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고은성, "전력 질주하는 세상, 잠시 멈춰 주위를 둘러보는 이는 로미오와 줄리엣 뿐"

이하나 기자 2016. 12. 2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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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익숙하되 신선했고, 새롭되 낯설지 않았다. 현재 고은성이 출연 중인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하고 있는 정체성처럼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본 플롯으로 가져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미오 그리고 줄리엣이라는 남녀의 절절한 사랑에 ‘핵전쟁 이후 시대’라는 색채를 덧댔다. 고은성은 이번 작품에서 방사능 오염의 산물로 태어난 돌연변이 소년 로미오 역을 맡았다.

배우 고은성이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오훈 기자
“가령 ‘피터’와 ‘셸리’가 나오는 어떤 작품의 대본을 받아봤는데, 내용이 ‘로미오와 줄리엣’과 똑같았다면 저는 오히려 매력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 안에서 상황이나 세계관을 바꿔버린 것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고은성의 말처럼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의 가장 핵심이 되는 중심 플롯을 남겨놓고 모든 설정과 해석을 달리했다. 무대나 극 분위기 역시 이를 증명하듯 마치 지구의 종말의 현장과 맞닥뜨린 양 어둡고 음산하다.

고은성은 “모든 인물이 각자의 목적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이 극 안에서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인물은 로미오와 줄리엣 밖에 없어요. 로미오는 그 중심축에 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스탠더드하게 대변하고 있는 느낌이에요”라고 설명하며 “도무지 채워지지 않던 감정의 허기를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난 한 여자를 통해 충족시키게 되면서 두 개의 종족 간의 싸움에 계속 제동을 걸게 되는 캐릭터에요”라고 맡은 캐릭터에 대해 언급했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맡은 세 명의 배우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극명한 차이가 있을 것임을 예감케 한다. 이 가운데 고은성은 인간이 되기 전까지, 모든 감성적이고 따뜻한 숨결을 배제하며 ‘짐승 같은 모습의 로미오’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는 “짐승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날수록 나중에 인간이 됐을 때 오는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 같아요”라며 “변화된 상황에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각각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는 게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마라톤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처럼 이 작품은 좌우는 물론이고 1층에서 3층 무대를 넘나들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분명히 생겼지만, 오히려 고은성을 힘들게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은 어떤 작품을 하게 되면, 그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팬텀싱어’ 경연 준비를 포함해서 연습 이외에도 신경써야할 부분들이 많다보니 뭔가 쫓기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창작 작품이다 보니 그날그날 계속 바뀌는 부분도 있었죠. 여태까지 공연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 고은성이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오훈 기자
하지만 그의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대화를 거듭할수록 캐릭터에 대한 많은 고민과 설정들이 그를 거쳐 갔음이 느껴졌다. 특히 1막에서 그려지는 두 개의 다른 종족의 모습에서, 동등한 입장이라기보다 인간이 더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지적에도 단호하고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고은성은 “돌연변이들끼리 있을 때는 로미오가 말을 굉장히 잘해요.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콘셉트라고 보시면 돼요”라며 “극 중에 ‘인간 흉내’라는 노래도 있어요. 로미오가 인간 흉내를 내고 싶은 건 단순한 외형 때문이 아니라, 인간처럼 어리석게도 굴어보고, 헛된 기대도 품어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이 여자에게 기대도 보는 그런 것들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줄리엣이라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모습이 계속 등장하게 되는 거죠. 이 여자를 닮고 싶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고은성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어디일까.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자 슬픈 장면이라며 입장이 바뀐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신을 꼽았다.

그는 “제가 줄리엣을 부르면 줄리엣은 뒤를 돌아봐요. 그리고 거의 10초간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죠. 종족이 서로 바뀐 모습으로”라고 설명하며 “1막 때 제가 줄리엣을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주고,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갔던 것들이 2막이 되면서 아예 반대가 되거든요.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처음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이 정말 슬픈 것 같아요”라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제가 느끼는 걸 관객 분들도 똑같이 느끼셨을 거예요. 왜냐면 우리는 같이 공연을 만들었으니까요”라고 밝힌 고은성은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보고 있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입장 차이는 있지만 무대를 보고 있다는 건 똑같아요”라며 “예전에는 무언가를 정해놓고 그것만 잘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관객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걸 인지하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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