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反文만 하다 끝날 건가

정우상 정치부 차장 입력 2017. 1. 24. 03:07 수정 2017. 1. 24.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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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탈당파들이 만든 바른정당은 요즘 자신들의 정체성을 '반(反)문재인'으로 잡은 것 같다. 바른정당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이 지난 19일 문재인 전 대표의 일자리 공약에 "사탕발림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건 대국민 사기이고,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참으로 무책임하고 인기 영합적 발상"이라고 했다.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자리를 더 만들면 된다는 편의적 발상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정 준비위원장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고용의 핵심 주체인 기업들이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게 하겠다는 것인지, 바른정당의 일자리 만들기 '상품(商品)' 설명은 하지 않았다. 바른정당의 일자리 정책은 반문(反文), 거기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같은 시각 국민의당 지도부 회의 기조도 '반문'이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및 복지 공약을 거론하면서 "국민이 현혹되도록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매년 재정 적자가 30조원 넘게 발생하는데 국가 부채를 갚아 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대선 후보는 한 명도 안 보인다"고 했다. 재원 대책이 없는 일자리 복지 공약의 허점을 제대로 짚었지만 국민의당도 딱 거기까지였다. "안철수 의원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겠다"고 했지만, 대체 어떻게 이끌어 뭘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의당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반(反)민주당' 거기까지였다.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 모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과 다른 정치를 하겠다며 광야로 나온 사람들이다. 적당히 다수파에 잘 보이고 진영 논리에 기대면 편한 정치를 할 수도 있었지만, "패권주의에 질렸다" "편 가르기 하지 않겠다"며 온실(溫室)을 뛰쳐나와 고생을 자처했다. 그래서 여야(與野)의 나눠 먹기에 질린 적잖은 국민이 기대를 걸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민주당, 그리고 그곳의 유력 대선주자를 비판하거나 차별화에 나서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만 하자고 당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대 정당의 틀에 막혀 말할 수 없던 정책과 대변하지 못했던 계층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대규모 정규직 노조 눈치 보느라 언급하지 못한 비정규직과의 공생(共生), 대타협 문제, 대기업 횡포에 짓눌린 중소기업의 고충을 이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연일 일자리, 군 복무 단축 등 자신의 정책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자신의 상품을 먼저 좌판에 내놓은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 상품의 품질에 대해선 유권자들이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그 옆에서 이 상품이 나쁘다, 저 상품이 어떻다는 비평만 하고 자기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훈수꾼들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없다.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이 그런 훈수만 하다 끝날 것인지, 그 벽을 넘을 수 있을지 곧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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