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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냉골'에 벌벌 떠는 아이들..유명무실 '평가인증제'

이현미 입력 2017. 01. 25. 19:52 수정 2017. 01. 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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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제로 운영.. 96% 인증 받아 / 검증 전 사전 통보 눈속임 우려 / 사후 점검도 전체의 8∼9% 그쳐 /' 아동학대' 여부에만 신경 집중 / 한파속 난방 안하는 곳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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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친 지난 23일 경기도 내 한 어린이집을 찾은 A씨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며 깜짝 놀랐다. 만 0세 아이들 방에는 조금이나마 온기가 감돌았지만 3∼5세 방은 냉골 수준이었다.

“방이 너무 춥지 않냐?”는 그의 질문에 보육교사는 “애들은 뛰어다녀서 괜찮다. 낮잠 잘 때는 온풍기를 켜준다”며 선풍기 모양의 조그마한 기구를 가리켰다.

A씨는 “발이 시릴 정도로 바닥이 찬데 단순히 온풍기로 난방이 되겠냐”며 “사회 이슈로 자주 부각되는 아동학대 여부만 신경 썼지 겨울철 난방 문제는 생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어린이집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의 평가인증에서 9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보육실의 온도 관리도 점검 항목 중 하나이지만 평가인증서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A씨는 “평가 당일에는 난방을 했거나, 하지 않았어도 감독관이 그냥 넘어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보육환경과 보육과정, 교수법, 건강·영양, 안전관리 등의 항목에서 총합 75점이 넘는 어린이집에 평가인증을 부여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5일 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평가인증을 신청한 기관의 96%가 인증을 받았다. 신청하면 거의 다 통과된 것이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는 신청제로 운영된다. 평가인증에 참여해 통과하면 정부로부터 교재교구비, 환경지원금 등을 받고 교사들에게도 처우개선 수당이 지급된다. 이로 인해 많은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제에 동참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평가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정부에서 점검 일시를 알려줘 어린이집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한 뒤 진행되기 때문이다.

20년간 보육교사 생활을 한 김모씨는 “점검 전에 미리 날짜를 알려주기 때문에 정부 점검 결과와 현실의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며 “겨울철에 난방비를 아끼는 곳이 수두룩해도 당국의 지도·점검은 전혀 효과가 없고 어린이집 원장의 양심에만 맡겨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육교사 인건비 줄이기, 저가 식재료 쓰기, 냉·난방 비용 아끼기 등은 어린이집에서 경비 절감에 나설 때마다 되풀이되는 대표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행 평가인증제는 유명무실한 셈이라는 것이다.

복지부는 3년마다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관련 점검을 하고, 인증 받은 곳의 8∼9%를 따로 선정해 매년 한 차례 사후 관리점검을 한다. 그나마 사후 관리점검은 사전 통보 없이 시행하지만 매년 전체의 8∼9%에 그쳐 어린이집당 10년에 한 번꼴이다. 지자체에서도 점검 일주일 전에 날짜를 통보해 주고 있다. 이 때문에 평가인증을 신청한 거의 모든 어린이집이 정부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보육진흥원이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에게 제출한 ‘2014~2016 평가인증 어린이집 아동학대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아동학대가 적발된 어린이집 26곳의 평가인증 점수는 93.15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김 의원은 “현재는 평가 기간만 잘 넘기면 모든 기관이 높은 점수를 받는 상황”이라며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점검 일시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른 것”이라며 “민원이 제기되거나 특정 어린이집의 법 위반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불시 점검에 나서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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