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기내 동승 인터뷰

이상렬 입력 2017.01.13. 07:40 수정 2017.01.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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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기내 동승 인터뷰 전문

Q : 일주일 휴가는 어떻게 지냈나.
A : “사실 편하게는 못 있었다. 일주일 정도 푹 쉬며 사람도 만나려고 했는데, 국내 돌아가는 사정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10년 전인 2006년 11월 15일 뉴욕에 부임했는데 그때도 상당히 두려운 마음으로 부임했다. 희망도 있고 설레고 벅차고 그랬지만 두려웠다. 해본 적 없는 일들을 전 세계를 상대로 해야 하는 거니까.

이제 10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데 이 길이 ‘이렇게 힘들구나, 이렇게 어렵구나’하는 두려운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와 희망을 과연 잘 대변할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저는 정치인이 아니어서 국내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다. 정치 경험이 없다고 폄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얽히고 설킨 난맥상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참 고민이 많았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인지 또 해야 되는 일인가. 내가 회피하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꼭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보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지난 10년간 내가 어떻게 해왔는지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은 놀라실 거다. 정말로 사심 없고, 개인 생활 없고, 가족 멀리 하고, 오로지 공적인 업무만 했다. 1년 365일을 최대한 일요일, 토요일도 없이 활용했다. 그런 노력으로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0년 임기를 마치고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공항에는 400여 명의 환영 인파가 몰렸다. [영종도=김상선 기자]

Q : 10년간 유엔 총장으로서 이룬 업적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 비판이 억울하지 않나.
A : “억울하고 야속하고 답답하다. 이렇게 사람의 진심을 폄훼할 수 있는가. 우리 언론에서 그런 부정적인 것만 부각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이 일을 잘 하면 뉴스가 안 된다. 어떤 일에 만족하지 않을 때,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복합적인 국제 정치 상황에서 나오는 좌절을 내게 쏟아내는 거다. 그래서 사무총장 직을 희생양이라고 하는 거다.

어느 총장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었겠나. 그러나 유엔의 지난 71년 중에 제 임기 10년을 뺀 나머지 61년을 보면 국제 환경이 어땠는가. 예를 들면 냉전기간 중엔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은 별로 없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이 거의 다 했고 분쟁이 별로 없었다. 미ㆍ소가 각자 자기 진영을 컨트롤하고 있었고 많은 나라들이 독립이 안 된 상태였다. 그러나 1960년 이후 많은 나라들이 독립하고 민주화 바람이 일면서 자기 목소리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인종 문제와 분쟁이 계속 생겨났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변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29년 경제 대공황과 비슷한 경제 위기가 딱 80년만에 내가 사무총장 할 때 발생했다. 내가 잘못해서 국제 경제 위기가 생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경제 위기에서 나오는 불만이 전부 다 유엔에 돌아오게 된다. 이때 내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담을 하자고 한 것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G20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동안 미국이 제대로 못한 것을 인정하는 모양이 되니 내키지 않아했다.

(그럼에도) 나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호세 마누엘 마로소 당시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설득해서 유엔에서 주도하자고 했는데, 결국 미국이 자기들이 (주도)하겠다며 싫어하면서도 받았다. 그래서 내가 G20 고정 멤버로 계속 참석했다.

예산 문제도 유엔의 71년 역사를 되돌아 보면, 내 임기 전엔 예산 삭감이 딱 두 번 있었다. 그런데 내 임기 중 8년간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생겼다. 왜 사무총장이 예산을 확실히 관리 못 하느냐고.

그 다음에 개혁과 관련해서 말씀 드리면, 제가 부임해와서 보니까 직원들이 책임 의식이 없고 무사 안일주의였다. 복지부동이었다. 그래서 첫 날부터 이 부분을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엔본부에 61년간 없었던 윤리국장을 내가 만들었다. 또 재산신고제도도 도입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땐 공개 안하던 거였다. 사무총장 당선 기자회견의 첫 질문이 ‘재산 공개를 하겠느냐’ 였는데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상당히 파장이 컸다. 직원들의 재산 공개를 시키는데 1년 걸렸다. 우리로 말하면 차관급 이상 장관급은 다 해야 한다.

