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취재후] '감성 외교' 노렸으나 '굴욕 외교'로 끝난 아베

이승철 입력 2016.12.17. 17:24 수정 2016.12.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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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 '...'신조 ~~ '...

이렇게만 쓰면 누군지 잘 모르겠다. '블라디미르 푸틴'...'아베 신조'라고 쓰니, 알 것 같다. 러-일 양국 정상의 이름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톱'은 16일 정상 회담이 끝난 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공동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15일 ~ 16일 이틀간 이뤄진 러-일 양국간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의 '감성 외교(?)'가 총 동원된 장이었다.

장소부터가 그랬다. 야마구치 우베 공항에서 회담 장소가 마련된 온천 여관은 차로 1시간 반 가까이 달려야 할 정도로 꽤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 선친의 묘소가 있는 지역구 산속 온천 여관에 푸틴을 굳이 불러들인 아베 총리. 당초 경호 상의 어려움을 들어 러시아 측에서 난색을 표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구소련에서 영유권을 가져간 북방 4개 섬(러시아 명 쿠릴 열도 4개 섬) 문제에 이성적 접근 보다는 감성적 접근을 택한 아베 총리는 결국 온천 회담을 성사 시켰다.

오후 1시 쯤 회담 장소에 도착한 아베 총리와 달리, 푸틴 대통령은 강대국간 정상 회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인 5시간이나 늦은 오후 6시에나 회담 장소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역 음식을 먹고, 밤에는 여유있게 온천을 즐겼으면 합니다.","이곳 온천은 피로를 잘 풀어줍니다.","고즈넉한 온천에서 회담을 충분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모두 발언에서부터 분위기를 잡아가는 아베 총리.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좋은 온천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도 "피로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로를 쌓지 않게 하는 겁니다"라는 말로 영토 문제로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는 강력한 뜻을 내비쳤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일본 측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한 한마디였다.

아베 총리의 감성 외교는 장소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북방 4개섬 원주민(이들 섬의 주민 1만 4천 여 명은 구 소련의 점령 후 섬을 떠났다)들이 적은 편지를 준비해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15일 오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야마구치로 떠나면서는 "(북방 4개섬) 원주민들의 애절함을 가슴에 안고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혔는데, 아마 편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6일에는 정상회담이 끝난 후 유도 고단자인 푸틴 대통령을 위해 유도의 성지라고 하는 '고도칸'까지 굳이(?) 함께 가 시범을 관람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만난 것은 이번 정상회담까지 모두 16차례. 앞서 밝혔듯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까지 친밀한 사이가 됐고, 이번 정상 회담에서도 아베 총리는 이를 최대한 이용해 결과를 이끌어 내려했다.

하지만 17일 일본 주요 신문들은 '영토 문제에 진전이 없었다'는 제목으로 1면을 시작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3조 원에 가까운 경제 협력 선물을 안겼지만, 북방 영토 문제는 사실상 이제부터 '공동 경제 활동'을 논의해보자는 선언적 의미에 그친 탓이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여겨지는 자민당 니카이 간사장 조차 "영토문제에 진전이 없었다. 국민의 대부분이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아베 총리는 브라질 올림픽 폐막식에 '슈퍼 마리오' 복장을 하고 깜작 등장하는가 하면, 취임도 하기 전 트럼프 미 대통령 차기 당선자를 찾아가 '골프채'를 선물하는 등 외교에 또 다른 접근 방법을 보여줬었다. 퍼스트 레이디인 아키에 여사 또한 이번 러-일 정상 회담 전에도 러-일 전쟁 희생 러시아 병사 추모비(야마구치현 소재)를 찾는 등 아베 총리의 감성 외교에서 한 몫을 하고 있다. 딱딱하기(?) 그지 없는 보통의 외교들만 보아온 기자로서는 때로는 신선하게 비쳐지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야마구치 현장에서 이번 러-일 정상 회담을 지켜본 느낌은?...과유불급(過猶不及).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토 문제에 감성적 접근만을 하다 보니 저자세 외교, 매달리는 외교, 굴욕 외교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러-일 정상 회담의 사실상 실패로 국내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한 아베 총리가 또 어떤 외교 전략을 들고 나올지 두고 볼일이다.

이승철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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