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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영어유치원' 1년치 교재가 37권에 4528쪽.."학습부담 지나쳐"

배문규 기자 입력 2017. 01. 18. 16:33 수정 2017. 01. 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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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시간표.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7살 어린이가 다니는 ‘영어 유치원’ 1년치 교재가 총 37권, 전체 면수는 4258면에 달하는 등 학습부담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11~12월 유아대상 영어학원 유명 프랜차이즈인 폴리, SLP, ECC 입학설명회를 참관하고 교재와 수업방식을 확인해 18일 발표했다.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처럼 오전부터 하루 3시간 이상 운영하면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흔히 ‘영어 유치원’으로 불린다. 하지만 유아교육기관이 아닌 어학원으로 분류된다.

사교육걱정에 따르면 영어유치원의 일과는 대체로 오전 9시30분쯤 시작해 오후 2시~2시40분에 마친다. 방과후 특별활동을 하면 2시간 정도 더 남아서 숙제, 영어 미술, 한글과 수, 영어 발레 등을 배운다. 교과목은 영어 관련 교과와 비영어교과로 나뉜다. 영어 교과에는 ‘랭귀지’(언어), ‘파닉스’(발음 중심 어학지도) 등이 있다. 비영어 교과에는 ‘아트&크래프트’(미술 활동), 핸즈 온 플레이(교구를 이용한 연산 수업) 등 활동 중심 교과와 과학·수학 등 일반 교과가 있었다. 최근 소프트웨어 과목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되면서 ‘영어코딩’을 포함한 경우도 있었다. 사교육걱정은 “모든 학원이 입학 초기 한두 달을 제외하면 수업, 발표, 소통 등에서 100% 영어를 사용한다고 강조한다고”고 전했다.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3년 차 7세 교재 1년 치 구성.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하지만 수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어 교과 수업 대부분은 상당수가 ‘앉아서 교재를 푸는 방식’이었다. 교재들은 빈칸을 채우거나 받아쓰는 내용이었다. 사교육걱정이 수업을 참관한 한 영어유치원의 1년치 교재는 읽기 교재 6종, 문학 선집(Literature anthology) 3종, 문법과 쓰기(Grammar and Writing) 6종, 읽기와 어휘(Reanding and Vocabulary) 6종, 액티비티 플러스(Activity Plus) 2종, 파닉스(Phonics) 1종, 미 앤 마이 월드(Me and my world) 1종, 동화 10종 등 총 37권에 달했다. 전체 면수로는 무려 4258면에 달한다. 기본 교재의 읽기 지문에는 멕시코 전통, 미국 노동절, 추수 감사절 등 유아들에게는 낯선 내용이 많았다. 또한 수업중에는 영어문장으로 답을 쓰는 형식이 많았다. 사교육걱정은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추상적 사고도 발달하지 않은 유아들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이라면서 “누리과정(유치원·어린이집 공통 교육과정)에서는 유아 발달 단계를 고려해 한글 문자 교육조차 하는 않는 것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영어 교재. pilgrim(순례자), squash(외국 호박) 등 생소한 어휘나 compare(비교하다) 등 추상적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또한 유아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난도가 높아져서 ‘스펠링 테스트’까지 치르고 있었다. 사교육걱정은 입학설명회 Q&A 시간에 나온 졸업생 학부모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했다. “7세 2년 차가 되니까 교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숙제가 많고, 교재가 갑자기 4권으로 늘어나면서…고3 아이에게 ‘야, 이거 알겠니?’ 물어보면 ‘7살짜리가 이런 걸 한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그러는데 그게 말이 되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바쁘다보니 숙제 선생님도 픽업하고 했어요. 근데 숙제 선생님도 놀라는 게, ‘이런 걸 7세가 한단 말이에요?” “저희 애가 2년 차 올라가면서 테스트를 맨날 빵점 맞아 왔어요. 버스에 내리면서 붉그락 푸르락, ‘나 오늘도 빵점 맞았단 말이야!’ 보면 단어 테스트 5개 정도인데 다 틀려서 오는 거예요. 매주 빵점, 간혹 한 개. 근데 어느 순간 애가 연습해서 가고 외워서 가더라고요.”

사교육걱정은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고 가시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발달 단계를 고려하기보다 ‘학습식’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다”면서 “학부모는 자녀가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배우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유아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겨줘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영어 유치원은 서울에 224곳이 있었고, 하루 평균 교습시간은 4시간57분(초등학교 기준 하루 7.4교시), 월 평균 교습비는 약 89만원에 달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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