그리고 보직 이동제다. 우리 외교부는 3년에 한 번씩 인사 이동을 한다. 한번 인사 이동을 하면 동기가 생긴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고 전임자보다 잘해야겠다고 의욕을 내게 된다. 그런데 유엔본부는 10년, 15년 한 군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재수 없는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10년, 15년 썪기도 하고, 뉴욕이나 제네바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안 움직이려고 한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7년을 싸워서 유엔 총회 회원국들을 설득했다. 회원국들도 자기나라 사람이 예를 들어 정무국이나 경제국에 있으면 편한 게 많다. 그래서 설득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직원들이 (나를)불신임 결의를 했다. 사무총장이 자기들을 너무 못 살게 군다고.

그러면서 ‘저 사람(반기문)은 국제기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최악이다.’ 이런 식의 얘기를 계속 자기들 나라의 특파원들에게 한다. 특히 영미 계통 언론들이 나에 대해 비판적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나 르피가로는 나를 비판한 적이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나를 비판한 기사가 있는지 봐라. 아시아에서 비판한 기사는 일본에 조금 있고 주로 한국이다. 중남미도 별로 없다. 주로 영미권 언론이 나를 비판한다. 참 속상하다.

이런 얘기 들으면 깜작 놀랄 거다. 내가 인사(人事)를 했는데 영국 사람한테 배려가 적었다고 하더라. 역대 유엔 사무총장 8명을 보면 3명이 유럽 사람이고 나머지는 다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출신이다. 유럽이나 영국 식민지 출신이 아닌 이가 페루 출신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전 사무총장인데, 그는 스페인의 왕자 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경우, 유럽이나 영국 식민지 출신도 아니니까 (영미 언론들이) ‘아무 것도 못한다’ 이렇게 쓰는 거다. 이게 인종주의다.

한국 국민과 언론의 적극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힘의 원천이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무총장 직이 끝나기도 전에 현직에 있는 사무총장을 비판한다. 한국에서 비판이 너무 많이 나온다.

유엔 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서 각국 정상들이 빈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부 다 공개적으로 저를 칭찬한다. 유엔 총회 본회의장에서도 하고. 중국 CC TV가 한 시간 분량으로 제 특집을 냈다. 2008년 메릴랜드 대학 발표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저를 뽑았다. 2009년엔 오바마가 당선이 되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1위, 내가 2위가 됐다. 그런데 이런 건 일체 (보도) 안하고 마치 제가 완전히 형편 없는 사람처럼 (보도) 한다. 그런 억울함이 있다.”
반 전 총장과 인터뷰하는 이상렬 특파원(오른쪽).

Q : 탄핵정국ㆍ촛불정국의 최대 피해자가 반총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전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다가 하락했다.
A :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화가 났지요. 어떻게 정부가, 지도자가 이럴수 있느냐(하는 상황에서) 저를 기득권(establishment)으로 보는 거다. 내 성향을 보수층, 기득권에 속한 사람으로 보는 거다. 기득권에 속한 사람은 다 보기 싫은 거다. 이게 정치사로 보면 일종의 쓰나미가 불어오는 거다. 여러 변혁이 있었는데, 4ㆍ19혁명과 5ㆍ18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32년 간의 군사정부를 지나고 김영삼 대통령때 민주화가 됐다. (이런 탄핵 정국은) 그 후 처음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른 차원의 탄핵을 받고 있으니. 국민들이 화가 나고 망연자실하고.

저는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에게 잔소리를 상당히 많이 했다. 딱 불러놓고 ‘이러지 말라. 어떻게 이럴수 있느냐.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민망하게 된 거다.”

Q : 그런 얘기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했나.
A : “박근혜 대통령을 여러 번 만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얘길 들었다.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1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만났는데 그럴 때 그런 얘기 하기가 참 힘든 면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남들이 저 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소신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장담하지만 어떤 보좌관보다 소신있게 제 얘길 했다. 그건 신뢰 관계가 생기면 가능하다.

『정관정요』(貞觀政要ㆍ당태종과 신하들의 문답을 정리한 책)에 보면 왕에게 신뢰가 안 가면 간언하는 신하는 죽는다는 내용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왕이 믿을 정도가 되는 신뢰가 생기면 그 때 건의를 하는 거다. 나는 노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이 인터뷰도 안 해 보고 외교보좌관이 됐다. 그해(2003년) 2월 23일 통보 받았다. 그 당시에 노 대통령에게 개별적으로도 공개적으로도 간청을 많이 했다. 본인이 그걸 다 알아들었다. 미국의 중요성과 외교의 중요성을 다 이해하시고 제 말을 들은 거다. 그래서 고마워하는 거다.”

