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뭣이 다른디?..판박이 '나체 총리' 그림 두고 캐나다는 역시 선진국

손영옥 선임기자 입력 2017.01.25. 16:54 수정 2017.01.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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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개최된 ‘곧, 바이(BYE!)' 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로 묘사한 작품 ‘더러운 잠’이 출품돼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해당 작품이 심하게 파손된 것은 물론 전시회를 주최한 통합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징계 위기에 놓였다.

이구영 작가 '더러운 잠'. 작가는 "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아 이를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인데 내용은 보지 않고 여성비하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작가 제공

그런데 2012년 캐나다에서도 이번 나체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1863년 작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스티븐 하퍼 당시 총리를 여성 누드로 묘사한 작품이 공공도서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물론 페이스북 등에서 화제가 됐지만, 풍자 대상이 된 총리 측도 위트 있게 반박하는 선에서 마쳤다. 흡사한 패러디를 두고 이처럼 현격히 다른 반응이 나오면서 ‘표현의 자유’를 포용하는 사회적 성숙도, 품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및 미술계에 따르면 ‘더러운 잠’이 논란이 됨에 따라 ‘곧, 바이’전 참여작가들은 항의 표시로 국회에서의 전시를 5일 만에 중단하고 충정로의 대안공간 ‘벙커’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더러운 잠’이 ‘여성 비하’ ‘인격 살인’ 논란에 휩싸이자 새누리당은 24일 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인 민주당조차 표 의원을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문제의 작품을 출품한 이구영(50) 작가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전시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이 기획했다”면서 “장소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국회에서 열기로 했고, 표 의원은 이름(주최)만 빌려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아 이를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인데 내용은 보지 않고 여성비하라니 황당하다”고 강조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풍자라도 미학적인 완성도가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직설적인 방식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윤범모 전 가천대 교수는 “일반 전시장이 아니라 국회에서 하는 바람에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면서 “전시 공학 측면에서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역효과를 낸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2012년 캐나다의 여성화가 마가렛 서덜랜드가 당시 의스티븐 하퍼 총리를 여성 누드로 묘사한 작품. 보수당의 보수적인 성 (性)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했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최고 권력자에 대한 풍자의 수위가 심한 것일자라도 허용하는 분위기다. 1998년 흑인인 시카고의 헤럴드 워싱턴 시장을 여성 속옷을 입혀 풍자한 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다. 백인 미대생이 그린 이 그림을 두고 흑인들은 분개했고 경찰은 그림을 압수했다. 이에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다.

2012년 캐나다에서도 최고 권력자를 풍자하기 위해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그림이 공공도서관에 전시돼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여성화가 마가렛 서덜랜드는 보수당의 보수적인 성 (性)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하퍼 총리를 여성 누드로 묘사했던 것이다. 풍자 대상이 남자와 여자로만 바뀌었을 뿐 권력자에 대한 비판 의도, 드러난 표현이 거의 판박이다. 하지만 하퍼 총리 측은 “거슬리기(bothered)보다 우리도 즐겁다(amused). 다만 총리는 커피를 안 마시는데…”라고 논평했을 뿐이다. 하퍼 총리의 시중을 드는 것으로 묘사된 여성 관료가 캐나다 국민 커피 ‘팀 호튼’을 들고 있는 게 “팩트와 맞지 않다”는 위트 넘치는 지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 작품 ‘더러운 잠’이 극우적 성향으로 보이는 시민들에 의해 바닥이 내동댕이쳐지는 등 심각하게 훼손된 사실, 민주당 등이 윤리위에 회부한 사실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작가는 “민주당이 표가 깎일까봐 ‘여성 폄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위파악도 하지 않고 대응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창작 의지를 갖고 제작한 작품이 마구 훼손되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영역이 이렇게 품격 없이 다뤄져도 되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작가가 그런 의도가 없는데 표현된 내용을 가지고 여성혐오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입장에서 불쾌감과 혐오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토론의 대상이지 단죄의 대상은 아니다”면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징계 추진은 결국 예술을 정치의 도구로 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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