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우린 日 너무 몰라.. '美의 랩독' 불리지만 自主國力 계속 키워"

이제교 기자 2017. 1. 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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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이 지난 2일 외국의 주요 정치인과 장관들의 서울대 초청 강연 사진 액자 앞에서 올해 동북아시아 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무엇보다 ‘일본통’으로 불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게, 사실 별게 없는데….”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20년 전 일화를 들려주었다. “미국 컬럼비아대를 다니다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1995∼1997년에 일본 도쿄(東京)를 밑바닥부터 훑었습니다.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라는 정치 신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었습니다. 참여자인 동시에 관찰자로서 일본의 정치 현장을 분석했지요. 아마 본인을 제외하면 제가 선거구를 가장 많이 돌아다녔을 겁니다.” 별난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치학에서는 잘 쓰지 않는데, 인류학에서는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때 인연을 맺은 히라사와는 지금 8선의 자민당 중의원이 됐다. 박 원장은 ‘참여와 관찰’을 중시하는 현장형 학자다. 도쿄에서의 경험은 지난 2000년 일본에서 ‘국회의원이 만들어지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한국인이 쓴 일본 정치 관찰기를 오히려 일본인 독자들이 참고할 정도니, 기록에 강한 일본인들을 두 손 들게 만들었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과도 직접 선(線)이 닿을 정도로 네트워킹에 강하다. 원장실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둘이서 2013년에 촬영한 사진이 작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인터뷰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지난 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예정됐던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아베 총리의 신년사 주제인 ‘새로운 나라 만들기’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익숙해져 있는 일본의 전후체제에서 탈각해 강한 일본을 다시 만들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변국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전후체제에서 벗어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의 나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으로 얽힌 동아시아에서 아베 총리는 동맹인 미국과 함께 자유무역의 확립, 정보의 원활한 이동, 자유항해 원칙이 지켜지는 국제질서 창출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분명하게 재천명했다.

“동북아시아의 외교 안보 방정식이 상당히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박 원장의 얼굴에 우려감이 깃들었다. 그는 “일본은 중국의 공세적 해양전략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데 오키나와((沖繩)를 중심으로 하는 남서부 열도를 군사력으로 위협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의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아베 총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끌어들일 태도다. 전면전을 피하고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손잡고 북방지역과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와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중국 팽창을 견제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도 이해관계에서 일치하는 부분이다.

동북아 현안 진단은 한국 정치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졌다. 박 원장은 “주변의 4대 열강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형성됐지만 한국은 혼돈에 휩싸여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국가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가 사분오열 상태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 상황을 ‘외교와 안보의 대(大)위기’라고 규정한 그는 “보수든 진보든 정치 지도자들이 다른 꿈을 꾸면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만을 일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 제국의 재건을, 시진핑(習近平)은 중화제국의 부활을, 아베는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의 건설을, 트럼프는 아메리칸 퍼스트를 내세워 모두 국익을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과연 미래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데,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외교와 안보의 혜안을 갖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한국은 4대 열강에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웃 나라 일본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박 원장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지난 2012년 집계를 보면 한국 내 일본 연구자들은 1077명으로 미국 연구자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그런데 90% 이상이 일문학, 일어 교육에 치우쳐 있다.

한국의 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이식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법률은 물론이고 교육과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모방했다. 일본 제도의 한국화를 위해서는 언어 능력을 갖춘 일본 연구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 지형과 권력구조, 사회 인식, 국제관계 등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박 원장은 “4대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은 지역 연구나 세계전략 연구가 미·중·일·러에 집중돼 있는데, 제대로 깊게 4대 열강의 움직임을 읽고 있는지 가끔 회의감이 생길 정도로 체계적이지 않습니다”라며 “글로벌 환경에서 지역을 읽어내는 능력을 하루빨리 확보하지 못하면 굉장한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본 정치도 몇 명 정도가 아니고 몇십 명이 달려들어 깨알같이 읽어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박 원장은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의 언급을 소개했다. 최고의 일본 연구가 중 한 명인 최 원장은 한국은 일본에 대해 3개의 안경을 쓰고 있다고 언급한다. 먼저 ‘나쁜 놈, 나쁜 나라’라는 색안경, 다음은 ‘삐딱하게 보이는’ 굴절 안경, 마지막은 ‘사소한 것도 크게 만드는’ 확대경이다.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너무 우습게 여기다가 어떤 때는 두려움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사물과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훈련이 필요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한·일 현안을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하다가도 여러 명이 모이면 포퓰리즘 정책으로 돌아선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핵무장 우려와 관련해 그는 “당분간 핵무장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40t에 달하는 막대한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강국을 지향하는 일본은 정책수단을 항상 손에 쥐려고 하는데,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마지막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능력이 부족한데 의지만 피력하는 것이고, 일본은 해낼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미국에 안보를 위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미국과 일본이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이 일본을 편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일본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정책을 들여다보면 일본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자주적인 국가 역량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라면서 “일본을 미국의 랩 독(lap dog·무릎에 앉히는 강아지, 남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으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핵 대응을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대한 그의 입장은 명확하다. 박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반대하고 있는 반면에 여당은 줄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드 주한미군 배치 연기나 철회는 미국에 불신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중국에는 한국은 ‘흔들면 흔들린다’는 인식만 주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 책임론을 적극 역설해야 하지만 눈치를 보면서 포기하는 방향을 쳐다보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박 원장은 “중국이 반대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규정한다. 되돌아가기에는 멀리 왔고, 외교적 실익도 제한된다.

위안부 합의 역시 좋든 싫든 한·일 양국 정부 간에 최종적·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던 만큼 철회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한국이 협정 철회나 재협상을 선언할 경우 국제적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이 재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사실이다. 박 원장은 아베 총리가 오는 2021년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데 재협상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 협정 무효화 주장은 소모성 논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34개 국가와 GSOMIA를 체결하고 있고 무슨 군사동맹도 아닌데 우려가 너무 큰 것으로 보입니다”라면서 “일본의 침략적인 본능이 드러날 것이라는 인식이 배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전쟁 발발의 유사시 일본에 있는 주일미군이 움직이려면 자위대의 후방 지원이 필요하다. 유류와 식량 등 각종 물자가 공급되려면 일본의 항만과 공항 사용이 필수적이다.

박 원장은 “후방 지원 시스템을 위해서 필요한 한·일 GSOMIA 체결에 대한 재검토는 비합리적”이라며 “전구(전쟁구역)로 따지면 한국과 일본은 일체화된 지역이고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이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하는 대상으로 GSOMIA는 한·미·일 삼각 공조의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국익의 측면에서 현안을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현대일본학회장을 맡았다. 1978년에 창립된 지역연구학회로 24대 학회장이다. 박 원장은 “행사 위주보다는 연구와 저술 본연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아베 시대 일본의 국가전략, 한국과 일본의 동북아 질서관 같은 기획 주제를 놓고 일본이 갖고 있는 생각을 함께 연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원장은 강연과 세미나, 학회 참석을 위해 평균 1개월에 1회 정도 일본을 방문한다.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한국의 정책은 일본과 정합성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오는 2월 일본 방문을 앞둔 그는 ‘박근혜 대통령 괜찮습니까’ ‘위안부 합의는 지켜질까요’ ‘한국 정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라는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일본 정치의 경향을 그는 ‘우익화’라고 분석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의 강한 일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좌절감과 세계화로 일본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감”이라고 진단했다.

박 원장은 “일본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외부와 연결을 시도하는데, 우리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제교·인지현 기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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