Q : 박 대통령이 탄핵돼야 된다고 보나.
A :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 원수가 탄핵 대상이 됐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Q : 누구에게 불행하나.
A : “국가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다. 물론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탄핵 받아야 한다. 헌법에 나와 있는 거고 국민의 뜻이 그러니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순수한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선 언급 안 했다. 100만 명 촛불시위때도 (평화롭게 진행되니) 코멘트를 안 한 거다. 그건 순수히 국내 문제다. 그것이 만약 인권 위반에 해당되고 유엔 헌장 규정에 위반된다 할 때는 당연히 개입한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5~6번 성명서를 냈다. 탄핵절차를 거치게 된 것은 국가적 불행이자 국민의 불행이다. 박 대통령 자신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Q : 유엔 사무총장과 대한민국 대통령은 다르다. 과연 잘 할 수 있느냐. 핵심 경쟁력은 뭐냐.
A :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대선) 후보 선언을 안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한 기대가 있고, 국민들이 변화와 희망을 원한다. 사회가 너무 갈라져 있는 면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국제적으로 어떤 기대치가 있다. 그런데 기대에서 자꾸 떨어져 나간다.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면 경제가 안 되는 것은 분명하고 투자도 안들어 온다.

사무총장의 고유 권한은 타협과 조정을 통해서 분쟁을 해결해 세계 평화를 가져오는 거다. 인권을 보장하고 지속적인 개발 성장을 도와준다. 국내 정치의 리더십과는 다르다. 국내는 통치를 하는 거다. 사무총장은 통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협상과 중재를 하는 거다. 통치는 자기가 직접 책임을 지고 문제를 똑 부러지게 해결하는 거다. 사무총장을 10년 해본 경험에 보면 어떤 나라는 왜 실패했고 어떤 나라는 왜 잘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지도자들 수천 명도 더 만났다. 그들에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대통령을 잘할)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완전히 분열되고 계층간ㆍ지역간 격차가 심한 이런 문제를 다 알고 있다. 전문가들 도움 받으면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국 대통령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G20회담 가서도 전 세계 지도자들과 어울렸을 때 한국 대통령이 어느 정도 자리 잡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5년 내에 안 될 수도 있고, 마이너리그에 속할 수도 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제 얼굴과 이름을 안다. 바뀌는 지도자가 있겠지만. 금방 (해결) 된다. 많은 정상들이 개별적으로 꽤 덕담을 했다. 서울의 대사관들에서 여론조사 등을 다 보고 받으니. ‘당신이 되면 우리 관계가 참 좋겠다’고. 덕담으로 하는 얘기다.

혹시 (제가) 기회가 돼서 국민의 신임을 받으면 이제까지 떨어진 (한국의) 신인도는 바로 올릴 수 있다. 누가 한국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있을 거다. '(제가 되면) 아, 믿을만 하다. 한국하고 거래하고 믿고 투자도 할 수 있다’고 여길 거다. 제 성품을 너무 잘 아니까.”

Q : 국제사회에서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지도자가 경쟁력인가.
A : “그런 면에서 남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저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치는 좀 다를수 있지만 내치의 경우도 저는 순수하고 꾸밈이 없다. 남을 위해서 먼저 희생하고, 세상의 어떤 계층 사람하고도 대화할 수 있다.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상의 많은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 다른 종족들과 다 대화했다. 한 사람도 저를 나쁘다고 한 적이 없다. 물론 테러단체나 과격주의자들은 제가 싫겠죠. 매일 비판을 했으니까.”

Q :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껄끄럽지 않았나.
A : “이스라엘도 역대 사무총장 중 나를 제일 신임한다. 그건 제가 기분으로 느낄 수 있고 많은 유대인 그룹이 저한테 얘기하는 부분이다.”

Q : 이번 한국 대선에서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는가.
A :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부가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합을 해야 한다. 이게 시대정신이자 정의다. 그러려면 대타협이 있어야 한다. 대통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수단은 대타협이다. 지금 특권 계층이 이 사회에 너무 많다. 심지어 노동계도 특권층이 있다. 자기 주장만 계속 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어거지를 쓰고 하면 대타협이 안 된다.

이전에 초임 공무원 시절엔 지역주의가 문제였다. 이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소득간 계층이 생겼다.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소득이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자본주의가 되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지역주의, 계층간 갈등, 청소년과 노인문제 등이 생겼다. 그러니까 나라가 네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다. 정부 지도자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직접 나서야 한다. 직접 나서지 않으면 참 힘들 거다. 5년 내에 힘들지도 모르지만 뭔가 기틀은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선진국 문턱을 넘어가기 힘들 거다.

