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밥 '흡입'하는 교수님, 선배들이 생각해낸 묘책

심혜진 입력 2016.12.1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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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그림요리] 국밥

[오마이뉴스 글:심혜진, 편집: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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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의 어느 날,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모두 한 교수의 연구실에 있는 이들이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그 선배들을 마주칠 때면 '저들에게 과연 즐거운 일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세상만사 다 귀찮고 지겹다는 몸짓으로, 뭔가에 잔뜩 골몰한 듯 긴장한 얼굴을 하고선 검은 슬리퍼를 끌고 복도를 오갔다.

그들의 담당 교수는 과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독불장군으로 유명했다. 어려운 공학 과목임에도 성적은 무조건 절대평가. 그래서 학기마다 낙제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과에선 학과장을 맡고 있었고, 여러 학회 일에도 리더를 자처했다. 선배들의 스트레스가 짐작이 갔다.

국밥과 전쟁 치르던 선배들, 이유가

 어떻게 하면 입천장이 벗겨지지 않고 국밥을 빨리 먹을 수 있을까?
ⓒ 심혜진
선배들과 함께 들어간 곳은 학교 앞 국밥집이었다. 식사가 나온 후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치 국밥과 전쟁을 치르는 이들 같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국밥 그릇을 바닥까지 싹 비운 것이다. 그 뜨거운 국밥을 말이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선배들도 겸연쩍은 듯 그제야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교수님 먹는 거에 비하면 우린 빨리 먹는 것도 아니야. 교수님이 국밥을 좋아해서 만날 국밥만 먹어. 그런데 먹는 속도가 엄청 빠른 거야. 다 먹으면 그냥 일어나서 나가버려. 그러면 우리도 중간에 숟가락을 놓고 따라 나가야 돼. 교수님 먹는 속도에 맞추려고 막 먹기도 해봤는데, 입천장이 다 벗겨지더라고."

밥은 먹어야겠고, 국밥은 뜨겁고...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뜨거운 국밥을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지, 선배들은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교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수에게서 국밥을 빨리 식게 만드는 특별한 행동이나 뜨거움을 참을 수 있는 비법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의심 가는 행동이 있었다.

"밥 먹으러 가면 반찬이 먼저 나오잖아. 그러면 교수님은 늘 배추김치를 먼저 드시는데 거기에 비결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

선배들이 생각해 낸 비결이란, 입에 넣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입천장에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입천장이 벗겨지지 않고 뜨거운 국물을 얼마든지 떠넘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입천장에 배추김치를 붙인 채로 국밥을 먹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일단, 교수님의 입천장은 배추김치를 장착할 수 있는 특별한 구조로 되어 있을 거란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역시 공학도다운 해석이다.

국밥 한 그릇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사회

우울한 표정의 선배들이 모처럼 신나는 얼굴로 해 준 이야기는 내게 웃음과 충격과 씁쓸함과 비애를 남겼다. 교수와 제자 사이에 '식사' 문제는 논문이나 프로젝트 연구에 비해 너무 사소해서 이야기 나누기 민망한 주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의 속도대로 먹고,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교수가 좋아하는 국밥을, 교수의 식사시간에 맞춰 입 안에 욱여넣을 때, 벗겨진 입천장을 혀로 훑으며 혹여 비참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너무나 이상해 보였던 선배들의 행동을 머지않아 나 자신도 절실히 이해하게 될 줄은. 나 역시 어느샌가 '눈치 9단'의 사회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데 국밥만 한 게 없다. 배를 채우는 일은 내 존재를 채우는 일이다. 존재의 존엄을 억누르지 않고도, 그까짓 국밥 한 그릇 맘 편히 비워낼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구와 함께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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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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