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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일베에 있어" 30년 구독 <조선> 끊고.. 매일 일베 보는 노인들

신나리 입력 2017. 02. 13. 21:20 수정 2017. 02. 1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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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진실③] 보수단체 회원들의 '애국텐트'에서 만난 가짜뉴스와 진짜뉴스

[오마이뉴스 글:신나리, 편집:최은경]

'JTBC 태블릿 pc 조작설'부터 '박영수 특검수사 성추행설'에 이르기까지 '가짜뉴스'가 보수단체(태극기 집회)의 '탄핵반대' 집회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실체를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거짓부렁 하는 것들한테는 몽둥이가 약이여. 쳐들어 가야 해."

10일 낮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보수단체 회원들이 설치한 20여 개의 소형 텐트 가운데 '애국카페'라고 적힌 한 천막에 들어서자 성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자리를 잡고 빙 둘러앉은 10여 명의 노인들이 경쟁하듯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최순실 태블릿 PC'를 조작해 가짜뉴스를 만들었다"며 JTBC와 손석희 사장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 천막은 소형 텐트 촌에 들른 이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 서울광장에 자리한 '애국텐트' 10일 서울광장에 탄기국이 설치한 20여개의 소형텐트가 놓여져 있다.
ⓒ 신나리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아래 박사모) 등 보수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아래 탄기국)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지난달 21일부터 서울광장에 이른바 '애국텐트'를 쳤다.

이들이 머무는 서울광장에는 '언론'에 대한 성토가 깃발에 꽂혀 나부꼈다. 텐트 곳곳에는 '좌파 악질 바이러스 인명진, 새누리당서 꺼져라'는 문구가 태극기와 함께 붙어있다. '내 목숨 조국을 위하여'라는 플래카드는 성조기와 텐트 앞을 장식했다. 

소형 텐트 옆에는 천막 3개가 마주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무효 서명을 받고 있는 상황실 천막과 라면, 국밥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식당 천막, 그 옆으로 카페 천막이 자리를 잡았다. 

이날 기자가 들어간 카페 천막 테이블 위에는 'JTBC 측 고소장의 문제점 및 태블릿 PC 입수 경위 해명의 문제점'이라고 쓰인 문서가 놓여 있었다. 
▲ '애국카페' 천막의 내부 이른바 '애국카페' 천막 내부에 특검을 떡검에 비유한 글이 쓰여있다.
ⓒ 신나리
문서는 JTBC가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를 비롯해 임직원을 고소한 내용에 대한 변 전 대표의 반박을 담고 있다. 앞서 JTBC는 '검찰에 제출한 태블릿 PC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유포한다'며 변 전 대표 등을 고소했다. 변 전 대표가 제기한 총 12가지 반박 중 '믿기 어려운 JTBC 편향, 더블루 K 건물관리인의 증언' 부분을 읽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다가왔다. 

"아주 열심히 보고 있네. JTBC가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대통령을 탄핵했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그 내용을 보고 매일 여기에 들러 힘을 실어주고 가. 내가 2급 장애판정을 받았는데도 집에 있자니 분통이 터져서 여길 나온다니까."

72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문서를 가리키며 "변희재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 열심히 읽어봐. 다른 건 믿을 수가 없어"라고 혀를 찼다. 그는 '우리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관계자가 카카오톡 그룹방에 자신을 초대해 진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노인은 "손석희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태블릿 PC를 조작했다는 거야.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갖고 TV에서 떠들고 신문에서 받아쓰는 거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으로 배낭을 짊어진 또 다른 노인이 다가왔다. 

1호선 녹양역 근처에 사는 그는 거의 매일 '애국텐트'를 찾는다고 했다. 노인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열심히 1번만 찍은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헛소문만 믿고 우리 박 대통령을 탄핵인지 뭔지를 시켜서 답답해"라고 하소연을 이어갔다. 오전 11시 전에 '애국텐트'에 들러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를 넘겨 집에 간다는 그의 손에 이끌려 식당 천막에 들어가 라면을 먹었다.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가방을 낚아챘다. 

"이게 뭐야! 이거 세월호 리본 아니야? 이런 걸 왜 달고 있어? 그 빨갱이 새끼들이랑 한 통속인 거야? 이거 다 잡아끊어 버려야 해." 
  
뒤통수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4명의 노인이 기자의 가방을 들고 흔들었다. 기자를 식당 천막으로 데려온 노인이 서둘러 그들을 달랬다. 

"이 처녀가 뭘 모르고 단 거야. 그냥 사람들이 나눠주니까 달았겠지. 아까 저쪽 천막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설명 다 듣고 온 사람이야. 그러지 말고 줘."