우리는 25~26년간은 중진국에 머물러 있다. OECD나 선진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가는데 (평균 기간이) 8년이다. 우리는 14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6년을 더 까먹고 있는 거다. 복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가 복을 차버린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다 까놓고 해야 한다. 나는 모든 걸 버릴 각오가 돼 있다. 지도층에서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Q : 대통합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A : “사회 원로나 각계 대표로 해서 하이레벨 패널을 만들어 여야, 국회 할거없이 다 참여해서 그렇게 해서 시작을 크게 진짜 진지하게 해야 한다. 그 땐 귀족 노동자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노동개혁 같은 것도 하고. ”

Q : 반 총장은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A : “사람들이 저를 보수주의자로 놓지요. 그런데 저처럼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대한민국 지도자 중 별로 없다. 자기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빼고. 최근 며칠 쉬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과 만났다. 그 사람이 나한테 얘기하기를 ‘당신은 보수주의자로 간주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많이 손해 보는 거 같더라. 같이 일하면서 보니 당신처럼 리버럴(liberal)한 사람도 없는데’라고 했다.

물론 저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보수’라고 본다. 많이 비난 받았던 것이 유엔의 LGBT(성소수자)차별금지결의안 문제다. 이게 유엔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다. 재임 10년 간 내가 한 결정을 유엔 회원국들이 뒤집자고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다. 러시아를 포함해서 최소 50~60개국이 반대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많은 회원국이 나를 지지해서 그 결의안이 통과됐다.

소치올림픽 때 푸틴이 ‘LGBT는 초청도 안 한다’고 했는데 제가 그걸 비판했다. 그래서 러시아와 나의 관계가 아주 미묘하다. 그리고 중국에서 2008년 올림픽 할 때도, 러시아와 조지아 간 전쟁이 났을 때도 제가 비판했다. 러시아ㆍ중국과 (저와의) 관계가 미묘해서 자칫하면 제2기 연임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제가 얼마나 힘들고 고뇌에 찬 결정을 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제가 잘 내색을 안 한다. PR(홍보)을 잘 안 한다. 지도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일이 다 끝나면 직원들이 ‘이건 우리가 한 거야’라고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다. 그런데 유엔이 밤 새워 일을 해도 뉴욕타임스나 서구 언론들은 미국ㆍ러시아 관련 사안이 아니면 잘 보도를 안 한다. 참 그런 면이 서운하다.”

Q : 진보적인 보수주의자라고 했는데.
A : “사형제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뉴욕타임스 사설에도 났다. 그때까지 사형제에 대한 유엔의 입장이 없었다. 2007년 7월에 유엔총회에서 결정했는데, 사형제를 완전히 없애라고는 못하지만,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권했다. 유예를 시켰다. 그래서 한국도 유예를 시키고 있는 거다. (저는) 여성이나 약자나 병자나 탄압받는 사람을 늘 찾아다녔고 위로했다. 그런 면에서 리버럴한 컴패션(compassionㆍ연민)을 갖고 있다고 본다. 유엔에선 그렇게 본다.”

Q : ‘진보적인 보수’는 진보 세력도 보수 세력도 싫어할 수 있는데.
A : “진보에도 좋은 면이 있고 보수에도 좋은 면이 있다. 저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를 수 있다.”

Q : 누구와 함께 정치적 꿈을 향해 걸어갈 건가. 정당 밖에서 광범위하게 제3지대를 형성할 생각인가.
A : “저는 정당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당 생활을 한번도 못했다. 저를 지지할 정당이 없으니 지금 완전히 무소속으로 나와 있다. 언젠가는 저를 지탱해줄 조직과 정당이 있어야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누구와도 대화할 것이다. 국가통합과 대타협을 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 같이 일할 용의가 있다.”

Q : 김종인ㆍ손학규ㆍ안철수를 만날 용의가 있나.
A : “만날 용의가 있다. 만나야 되지 않겠나.”

Q : 대화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A : “시간이 없으니 실질적인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지 않나. 선거를 언제 할지도 모르는데.”

