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폭로' 공익제보자 이름 까라는 조윤선

이유진 입력 2016. 12. 29. 16:56 수정 2016. 12. 3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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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박영선 의원이 의혹 제기하자
"익명의 제보자, 누군지 밝혀라"
28일 교문위에서 또 '실명 요구'
공익제보자, 신분노출땐 '불이익'
시민단체 "본질 호도..제보 못 하게 압력"

[한겨레]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 도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본인이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공익제보자의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거나 몸담았던 조직의 부정부패·비리를 폭로하는 공익제보자는 흔히 내부고발자(휘슬블로어·whistle-blower)로 불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장관 재직 당시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말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케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씨의 연결고리를 드러낸 노승일 케이스포츠재단 부장 등의 폭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 앞에 자신을 노출하는 제보자는 극소수다. 부패방지법은 공무원의 부패 신고 의무를 규정함과 동시에 신고자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신분이 노출됐을 때 조직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각종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 때문에 부득이하게 실명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보자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조 장관이 굳이 문체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로 추정되는 제보자의 실명을 밝히라고 하는 것은 제보자 색출과 탄압, 추가폭로를 방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11월11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긴급현안질의에서 답변하고 있는 조윤선 문체부 장관(왼쪽)과 질의에 나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에스비에스 방송 화면 갈무리

조 장관의 ‘문제적 발언’은 11월11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긴급현안질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겨레>가 11월8일치 1면에서 “조윤선의 정무수석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주도했다”고 단독 보도하면서 조 장관에게 눈길이 쏠린 상황이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장관에게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사람의 제보”라며 최순실씨 여동생 최순천씨의 사위 주학준씨와의 연관성을 캐물었다. <한겨레>가 보도한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조 장관은) 모른다고 하지만 이것을 목숨 걸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조 장관은 “장관 사퇴는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면서 대신 “검증할 수 없고, 입증할 수 없는 익명의 제보자, 그 분들이 누군지 밝혀 달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익명의 뒤에 숨어서 사실이 아닌 진술을 하고, 그 진술을 바탕으로 한 기사가 나와 평생 ‘자연인’ 조윤선으로 살아가기에도 힘들 만큼의 누명을 썼다. 익명이 아니라 실명으로 나와 진술을 하고 검증해서 각자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갑’인 기관장이 ‘을’인 일선 공무원들에게 ‘떳떳하다면 실명을 밝히라’는 단순 논리를 들이대며 궁지에 모는 것과 다름없다. 조 장관은 그러면서도 <한겨레>를 상대로 법적인 조처 대신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정정보도만 신청하는 이유로 ‘언론인들과의 신뢰 관계’를 드는 등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기도 했다.

비슷한 장면은 11월30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펼쳐졌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한겨레>가 지난 10월 단독 보도한 5월2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속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의 말을 가지고 조 장관에게 질의했다. 회의록에는 “(기금 지원)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해놓고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겁니다”라는 권 위원장의 말이 기록돼 있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지원 심의를 자율적으로 할 수 없음을 토로한 대목이다.

이 의원은 조 장관에게 권 위원장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냐고 물었지만 조 장관은 어찌 된 일인지 그날까지도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이 의원이 “누가 어떤 말 했는지 나와 있으니 확인하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해서 그렇게 발언을 한 전·현직 관계자가 누군지 정말 실명을 밝혀서…”라며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와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가까운 길을 두고 굳이 ‘취재원 보호’ 의무가 있는 언론사를 상대로 제보자를 밝히라는 요구를 하겠다는 셈이다. 조 장관은 이 의원이 수차례 “확인하라”고 요구하고서야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조 장관의 ‘실명 요구’는 자신을 향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반복됐다. 28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에 대해 모두 부인·모르쇠로 일관하면서 11월 긴급현안질의 때와 마찬가지로 “제보자 실명을 밝히라”고 거듭 요구했다. 그는 곽상도 새누리당 의원이 “최순실을 여왕님 모시듯 데리고 온 조윤선 장관이 어떻게 최순실을 모를 수 있느냐는 재벌 사모님들의 제보가 여러 의원실에 들어왔다”는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의 언론 인터뷰에 관해 묻자 “나는 최순실을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며 이 의원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 의원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그 제보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셨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고소와는 별개로 자신이 직접 제보자가 누군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조 장관은 또, 14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과 관련한 증언을 한 이현주 컨설팅회사 대표에 대해서도 문체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누구로부터 전언을 들었고 봤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는 청문회에서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관계자 여러 명에게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박 대통령 검진에 동행했고, 그때 조 수석이 ‘이현주와 조원동이 브이아이피(VIP) 중동 사업에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증언했다. 조 장관은 28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이 대표는 근거를 밝히지 않고 나에 대해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을 말했다. 법적인 조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은 조 장관의 ‘실명 요구’를 두고 “내부고발자를 협박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소장은 “이러한 요구는 블랙리스트 문제의 본질을 돌리고, 더는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부패 방지에 있어 내부고발자 보호는 상위 과제 중 하나다. 한국 사회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조 장관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8일 <교통방송>(tbs) 라디오에 출연해 ‘제보자 실명부터 떳떳하게 공개해보라’는 조 장관의 발언에 대해 “굉장히 오만하고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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