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맘충·한남충·급식충.. 차별·비하 일상이된 한국

서필웅 입력 2017.02.03. 19:38 수정 2017.02.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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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속 차별·비하표현 봇물/양극화 심화·공동체 해체되며 쌓여온 불만 SNS 통해 극대화/청년·중간계층 '빈곤층 몰락' 불안/사회적 강자 아닌 약자에 화살/대중들의 삶 더욱 황폐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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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20대 직장인 지영(가명)씨. 식당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던 중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젊은 부부를 보며 기분이 상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영씨는 곧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올렸다. “저녁 먹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 때문에 기분 다 망쳤어요. 음식점에서 비매너질하는 맘충들 진짜 극혐이에요.”

‘극혐’이란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의 인터넷 약어다. ‘싫어할 혐(嫌), 미워할 오(惡)’가 조합된 혐오에 ‘지극할 극(極)’ 자까지 붙은 부정적인 뜻이 매우 강한 단어다. 그러나 이 극혐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에서만큼은 더 이상 낯선 어휘가 아니다. 네티즌들이 소셜네트워크상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하나의 감정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문자 그대로 극도로 미워하는 감정이 아닌 작은 불만과 작은 불편에도 극혐이라는 표현이 쉽게 쓰인다. 극혐의 감정을 기반으로 차별과 비하의 ‘혐오 표현’이 담긴 글들도 양산되고 있다.


◆어느새 일상화한 혐오 표현

이는 혐오 표현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 결과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방통위에 따르면 차별이나 비하 관련 시정요구 건수는 2011년 4건에서 2016년 7월 기준 1352건으로 늘었다. 300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저장소, 카카오, 네이트, 메갈리아, 네이버 등 대형 커뮤니티들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사실상 현시점에서 인터넷 문화의 중심지들에서 혐오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아예 차별이나 비하의 뜻이 담긴 신조어들이 탄생되기도 한다. ‘한남충’ ‘맘충’ ‘급식충’ 등의 신조어는 그 함의(含意) 안에 어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혐오의 감정이 담겼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전문기업 다음소프트가 2011년 1월 1일∼2016년 5월 게재된 블로그 7억225만3521건과 트위터 92억4959만7843건을 분석한 결과 ‘한국남자’와 ‘벌레’를 조합한 신조어인 한남충이 24만796회나 등장했다. 

이 단어는 2015년 8월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짧은 기간에 수십만명의 인구가 SNS를 통해 언급하는 일반적 단어가 됐다. ‘몰지각한 엄마’를 뜻하는 맘충이라는 신조어 역시 2015~2016년에만 7만여 차례 가까이 사용됐다.

어떻게 해서 혐오라는 위험한 감정이 일상적 감정이 됐을까. 혐오 표현이 최근 나타난 병리현상의 반작용이라고만은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역감정과 남녀갈등 등 혐오 표현의 소재가 되는 여러 병리현상은 한두 해 전에 우리 사회에 나타난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혐오를 낳는 문제들은 짧게는 10여 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이라며 “원래 우리 사회에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던 사회적 병리현상이 SNS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표출하는 혐오의 감정은 과거부터 내재한 것으로, 오히려 우리 사회의 오랜 구조적 문제가 SNS라는 창을 통해 혐오라는 형태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2000년대 들어 양극화가 극심화하고 공동체의 해체와 파편화는 가속화했다”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의식 속에 루저 의식과 패배의식, 분노, 원망, 억울함 등이 오랫동안 쌓여 있다가 외부의 불만에 대해 투사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혐오감정이 대중들의 삶 더욱 황폐화시켜

문제는 SNS를 통해 시작된 혐오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로 내재화하는 경우다. 젊은 층과 중간계층의 ‘불안’은 ‘혐오 표현의 일상화’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황과 취업난 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신 또한 추락한다는 불안감이 기존에 내재한 혐오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교수는 “중간계층의 경우 불공평한 사회구조를 만든 상층에 대한 불만도 크지만, 하층계급으로 몰락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더욱 크다”며 “자신이 몰락하고 있다는 신호가 하층계급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고 혐오 표현이 주로 사회적 강자가 아닌 약자를 향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혐오범죄’는 이러한 공포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가 됐다. 강화한 공포는 혐오의 감정을 오프라인까지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됐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 남녀간의 갈등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급속히 확산한 것은 이러한 이유다.

혐오의 표현도 더욱 보편화하는 모양새다. 하 평론가는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혐오의 감정을 토해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그러한 표현이 일상화·보편화한다”며 “최근 혐오 표현의 수위가 더 높아지고 심지어 희화화해 농담의 재료로까지 쓰이는 등 혐오의 감정에 둔감해지고 있다”고 최근 흐름을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이른바 ‘디스’(타인을 공격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를 기반으로 하는 힙합음악이 인기를 끄는 등 대중문화도 이런 대중의 기호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했다”면서 “이러한 혐오 표현의 일상화가 대중을 혐오의 감정으로 내몬 사회의 황폐화를 가속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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