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舍廊아, 사랑아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입력 2017. 2. 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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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주요섭 경희대 문학기념비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舍廊)은 사랑채에 거처하는 손님과 안주인 사이에 싹트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함축한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국민일보DB
경희대 고황문화동산에 세워진 주요섭 문학기념비.
주요섭이 사용했던 안경과 반지, 음성이 담긴 녹음테이프 등의 유품(왼쪽)과 고황문화동산 전경.
주요섭

“음력으로 보름께여서 달이 낮같이 밝은데 은빛 같은 흰 달빛이 방 한 절반 가득하였습니다. 나는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아서 고요히 풍금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이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마는 하여튼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아서 고요히 풍금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니 모시 치맛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더 한층 예뻐 보였습니다.”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중에서)

소설가 주요섭(1902∼1972)은 일제 강점기에 사회비판적 소설을 다수 남겼지만 대표작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가려져 다른 작품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들이 소설의 제목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기억한다. ‘사랑손님’과 ‘사랑방 손님’은 어감이 확연히 다르다. ‘사랑손님’은 ‘사랑방에 든 손님’과 동시에 ‘사랑하는 손님’으로 읽힐 수 있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랑방 손님’이라고 한정을 지으면 투박하고 통속적인 이미지만 남는다.

주요섭의 문학기념비가 세워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를 최근 찾았다. 중앙도서관 오른편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아담하고 전망이 좋은 고황문화동산을 만날 수 있다. 자연석과 정비된 산책로가 있는 야트막한 동산은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다. 동산 내부는 경희대 교수·동문과 문단 시인의 시 34편이 돌에 새겨져 있다.

주요섭 문학기념비 전면엔 그의 대표작 ‘사랑손님과 어머니’ 중 일부 내용이 새겨져 있다. 문학기념비는 원래 1984년 주요섭 작가의 12주기를 맞아 경기도 금촌기독교공원묘지에 세워졌다. 그러나 2004년, 주요섭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면서 묘소가 국립대전현충원(국가유공자묘역 507)으로 이장돼 유족들은 문학기념비를 경희대에 기증했다. 주요섭은 1955년부터 1969년까지 이 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사랑의 프리즘’으로 드러낸 모순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여섯 살 난 유복녀를 데리고 사는 젊고 아름다운 과부의 집에 남편의 친구이기도 했던 젊은 남자가 하숙을 들고, 이들 사이에 연정이 싹트지만 그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의 봉건적 윤리 때문에 이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신파로 흐르기 쉬운 주제를 천진한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애잔하고 격조 있게 그렸다.

작품에서 두 남녀의 사랑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한다는 말에 매일매일 달걀반찬이 오른다든지, 아저씨가 줬다는 꽃을 바라보며 생전 열어보지 않았던 풍금을 열고 연주하고, 그 꽃이 마른 뒤에도 찬송가 갈피에 꽂아두는 행동을 통해서 사랑손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가는 어머니의 사랑이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어머니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를 반복하거나 “아빠 하나 있으문” 하는 어린 딸의 말에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는 말로 억압된다.

주요섭에게 사랑은 일종의 프리즘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제도와 관습은 이 작품과 ‘아네모네의 마담’ ‘첫사랑 값’ 등 일련의 연애소설을 통과하며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가부장적인 억압과 편견 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의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과부의 재가를 금지하는 유교 관습을 떨치지 못하고, ‘첫사랑 값’의 ‘나’는 유학 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만 상대가 조선인이 아니라는 점과 조국이 처한 식민지 현실로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한다.

주요섭은 1920년 매일신보를 통해 등단한 뒤 만 70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40여편의 소설과 시·희곡·동화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한국 현대문학사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한 편이다. 첫사랑 값, 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등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긴 했지만 이로 인해 애정소설 작가, 통속소설 작가로 그릇되게 알려져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주요섭의 초기 작품은 중국 상하이 유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계급의 비참한 생활상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그 밑바탕에는 강한 휴머니즘이 깔려 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뒤 미국 이민 1세대들의 삶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를 발표했다. 이후 작품 활동은 휴머니즘이 애정의 세계로 승화돼 애틋하고 소박한 경지로 발전했다. 광복 후의 작품들은 다시 사회적인 현실인식을 드러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

그가 작품에서 강조했던 인도주의적 사랑은 기독교적 사랑과 맥을 같이한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의 문제를 다루는 휴머니즘과 인도주의 경향을 기독교 정신인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문학적 토양은 그가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요섭의 부친은 평양 연화동교회 주공삼 목사다. 요섭이라는 이름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형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쓴 주요한이다.