Q : 반 전 총장 중심의 신당 창당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아니면 1대1로 연대할 것인지.
A : “저도 거기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아직 정치공학에 대해 경험이 없는 게 사실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는 한 2~3주 정도 부지런히 만나고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국민들 얘기도 들어보고. 꼭 정치지도자만 만나는 게 아니라 민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흘~2주 정도 봐야 할 것 같다.”

Q : 개혁 기치를 내건 바른정당에 들어가 후보가 되는 시나리오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A : “지금 당장은 어떤 정당에 바로 소속한다든지 그런 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좀 더 상황을 보고 대화를 하겠다.”

Q :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언급했다. ‘87년 체제’는 몸에 안 맞다고 했는데, 개헌에 대한 생각은.
A : “아직 구체적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 혼자만 할 일이 아니다. 개헌은 해야 한다. 그런데 개헌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문제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겠다. 정식으로 개헌을 하자고 할 때는 사계의 권위자를 다 모아서 그들과 좋은 안을 가지고 토의할 것이다. 국민 총의를 받아들여야죠. 시간이 촉박한 것 같다. 선거를 하고 개헌을 하고. 한국은 워낙 빨리 하는 건 잘하는데. 국민이 어느 만큼 소화를 할 수 있을지... 30년만에 개헌을 하는데 잘 해야 한다.”

Q : 외교전문가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경제전문가는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경제를 잘 챙길지 우려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A : “제가 경제전문가라고 주장은 않는다. 하지만 제가 경제를 모른다고 하는데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저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세계 경제의 틀을 짠 사람이다. 유엔 총장이 미시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ㆍMDG: 세계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유엔 계획)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MDG 촉진위원회를 만들고 교수ㆍ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유엔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를 만들지 않았나. 한국의 거시경제는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물론 미시적인 것은 전문가들이 해야 할 것이다. 통화ㆍ재정정책 이런 것까지 거론하는 건 너무하다. 그런 걸 물으면 저는 답변할 수 없다.”

Q :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A : “저는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것은 지금 얘기하기 어렵다. SDG는 빈곤ㆍ기후변화ㆍ평화사회 등 관련 논의를 모두 주도해서 2010년~2015년 5년간 만든 역작이다. 아마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건 처음이다. 한국 경제계도 전체 흐름을 거기에 맞춰야 한다.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까 거기서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 중소기업이 창의적으로 자기만의 레벨과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전부 하청으로 가니까 문제다. 그런 환경에선 창조성이 나올 수 없다. 재벌의 영향이 너무 크다. 거기서 계층간 갈등이 생긴다. 하청업체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60%만 임금을 받으면 그게 불공정한 사회, 불공평한 사회다. 거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세한 계획은 봐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고 본다.”

Q : 양극화ㆍ청년실업에 대해선.
A : “그것도 안 알려져서 서운한데, 유엔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게 나다. 2011년 6월, 2기 당선해서 취임사를 통해 젊은 세대를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청년사절단(Youth Envoy)을 임명했다. 지금 잘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를 젊은 사람만 갖고 안 되니, 경륜이 있는 베르너 페이만 오스트리아 전 총리를 청년취업을 위한 특사로 임명했다. 이게 처음이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주장을 하고 각국 지도자에게 얘기했다.”

Q : 경제도 위기지만 외교 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이다. ‘외교 고수’로서 위안부 문제, 사드 문제 어떻게 보나.
A : “위안부 문제로 제가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거기도 좀 억울한 면이 있다. 한일 간 그렇게 오랫동안 현안이 됐던 문제의 합의를 이뤘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그 합의 자체를 평가하고 환영한 거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뭐가 잘 됐는지 얘기한 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기는 역사적으로 인정이 될 거라고 얘기한 것도, 역대 대통령들이, 내가 김영삼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을 했는데 그때부터 이걸 계속하자고 했는데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 소녀상 세운 거 가지고 일본이 이러저러하다 하지 않나. 만약 10억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건 잘못된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돌려주고 해야지,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내가 아베 총리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통화할 때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그리고 10억엔 얘기가 나오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다며 사죄를 총리대신이 아니라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편지를 쓰겠다는 거다. 그러면 못 받는다고 했다, 사과를 하면 총리 명의로 해야죠. 그때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이 제시한) 돈을 (경상도 사투리로) ‘치아라’라고 하면서 받지 않았다. 국회에서 국내법으로 만들어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지불하도록 했다. 이번 합의가 어떻게 됐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그러나 소녀상 철거하는 것에 대한 양해사항으로 10억엔을 받았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건 단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THAADㆍ사드) 문제는 어떻게 보나.
A : “사드 문제는 북핵 문제가 없었다면 별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 20번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는데 2번 성공하고 18번 실패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패했다고 해서 안심하면 절대 안 된다. 실패할 때마다 기술을 축적한다. 심지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안보는 ‘두 번 다시’가 없다. 경제정책은 수정도 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번 당하면 두 번째가 안 된다.

