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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육아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일·가정 양립 "어렵다"

이동준 입력 2017. 01. 11. 14:42 수정 2017. 01. 1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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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문제를 두고 현재의 근로 환경이나 지원체계로는 '어렵다'고 호소하는 젊은 부부들의 현실적인 이야기와 의견이 모여 공감을 얻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기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수기 500여건을 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10일 전했다.

수기 내용을 보면 처한 상황에 따라 사연은 각기 달랐지만 장시간 근로와 야근이 당연시되는 근무환경, 사회의 몰이해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고민과 어려움이 주를 이뤘다는 점은 공통분모로 꼽혔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이 현대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사진= NTV '내일, 엄마가 없다' 캡처 )
■ 사회의 인식 부족
오사카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남성 A(38)씨는 작년 6월 이혼한 뒤 5살짜리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그는 "집안일은 어떻게든 하겠지만 육아는 대충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에서야 이해된다"고 말했다.

A씨는 밤늦도록 계속되는 야근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회사에 다녔다. 그는 이러한 분위기에 압박을 느껴 차마 정시에 퇴근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그의 아내는 혼자 육아와 가사를 할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은 자주 다퉜다.

그는 아내와 문제가 계속되자 야근이 그나마 적은 회사로 이직했지만 지금도 정시에 퇴근할 때면 '왜 일찍 퇴근하냐'라고 꾸짖는 듯한 시선을 느꼈고, 이직 후에도 변함없는 생활이 계속되자 부부관계 역시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 갈라서야만 했다.

그는 "사회는 남성이 육아나 가사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가끔 정시에 퇴근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장시간 근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 사회의 지원 부족
오는 3월 출산할 예정인 여성 B(29)씨는 "남편이 육아를 돕고 싶어도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B씨는 "남편 마음으로는 아이와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육아휴직은 무리라는 말에 현실의 벽을 느꼈다"며 "남편이 상사와 상의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쉽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푸념 섞인 말을 전했다.

또 4살배기 자녀를 둔 직장인 여성 C(35)씨는 결혼 후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받아 지금껏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C씨는 남편이 곁에 없다 보니 "뭔가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다"고 말한다.

남편은 멀리 있고 자신도 장시간 근로를 하다 보니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고, 이에 원만한 육아가 어렵다는 얘기인데, C씨는 "가사 도우미는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도, 나도 아빠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진 것뿐, 전근이나 장시간 근로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을 그린 삽화. 아이들을 생각하면 일찍 귀가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남성들을 괴롭힌다. (사진= 아사히신문 캡처)
관리직인 50대 남성은 "(업무 완수) 기간이 정해져 있어 무리해서라도 야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도 피해자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
육아와 가사에 대한 남녀 간 차이를 연구한 야모토 레이코 간사이대 교수는 "게시물(수기)을 보면 남성은 직장에서 일하고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며 일부는 맞벌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근무환경이 열악해져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난 지금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며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성이라서 가사나 육아를 등한시한다기보다 과거부터 계속되어온 직장문화와 '남자는 밖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가부장적 인식에 그들 역시 고민하고 힘들어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출산율이 낮다", "혼인율이 낮다" 등의 말뿐인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안 하는지 또는 못 하는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소개된 젊은 부부들의 수기가 평범한 직장인들이 처한 현실이라고도 꼬집었다.

지난해부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대책을 내고 있다. 이에 얼마나,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과거부터 계속된 남녀 간 역할 인식과 차별, 근무환경 등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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