그의 기독교적 사상을 담은 작품으로 장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1935)를 꼽을 수 있다. 작가는 20세기 초 제물포에서 미국의 이주노동자로 건너간 주인공 박준식을 통해 동포와 이방인에 대한 가족 간의 사랑과 돌봄을 소설에서 재현했다. 소설 끝부분에서 30세에 제물포항을 떠났던 주인공 준식이 60세가 훌쩍 넘은 노인이 돼 로스앤젤레스 공원 거리를 굶주림에 지쳐 배회하던 중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이리로 오라’고 쓰인 교회에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벌거벗은 상이 서 있는 무대 앞에 이르자 준식은 무의식중에 꿇어 엎디었다.…준식 앞길에는 이제 다른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오직 기적의 손이 나타나서 준식을 인도하여 평화의 나라로 데려다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준식은 자신은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가장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었다. ‘오 주여, 오 주여!’하고 그는 무의식 중에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30년 이상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준식이 한계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가 바란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뿐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윤리는 사랑임을 강조했다. 소설 후반부 미국 서부지역 한인교회들의 분열과 반목을 비판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는 세속화된 교회의 타락을 문제 삼은 것이지 기독교 자체의 본질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이외 단편소설 ‘인력거꾼’(1925)은 인력거꾼들이 몇 푼의 삯을 벌기 위해 감내하고 있는 노동을 비롯한 참담한 실상을 극사실적으로 보고한다. 중국 상하이 빈민굴에 거주하며 8년 동안 인력거를 끌어온 아찡이 죽어가는 마지막 하루를 묘사했다.

단편소설 ‘살인’은 가난 때문에 인신매매 되다시피 팔려간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주요섭이 여기서 보여준 것처럼 조선 여성이 상하이로까지 팔려 간 사실에 대한 문학적 보고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단편소설 ‘개밥’은 식모가 주인집 개가 먹을 쌀밥과 고깃국을 훔쳐다가 아픈 딸에게 먹이는 내용이다. 개는 사람의 밥을 먹고 사람은 개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사이에 둔 사람과 개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한국 문학사에서 이처럼 참혹하고 눈물겨운 장면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요섭이 극사실적으로 하층민의 고통을 집요하게 표현해낸 것은 예수님의 “고통 받는 자와 함께하라”는 말씀의 실천이었다.

[주요섭처럼 생각하기]

사랑 표현은 달라진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이다

주요섭은 예수의 사랑이란 조건 없이 무한정으로 용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시라는 생각이다. 그는 ‘구름을 잡으려고’에서 ‘위대한 사랑은 모든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실패했으나 포기하지 않았고, 배반당했으나 복수하지 않았다. 망가져 버린 삶을 가족에 대한 돌봄과 사랑으로 지탱했다. 그를 움직인 힘은 기독교의 용서와 사랑이었다.

“사랑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그 사랑이 연애이거나 우정이거나 부자의 정이거나 그것은 관계없다.…사랑의 대상에 따라서 그 사람의 표현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근본 사랑은 하나이다.”(‘구름을 잡으려고’ 중에서)

그의 소설에 이방인에 대한 돌봄으로 재현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정신’은 그의 삶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17세에 고향인 평양을 떠나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어진 기나긴 유학생활을 했다. 학업을 마친 후 귀국한 그는 얼마간 서울에 머물다 이내 베이징으로 이주해 일제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추방될 때까지 생활했다.

그는 해외체류 과정에서 다수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과 교류했다. 이들은 꿈을 찾아 온 유학생과 황금의 땅을 찾아온 가난한 노동자, 기구한 운명의 여성, 그리고 이른바 ‘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양복 입은 신사 등으로 작품 속에서 재현됐다.

주요섭은 민족적 사명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유학생의 모습을 통해 식민지 청년 지식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백인에게는 ‘황금의 땅’인 미국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는 뿌리 내릴 수 없는 ‘불모의 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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