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비판하던 '이퀄리즘'은 누리꾼이 만들어낸 '창작품'
[경향신문]
최근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대체하는 근거로 일각에서 사용되던 ‘이퀄리즘’이 한 누리꾼이 만들어낸 가상의 용어로 밝혀졌다. 이퀄리즘은 온라인 백과사전인 ‘나무위키’에 기재돼 확산됐지만 사실 한 누리꾼의 ‘창작품’이었다. ‘위키’란 누리꾼들이 협업을 통해 직접 내용과 구조를 수정·추가하는 일종의 ‘집단지성’ 백과사전 사이트다.
지난해 8월2일 한 누리꾼이 나무위키에 ‘성 평등주의’라는 제목의 문서를 기재했다. 이 문서는 ‘이퀄리즘’ 혹은 ‘젠더 이퀄리즘’과 관련해 “1996년에 서구권에서 등장한 ‘이퀄리스트(성평등주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성평등에서 시작해 페미니즘의 역차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상”이라고 소개한다. 또 화제가 됐던 2014년 9월21일 영화배우 엠마 왓슨의 UN연설을 언급하며 “엠마 왓슨도 연설에서 이퀄리즘을 강조했다”며 “몇 번이나 말하는지 세어보라”고 주장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후 이퀄리즘은 나무위키의 여성문제 관련 다른 문서들에서 참고·인용되면서 외부로 확산됐다. 특히 “여성을 도와주지 마라” “여성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 마라” “여성 잘못에 책임을 지지 마라” 등의 내용인 ‘이퀄리즘 10계명’이 확산되며 이러한 문서들이 ‘엠엘비파크’ ‘클리앙’ ‘오늘의유머’ 등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을 비난하고 대체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심지어 한 진보정당의 당원게시판에서도 이퀄리즘을 주장하는 글이 게시됐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퀄리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용어라는 의혹과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들은 “이퀄리즘에 대해 연구한 논문, 학자, 저술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만 쓰지 보편적으로 쓰는 용어가 아니다” “위키의 해당 문서는 출처와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엠마 왓슨의 해당 연설 영상을 보면 ‘젠더 이퀄리즘(성평등주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젠더 이퀄리티(성평등)’이라는 표현을 몇 차례 사용했을 뿐이다.
결국 문서가 기재된 지 약 6개월 후인 지난 26일 나무위키는 토론을 거쳐 수정 작업에 착수해 29일 ‘이퀄리즘’ 문서는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이란 문서로 수정됐다. 해당 문서를 최초 작성한 누리꾼은 접속 차단 조치됐다. 이 누리꾼은 트위터에서 “내가 문서 작성은 했지만 이퀄리즘을 만들진 않았다. 이퀄리즘은 존재한다. 페미니즘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려 하는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의 수요에 의해 생성된 사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논리의 빈약함이 폭로된 것”이라며 “자신이 창작한 정보를 자신이 인용해 지식의 권위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보편적 지식이 무너진 세계에서 어떤 지식을 인용하고 어떤 지식을 습득하냐는 문제가 생겼다. 시험문제 답안지처럼 정리된 지식만을 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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