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19.4%' 공공부문 뿌리내리는 생활임금제

최우리 2016. 12. 1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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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법]
2015년 서울서 시행 뒤 2년 만에 속속 도입
평균 7725.8원..최저임금보다 19.4% 많아
기초지자체도 226곳 가운데 51곳서 시행
지자체와 소속 공공부문 노동자 3만여명에 적용
기간제·60대 이상 등 저임금 노동자에 효능감 커

[한겨레]

실질적인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기 위해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 지자체가 잇따르고 있다. 2011년 대학 청소노동자 파업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생활임금 쟁취’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울시 성동구 도시관리공단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홍아무개(59) 조리사는 주중 동료 1명과 60인분의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2011년부터 이곳에서 일한 홍씨가 지난해 받은 임금은 시급으로 5580원, 월급 110만원 정도였다. 딱 최저임금만큼이었다. 무기계약직인 그의 급여명세서에는 시간외수당 말고 다른 수당이나 상여금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1월1일부턴 홍씨의 시급이 7600원으로 크게 올랐다. 월급으론 158만원 정도를 받는다. 지난해 성동구가 생활임금 조례를 도입해 구청 산하 기관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적용한 덕이다. 성동구 생활임금액은 올해 최저임금(시급 6030원)보다 26%나 높다.

홍씨는 다달이 더 받게 된 40만원을 “거금”이라고 했다. 그는 “(성인인 아들딸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110만원으로 살 수 있나요? 40만원이면 거금인데, 살림에 많은 보탬이 되지요. 생활은 전처럼 하고 더 버는 돈은 저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돈이 있으니까 일할 때 좀더 신이 나지요.” 내년 그가 받을 시급은 8110원으로 오른다. 성동구가 최근 그렇게 결정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녹지 조경 시설관리를 하는 오해수(71)씨도 160만~17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다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생활임금을 도입하면서 올핸 180만원 남짓 받는다. 기간제로 매년 3~11월에만 일하는 오씨는 “돈을 좀더 받으면 힘든 일도 수월하게 느껴진다. 11명의 동료 모두 만족하며 일한다”며 “동료들과 일을 마친 후 학교 앞 술집에서 5천~1만원씩 돈을 모아 술 한잔 할 때 일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저소득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한국 사회 핵심 문제인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생활임금제가 착실히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첫 도입은 2013년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가 했다. 2015년엔 광역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시가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11일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에 생활임금제를 시행하는 광역지자체는 모두 10곳에 이른다. 첫 시행에 들어가는 전북·강원·충남·인천을 비롯해 이미 시행 중인 서울·경기·광주·세종·대전·전남 등이다. 서울시가 제도를 도입한 뒤 2년 만에 9곳이 는 셈이다.

이들 광역지자체가 최근 결정한 내년치 생활임금액(시급 기준)은 평균 7725.8원이다.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적용하는 최저임금 2017년치 시급 6470원보다 19.4%(1255.8원)나 많은 액수다. 생활임금액에 포함하는 수당 기준 등이 저마다 다르긴 하나, 일단은 광주가 8410원으로 가장 액수가 크다.

연간 오름세도 최저임금보다 가팔라 현재 생활임금 적용을 받는 공공부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에 끼치는 영향이 만만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제도를 운영한 광역지자체 6곳의 올해와 내년치 생활임금액 평균을 견줘보니 7247.8원에서 7895.8원으로 평균 8.9%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최저임금 상승률(7.3%, 6030원→6470원)보다 1.6%포인트 높은 수치다.

주로 지자체 산하·소속 기관 노동자인 생활임금 적용 대상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1784명이던 광역지자체 적용 대상자는 올해 4574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는 약 1만5720명으로 더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군·구 기초지자체 51곳에서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1만4717명)까지 보태면, 전국적으로는 모두 3만여명에 이른다.

애초 제도 도입의 목적대로 생활임금제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개선에 끼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의 자치구 4곳에서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시설관리공단 노동자 447명(주차·환경미화·고객응대·시설유지보수·사무업무 등)을 대상으로 ‘생활임금제 시행 성과 모니터링’을 한 결과 나이가 60대 이상이거나 계약직·아르바이트 신분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제의 효과를 더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60대 이상 노동자는 생활임금을 적용받은 뒤 월급 만족도와 업무능력·태도가 나아지고 이직에 대한 고려나 돈 걱정은 줄었다고 답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고 고객만족도가 올라간다는 답변도 많았다. 특히 환경미화나 고객 응대 직군이 많고 계약직 비중이 높으며 고졸 이하 학력이 많은 60대 이상 노동자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고용안정성이 낮은 기간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만족도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현재 월급 만족도, 생활임금 금액 수준 만족도, 고용기관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 이직 고려 안 함, 근무환경 개선, 업무능력 향상, 돈 걱정 감소, 가족과의 시간 증가 등을 묻는 항목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고용형태를 보면, 기간제 161명, 아르바이트 54명, 정규직 30명, 무기계약직 193명이다.

연구책임자인 최봉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사 결과 사무직보다 환경미화같이 업무 형태가 명확한 저임금 노동자의 효능감이 컸다”면서도 “생활임금을 적용받아도 여전히 임금이 낮기 때문에 삶의 질 개선까지 이어졌다는 대답은 적었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제가 실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440명 중 271명이었다. 실제 어떤 지출이 늘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식비 101명, 주거비 78명, 저축 또는 보험 56명, 의료비 43명 등의 순서로 답했다.

생활임금 적용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는 남성보단 여성에게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남성보다 여성의 임금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중장년층 저임금 근로 현황과 특징’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1923만4000여명 가운데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모두 506만4000여명인데, 이들의 63.5%(321만7000여명)가 여성이었다. 나이가 50대 이상인 저임금 노동자 233만1000명의 63.2%(147만4000명)도 여성이었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나 지원서비스 등 업종에 50대 이상 여성 노동자가 많다. 이들은 가구의 주 소득원일 가능성도 높아 생활임금이 도입되면 더 큰 도움이 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 447명 중 70%가 가장이라고 답했는데, 가장이 느끼는 생활임금의 효능감이 다른 구성원일 때보다 더 컸다.

지역 단위로 적용되는 생활임금 제도의 도입 확대와 꾸준한 액수 인상이 결과적으로 전국을 적용 단위로 하면서도 액수는 훨씬 작은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구실을 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생활임금은 아직 민간 부문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는 탓에 민간 분야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기준으로 삼은 최저임금 인상론을 계속 제기할 것이란 분석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생활임금 논의의 출발선이 최저임금이기 때문에 생활임금의 확대가 법정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전국종합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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