안보는 그야말로 튼튼하게 해놔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ㆍ미 양국이) 사드 배치에 합의한 것이고, 나는 지지한다. 한ㆍ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방위 축인데 한ㆍ미간 합의된 것을 문제가 있다고 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북한과의 관계도 안보리 결의 등을 통해 북한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Q : 사드와 관련해 중국의 압박과 보복이 심하다.
A : “그건 외교로 해결할 수 있다. 한ㆍ중 관계가 워낙 중요한데 한국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에도 중요하다. 마찬가지다. 중국이 지금 일시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만약 사드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제일 좋은 것이다. 중국도 북한에 대해 좀 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Q : 부산 소녀상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 “원칙대로 해야 한다. 일본이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건 곤란하다.”

Q : 박연차로부터 ‘23만 달러’ 수수설을 억울하다고 했다. 그런데 조카 반주현 씨가 미국에서 기소됐다. 귀국하면 더 혹독한 검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본인에게도 힘들지만 가족들도 힘들 텐데, 대선 출마를 말리지 않았나.
A : “(박연차 건은) 진짜 억울하다. 사실 집사람이나 아이들은 다 반대했다. 우리 집사람이 요즘 들어 이해를 하는 것 같다. 계속 본인도 신문을 보고, 여러 국민들의 염원이라든지 문제라든지 이런 게 신문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하니까 집사람도 자기 혼자 반대해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집사람도 동의한 셈이다.

저는 평소 공직자로서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예수님ㆍ부처님처럼 완벽하지 않고, 잘못한 게 있겠지. 국회 청문회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죽 보면서 내가 만약 검증을 받으면 뭐가 문제가 될까 이런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왔다. 유엔 사무총장을 하면서도 내가 만약 검증 받으면 뭘 받을까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엉뚱한 것, 박연차 씨로부터 돈을 받았다 어쨌다 하는 게 나오는데 참 기가 막히는 거다. 나는 왜 내 이름이 거기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2005년 5월 초 당시 방한한 베트남 외무장관을 초청했는데 그때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사람을 많이 불렀다. 박씨가 1시간 전에 왔다고 신문에 났는데 1시간 전은 커녕 1시간 늦게 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고 인연이 없다. 그런데 왜 그런 얘기가 갑자기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들에 대해서도 ‘갑질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 아들은 우리 집사람을 닮아 나보다 훨씬 내성적이다. 내성적이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안 끼치려 하는 성격이다. 너무 억울해 하고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 골프도 1년에 한 두어 번 치는데 자동차가 없어서 전철 타고 간다. 유엔 사무총장 1기 때 나랑 같이 골프 한두 번 쳤는데 그 때는 예외지만. 걔는 골프 칠 시간이 없다. 주말마다 가족 만나러 가야 한다.”

Q : 어떤 검증도 두렵지 않나.
A : “어떤 검증이라도 받겠지만 검증을 할 걸 갖고 해야지, 인격살인 식으로 하는 건 곤란하다. 진짜 야비한 것이다. 조카 주현이 문제가 나오는데 면목 없다. 할 말이 없다. 딴 사람도 아니고 제 동생이고 조카인데. 사실 아들도 따로 살면 뭐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조카를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데. 그 친구가 어떤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정책으로 대결하지 않고 남의 약점을 캐고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Q : 반 전 총장이 카타르 모자 왕비와 친분이 있다는 것과 연관을 짓는데.
A : “그분들과 친하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업을 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외교를 했으니까 성공했지, 꾸미고 이런 거 체질에도 맞지 않고 그런 거 하지도 않는다.”

Q : 대선에 나오지 않았으면 노벨상 후보도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국민들로부터 더 존경 받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 이렇게 시작한 게 후회되지는 않나.
A : “후회하면 무슨 소용 있겠나. 후회해도 소용 없는 거다.”

