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황교안 "해경 과실치사 빼라" 압력..수사팀 '인사 보복'까지

강희철 입력 2016. 12. 16. 08:46 수정 2016. 12. 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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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정장 업무상 과실치사 적용방침
검찰 2014년 7월초 법무부 첫 보고

7월29일 123정장 긴급체포뒤 영장
법무부 "과실치사 빼고 청구하라"
법원 기각뒤 10월초 기소까지 뭉개
지검장은 "날 바꿔라"며 기소 관철
"청와대·법무부 기소조차 꺼렸다"

이듬해 수사 지휘부 모두 좌천
황교안, 과장급까지 보복 인사

[한겨레]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오후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 해상에서 해양경찰들이 조명탄을 밝히며 실종자 구조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사건’이라는 미증유의 대형 참사 앞에서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당시 법무부 장관)의 주된 관심은 진상 규명이 아니라 ‘정부 책임’ 회피에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책임과 직결되는 검찰의 해경 123정장 ‘업무상 과실치사’(업과사) 혐의 수사를 한사코 틀어막고, 업과사 적용을 강력히 주장했던 검찰 간부들을 이듬해 정기인사에서 모두 좌천시키는 중심에 그가 있었다는 정황이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 보고는 “철저 수사”, 수사팀엔 외압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28일 황교안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수사 주무부처 책임자로서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 등을 감안하고 사안의 중대성을 검토해서 책임자들에 대해 엄정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법률을 적용”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 수사를 담당한 광주지검 쪽에 전달된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수사팀 구성부터가 쉽지 않았다. 초동 단계에서 인명 구조에 실패한 해경은 당연히 수사해야 하는데, 수사 의지가 의심될 정도였다”고 했다. 검찰은 세월호가 침몰한 뒤 50여일 만인 6월5일에야 해경을 압수수색한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도 “어렵게 팀이 꾸려졌지만, 청와대 쪽으로부터 ‘소방관이 불 끄러 갔다가 못 끈 게 죄냐?’는 말이 나와서 다들 ‘해경 수사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사한 결과 특히 해경 123정장의 책임은 명백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막상 수사를 해보니까 (해경이) 단순히 불을 끄러 갔다가 잘 못 끈 수준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은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곧바로 퇴선 방송을 하거나 선내에 진입해 대피 유도만 했어도 상당수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경일 전 정장을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적용되는 업과사로 처벌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광주지검과 대검의 의견은 쉽게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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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르고 뭉개며 시간 끌기 광주지검이 대검을 통해 법무부에 업과사 처벌 방침을 보고한 시점은 7월 초로 확인된다. 그러나 법무부가 “보완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대며 업과사 적용을 막고 나섰다. 그때 상황을 상세히 알고 있는 한 검찰 인사는 “법무부는 ‘보완해서 다시 보내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등등 온갖 구실을 대며 찍어 누르거나 한참 회신을 않고 뭉개는 등의 방식으로 시간을 질질 끌었다”고 말했다.

이를 재구성해보면, 7월초 김 전 정장에 대한 업과사 처벌 의견을 올린 검찰 수사팀은 7월29일이 돼서야 ‘자살 위험’을 이유로 그를 긴급체포한다. 48시간 안에 영장을 청구하거나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는 “위에서 수사를 못 하게 하자 수사팀이 ‘묘수’를 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아무튼 수사팀은 업과사를 포함한 영장 청구 의견을 법무부에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빼고 청구하라’는 것이었다. 업무일지 조작·폐기 등 혐의(공용서류 손상,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로 청구된 영장은 “영장에 기재된 피의사실만으로는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 기각을 놓고는 ‘왜 핵심(업과사)은 빼고 곁다리로 가느냐’는 법원의 질책으로 받아들였다.”(검찰 관계자) 그 뒤 10월초까지 70일 가까이 검찰은 황 장관을 정점으로 한 법무부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 “시원하게 맘대로 수사했으니…” 그사이 수사팀을 비롯한 광주지검 쪽은 말 그대로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해경의 현장 지휘관 하나도 처벌을 못하게 막으니 들고일어날 분위기였다”고 기억했다. 광주지검장이던 변찬우 변호사는 “(업과사를 빼고 기소하려면) 지검장을 바꾸고 하라”며 ‘사직 의사’까지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변 검사장이 사실상 검찰을 대표해 ‘총대’를 멨던 것”이라고 했다. 변 변호사는 이 사건의 여파로 검찰을 그만둔 뒤 “해경 경비정장의 영장을 청구하려 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영장은 물론) 기소조차 꺼려했다. 정장을 처벌할 경우 책임이 국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업과사로 기소하면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정부의 구조 실패가 부각될 것을 우려했다는 뜻이다. 당시에도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길고 긴 줄다리기는 9월말 대검이 공소심의위원회(공심위)를 열어 123정장에 대한 업과사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이런 의견을 김진태 총장 명의로 법무부에 전달하면서 매듭이 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황 장관은 이듬해 1월 검찰 정기인사에서 광주지검 지휘부와 대검 형사부 간부들을 전원 좌천시켰다. 변찬우 광주지검장, 이두식 광주지검 차장이 그 인사의 여파로 결국은 옷을 벗었고, 과장급도 의외의 보직으로 ‘날아갔다’. 한 검찰 인사는 “그때 ‘세월호-업과사’ 수사라인에 대한 인사는 누가 봐도 보복성이 명백했다. 인사 직후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했다는 ‘시원하게 맘대로 수사했으니 책임도 져야지’라는 발언이 검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며 “말을 안 들으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는지 본때를 보인 셈이다. 인사에 가장 취약한 검사들을 그런 식으로 길들이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철 김태규 최현준 서영지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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