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소통, 청와대의 위세
[경향신문] ㆍ4개의 문과 통하는 오벌오피스, 지척의 참모들 수시로 들락
ㆍ중압감 주는 거대한 대통령 집무실, 참모들과 500m 떨어져
지난 8월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사진 속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벌오피스(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딸린 비서의 사무실에서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망중한을 즐겼다. 양복 저고리를 의자에 걸어둔 채 익살맞은 제스처도 취했다. 비서는 대통령이 그러거나 말거나 책상 위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열린 문 틈으로는 대통령이 사용하는 의자와 그 뒤의 성조기가 흐릿하게 비쳤다.
사진은 백악관의 공간 구성과 미국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벌오피스는 4개의 문으로 사방에 열려 있다. 대통령은 언제든 지척에 있는 참모들 사무실을 찾아 국정을 의논한다. 집무실 바로 앞 회의실인 루스벨트룸에선 종종 피자 파티를 곁들인 즉석 회의가 열린다. 백악관은 유럽 귀족의 저택을 본뜬 호화로운 겉모습이지만 그 속은 민주적 소통을 위한 실용적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통건축 양식을 취한 것은 청와대도 비슷하다. 본관 건물은 전통 목구조에 팔작지붕을 올리는 등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커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지었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청와대를 “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이라고 말한다. 청와대처럼 형태만 전통양식을 빌린 권위주의 정권의 공공건축물을 1970년대 건축계에선 ‘박조건축’(박정희와 조선시대 건축을 합친 말)이라고 조롱했다는 게 승씨의 증언이다.
건물 내부는 더 문제다. 업무 공간이 지나치게 커 사람을 압도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만 한 크기에 책상과 회의용 탁자가 집기의 전부다. 구조 자체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고위관료가 뒷걸음질쳐 나오다 넘어졌다거나 너무 긴장해 오줌을 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대통령이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지시를 해야 할 비서실 직원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근무하는 불통과 비효율 문제도 계속 지적돼왔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위민관에서 500여m 떨어진 본관의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러 가려면 아직도 두 개의 경비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무실을 광화문 앞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결국 경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관을 대대적으로 개조해 비서진 집무실을 끌어오려 했다. 당시 유행한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 나오는 것처럼 참모들과 격의없는 토론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꾸미길 원했다. 장소가 비좁다는 의견에 본관 2층을 복층으로 만드는 구상까지 했다. 그러나 본관 건물 자체가 전통양식으로 완결된 구조여서 개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위민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따로 만들고 연설비서관실을 본관으로 가져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승효상씨는 “청와대가 일상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심에서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시내로 나오고 청와대는 박물관으로 바꾸든지 해서 시민들이 그 좋은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게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을까요.”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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