Q : 2015년 송년회 때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얘기했다. ‘내가 약해 보이지만 한 번 결정하면 상당히 단호하게 한다’고 했다. 대선 출사표 던진 것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A : “나를 약하게 보는 경우가 꽤 있다. 상선약수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그리고 직접 실천했다. 빼거나 약게 하지 않고 우직하게 했다. 그런 사람이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그것도 꾸준하고 우직하면, 그래서 제가 유엔 사무총장까지 됐다고 생각한다. 재주를 부리고 여기 저기 다른 말을 하면 며칠은 가지만 그 다음엔 들통나지 않나.

내가 또 하나 좋아하는 말은 시종여일(始終如一)이다. 공직 생활하면서 장관까지 하면서 직원들이 많이 변하는 것을 봤다. 조금 자리 올라가면 거기 맞게 재고, 더 올라가면 더 재고, 거만해진다. 직원들에게 늘 사무관 때의 마음자세, 꿈은 키우지만 마음자세는 여일하게 하라고 했다.

또 하나는 태산불사토양(泰山不捨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큰 산은 작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태산이 된다, 큰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버리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바다를 이룬다. 이 글귀가 어디 창고에 가면 있을 거다. 장관이 되기 전까진 ‘여일’하게 했고,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 했고, 사무총장 하면서 상선약수 했다.

서양사람들은 강한 걸 좋아한다. 서양 전쟁을 보면 항복 아니면 그냥 죽여버린다. 동양은 끈기를 가지고 설득, 설복을 한다. 완전히 다르다. 동서양 차이가 있다. 36년만에 아시아 출신 총장이 들어가보니 아시안 문화가 전무하더라. 전부 영미 계통의 서구문화더라. 그래서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깊은 사정을 알면 나를 더 이해할 것이다.

오늘도 들어가서 (인천공항에서) 한 마디 하려고 하는데, 유엔을 폄하 하는 건 내가 참을 수 없다. 그건 여러분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거다. 한국이 얼마나 유엔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사무총장이 떠나기도 전에 그냥 유엔사무총장이 형편없다고 하면 유엔을 욕하는 것이고 유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제 전임이 됐지만 저를 유엔과 연결해서 까면 제 얼굴에 침 뱉기다. 앞으로 유엔 대사들은 어떤 식으로 활동하나, 젊은이들, 청소년들이 전부 유엔에 가려고 하는데, 유엔을 폄하하고... 그런 점에서 화가 난다.”

Q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 “언론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언론이 편파적일 때가 있다. 기자의 시각, 회사의 시각, 상황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론이 연결고리라고늘 생각한다.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언론이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국민의 목소리도 인쇄되고 영상으로 나가야 위정자에게 닿는다.

우리 사회가 분열을 조장하고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데 소셜 미디어가 악용되고 있다. 얼굴이 안 보인다고 해서 막말을 하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가선 안 된다. 언어순화부터 해야 한다. 젊다는 이유로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쓴다. 그러면 자식들이 대를 이어 배우게 된다. 세종대왕이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다. 언어 순화가 안 돼 남을 욕하면 자기 자신을 욕하는 것이다. 얼굴 안 보인다고 남을 욕하고 희열을 느끼고... 남이 받는 고통, 인격말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는 어떤 제도가 있어야 한다. 책임 있는 소셜 미디어가 돼야 한다.”

Q : 서울 10년만에 들어가면 많이 바뀌었을 텐데…
A :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데… 많이 변했을 것이다. 잠시 잠시 가서 봤지만 생활을 하는 건 10년만에 처음이니까.”

Q : 귀국하면서 어떤 점이 두려운가.
A : “사회 전체가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왜 한국이 이렇게 됐나. 10년밖에 안 됐는데, 왜 한국이 전부 적대적으로 변했나. 이젠 겁이 난다.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나는 것 같은 게 총기(聰氣)에서 나는 게 아니라 적의감이다. 이건 누군가 책임지고 고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이 중요하다. 정치가 쓸데 없다고 하고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업이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결국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가 바르게 가야 한다. 꼼수를 쓴다든지 자기 이익만 따지면 안 된다. 제가 46년을 (공직자로) 살아왔는데 이제 뭘 더 바라고,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명예를 남기는 것이지. 저는 원래부터 늘 허심탄회하게 한다. 남이 욕을 하더라도 저는 욕을 안 한다. 두고 봐라. 토론을 하더라도 남이 저를 아무리 비판하더라도 제 입장만 ‘이건 아닙니다’ 그것만 얘기하지, 상대방에게 ‘당신은 왜 이런 점이 있느냐’고 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발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