은 성적인 이야기를 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둘 사이에서 육체적이든 사회적이든 권력관계가 존재했느냐, 그 권력관계를 통해 위압적이었느냐가 핵심이다. 만약 성숙한 사회였다면 역차별 운운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역차별을 운운하는 것은 가해자였던 것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일, 사실 피곤한 일이다.

"여성으로서 이런 이슈를 인지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 사실 이런 생각을 안하면 대부분의 남자랑 다 사귈 수 있다. TV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DJ DOC 노래도 들으면서 재미있게 집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살면 욕먹고, 남자친구랑 싸우고. 불편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리트머스’를 통해서 평생 나랑 같이 갈 사람, 가지 않을 사람을 선별하고 나랑 뜻이 맞는 사람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는 게 너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소원해져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원래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의 원제가 ‘나라는 리트머스’ 였다.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다 들어봤다. 그런데 거기에 꼭 여성이 좋은 말을 해주고, 남성이 나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편, 여자편 이런 게 아니라 합리적인가 불합리한가, 정의로운가 아닌가를 봐야하는 거다.

이 책 역시 리트머스지로서 쓴 책이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슬픈 일은 가장 힘들게 쓴 책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낸 책 중에 제일 안 팔리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것 역시 한국사회에 대한 리트머스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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