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민족의 한' 노래한 시인 김소월

이미아 입력 2016. 12. 23. 18:30 수정 2016. 12. 24.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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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시에 문외한이라 해도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꽃’의 첫 번째 연이다.

김소월은 민요시 형식으로 한국적 정과 한을 빼어나게 펼쳐낸 천재 시인으로 사랑받는다.

그의 부친은 젊은 시절 일본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아 폐인처럼 지냈고, 이는 김소월에게 평생 어두운 상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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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 기자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시에 문외한이라 해도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꽃’의 첫 번째 연이다. 김소월은 민요시 형식으로 한국적 정과 한을 빼어나게 펼쳐낸 천재 시인으로 사랑받는다.

김소월은 1902년 8월6일(음력)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그의 부친은 젊은 시절 일본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아 폐인처럼 지냈고, 이는 김소월에게 평생 어두운 상처로 남았다. 오산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상대에 입학했지만, 관동대지진 때문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후 오산학교 교사였던 스승 김억의 지도로 시를 쓰기 시작해 1920년 ‘낭인의 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25년 그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출간했다.

구성군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생계를 위해 고리대금업에도 잠시 손을 댔다가 그만뒀다. 그 뒤 실의에 빠져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해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질시를 받았다. 1934년 12월24일 다량의 아편을 먹고 33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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