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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속출..'권력'에 맞선 '폭로'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입력 2016. 12. 2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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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연말정산 ⑥] 문화예술계 만연한 성폭력..페미니즘의 반격
붉은 원숭이의 해인 2016년은 굵직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시기였습니다. CBS노컷뉴스가 올 한 해 문화·연예계에서 나타난 인상적인 흐름을 되짚어 보는 '연말정산'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방송연예가의 봄
② 문화예술계 뒤흔든 '블랙리스트' 왜 위험할까
③ '세대교체' 바람 속 웃고 운 아이돌
④ 잘나가던 한류의 '한한령' 수난시대
⑤ 표현의 자유 빼앗긴 영화계에도 봄은 오는가
⑥ 성추문 속출…'권력'에 맞선 '폭로'
<계속>

지난 5월 21일 '강남역 묻지마 살인' 추모현장인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헌화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권위와 정보를 지닌 남성 작가들은 스스로를 현실의 권력까지 넘어서는 존재로 여기기 십상이에요."

지난 10월 유명 소설가, 시인, 큐레이터 등의 잇단 성추문으로 문화예술계가 몸살을 앓던 때 한 문인이 내놓은 진단이다. 그는 "이러한 작가들은 여성을 대하는 것이 권력 관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인의 지적대로, 올 한 해 불거진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권위를 지닌 유명인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둘러싼 권력·위계 구조 안에서 이뤄져 왔다.

지난 10월 21일 SNS에서는 소설가 박범신이 방송작가, 출판사 편집자 등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트위터 이용자 '@n*****'는 이날 박범신의 성추행을 상세히 전하며 "다분히 성적인 농담을 해 (박범신에게) 질렸으나 권력관계 탓에 아무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보다 이틀 전인 10월 19일에는 시인 박진성이 시를 배울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린 뒤 이에 응한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위터 이용자 '@D*****'는 "용기내서 적는다. 작년 미성년자였던 나는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 많은 시인(박진성)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썼다. 이에 또 다른 이용자 '@h******'도 "(박진성은) 명백히 성년이 되지 않은 나에게 불온하고 사적인 연락을 지속했다. 나는 앞으로 한국 문단에 몸을 담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수의 문필업 종사자들의 현혹된 말과 실상을 밝히고 싶어 이 글을 올린다"고 폭로했다.

폭로는 문단에서 미술계로 번졌다. 지난 10월 22일 한 트위터 이용자는 큐레이터 함영준의 성폭력을 고발했고, 함영준은 "미술계 내에서 저의 지위와 권력을 엄밀히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작가를 만나는 일에 있어 부주의했음을 인정한다"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문화예술계의 단단한 권력·위계 구조에 균열을 낸 통로는 SNS였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한 증언들이 SNS를 통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산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1일,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은 배용제 시인 등의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10월 22일 트위터 이용자 '고발자5'는 고양예고 재학 당시 배용제 시인과 처음 만났다고 밝히며 그의 성폭행을 폭로했다. 이후 '고발자5'는 같은 학교에 재직했던 소설가 조헌용의 성폭력을 폭로한 '생존자C', 배용제의 금품 갈취를 알린 'HateB' 등의 계정과 연대했다. 이에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106명은 '탈선'을 꾸리고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 강남역 살인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여성운동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연구원은 "물론 다시는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 일이지만, (지난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의 한 주상복합건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 그곳에서 벌어진 자발적인 밤샘 토론, 분홍색 코끼리 탈을 쓰고 나타나 여성혐오 발언으로 갈등을 일으킨 사람…. 이러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진 거죠. 공권력은 이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장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켰다고 봐야 합니다."

이 연구원은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관련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개인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많이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말을 이었다.

"전화나 변호사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봐야 해요. 이를 통해 '당신은 잘못이 없다' '당신이 이런 얘기를 함으로써 우리가 당신을 더 도와줄 수 있다'는 공감의 장이 마련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여성운동은 계속 있어 왔는데, 온오프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싸우면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단체의 활동이 올 들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며 "(남자 아이돌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던) SNL 이세영 씨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성, 여성을 떠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사회적 흐름도 눈길을 끈다"고 진단했다.

이어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니, 각자가 직접 운동·활동에 나서는 면도 있다. 미러링 사이트 '메갈리아'의 경우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여성들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이러한 온라인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적인 담론으로서 페미니즘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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