연신 가방을 돌려달라며 손을 뻗자, 그들은 "이 빨갱이 새끼들. 사고 난 걸 갖고 돈 달라, 뭐 해달라, 말만 하고. 우리는 다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뭘 그렇게 만날 처 달라고 해"라며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가방을 내려놨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노인이 "뭘 모르고 노란 거 달 수 있지만 그렇게 무턱대고 뉴스 믿으면 안 돼. 내가 30년간 조선일보를 구독하다 얼마 전에 끊었어"라고 말을 붙였다. 

"요즘 진실은 TV나 신문에 나오지 않아. 유튜브 찾아보고 그래야 알 수 있어. 자네 혹시 일베라고 아나? 내가 매일 들어가는데 거기 들어가서 잘 한번 읽어봐. 진실은 거기에 있어."
▲ 태극기를 꽂은 애국국민 자신을 애국시민으로 소개한 노인이 태극기를 꽂은 모자를 쓰고있다.
ⓒ 신나리
<조선일보>를 절독했다는 노인이 일베(일간베스트)를 권했다. 좀 전까지 가방을 들고 세월호 리본을 떼려했던 노인은 "노랑 거 붙이고 다니지 말고, 정신 차리고 일베 봐"라며 "거기 가면 빨갱이 폭도들에 대한 진실이 나와 있어. 거짓 나부랭이 뉴스에 속지 말고 일베 봐"라고 거듭 강권했다. 

이들은 기존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일베에 있었다. 노인들이 추천한 일베에 실린 '진실'이란 무엇일까. 최근 일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이끌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1999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법무부에 확인한 결과 박 검사가 성추행에 관련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지만, 일베에 게시된 글은 여전히 유령처럼 SNS를 떠돌고 있다. 

촛불집회와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을 연관시키는 글도 있었다. "거물급 고정 간첩의 측근이 술 마시고 중얼거린 말인데, 촛불집회를 5.18 광주폭동처럼 만들려고 상당수의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서울에 잔뜩 들어와 있다"는 글 역시 일베와 SNS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게시글은 "만약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헌재가 폐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짓말은 뿌리 뽑아야지" 

토요일인 11일 오후 70여 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몰려들었다. 경남 함양 1호차, 부산 23호차, 포항 1호라는 푯말이 붙은 버스에서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손에 성조기를 쥔 이들이 내렸다.

탄기국은 이날 전국에서 210만여 명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혼자 왔어? 이리 와, 나랑 같이 가." 대한문 앞에서 한 노인이 기자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의 배낭에는 60cm 이상 길어 보이는 태극기 깃발이 꽂혀 있었다. 노인은 익숙하다는 듯이 태극기를 잡아 빼 깃발을 더 높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태극기가 너무 짧아. 내일은 딸애한테 낚싯대 사다가 태극기 꽂아달라고 해야겠어."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왔다는 노인은 딱 한 번 빼고 열 한 번의 태극기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 '가짜뉴스'를 보고 원통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박사모 정광용 회장님이랑 내가 아는 사이거든. 회장님이 카톡에 보낸 글을 보니까 손석희가 최순실 PC갖고 거짓말을 한다더라고"라며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수천 개의 태극기가 휘날렸다. 온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작은 태극기를 1000원에 파는 사람도 있었다.

노인은 그 앞을 지나며 "태극기를 주는 게 아니라 파는 거야? 그럼 박사모가 아니네. 민노총에서 와서 파는 거야"라며 소리를 높였다. 이어 태극기를 사려 했던 사람들에게 "저거 민노총 빨갱이들이 돈 벌려고 파는 거야"라며 말렸다. 상인은 "저도 애국시민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주위 노인들은 이미 "민노총이래"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 박근혜를 두른 애국국민 11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넣은 천을 두르고 있다.
ⓒ 신나리
"옳습니다."
"맞습니다."
"믿습니다."

태극기 집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구호를 외쳤다. 50대 이상의 중장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20대, 30대도 있었다. 변 전 대표가 연단에 올라 'JTBC와 손석희가 가짜뉴스로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쥔 사람들이 "옳습니다"를 외쳤다. 옆에서 징을 치던 중년 남성은 "손석희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을 두른 한 노인은 옆구리를 찌르며 "봐, 이게 진실의 현장이야. 매 주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진실을 밝히라고 외치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변 전 대표부터 정광용 박사모 회장,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까지 발언을 이어갔다. 발언 중간 중간 "가짜뉴스를 만들어 배포하는 손석희를 구속 수사하라는 서명을 받고 있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태극기 집회는 오후 4시에 1부를 마쳤다.

노인은 행진을 하면 춥다고 배낭에서 모자를 꺼내 썼다. 대한문을 시작으로 숭례문 로터리, 염창교, 중앙일보사 앞을 거쳐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오는 4km의 행진 코스다. 그는 "젊은 사람이니까 거짓 뉴스에 속지 말고 진실을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하루 전, '애국텐트'에서 들었던 일베를 보라는 말이 다시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매일 일베를 봐. 역사공부도 되고 정치공부도 되고 좋은 정보가 많아. 꼭 들어가 봐."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노인이 서둘러 행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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