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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회장 일가에 시술된 내 아이의 피..엄마들의 분노 불렀다

김도균 기자 입력 2017. 02. 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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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선 진료' 논란에 휩싸인 차병원 그룹이 '제대혈 불법 시술' 의혹으로 결국 수사 선상에 올랐습니다.

산모들이 기증한 제대혈을 무단 사용한 혐의로 경찰이 '차병원'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겁니다. 경찰은 지난 13일 차광렬 총괄 회장의 집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도 벌였습니다.

차 회장 일가에게 9차례에 걸쳐, 제대혈 불법 시술을 해준 혐의를 받고 있는 강 모 교수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경찰은 차 회장 일가가 강 모 교수에게 편의나 대가를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불법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습니다.

난치병 치료를 위해 '내 아이의 피'를 기증했던 제대혈 기증자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제대혈 관리의 현주소와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 난치병 치료하는 '제대혈'이 뭐길래?

제대(臍帶)는 한자어로 탯줄을 의미합니다. 제대혈이란 아기 탯줄에서 나온 혈액을 말하는데, 제대혈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제대혈은 분만 시 아기 탯줄에 붙어 자궁 밖으로 배출됩니다. 1980년대 이전에는 제대혈이 폐기됐지만, 1980년대 말 제대혈에 조혈모세포가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조명됐습니다.

특히 1988년 프랑스에서 5세 아이가 제대혈 이식으로 혈액질환을 치료하면서, 제대혈 시술과 치료법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제대혈은 백혈병 등 각종 '난치성 혈액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당뇨병, 심장병, 파킨슨병,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등 난치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제대혈은 '제대혈 은행'에 보관됩니다. 제대혈 은행은 제대혈을 채취해 보관하는 곳인데, 기증 제대혈 은행(Public Bank)과 가족 제대혈 은행(Private Bank)으로 나뉩니다.

기증 제대혈 은행은 산모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제대혈을 연구 목적 등에 활용하는 곳입니다. 차병원은 역시 기증받은 제대혈을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해야 하는 '국가 기증 제대혈 은행'입니다.

가족 제대혈 은행은 비용을 받고, 개인의 제대혈을 보관했다가 가족이 필요하다고 하면 돌려주는 곳입니다.

■ '실효성' 떨어지는 제대혈 보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내 17개 제대혈 은행의 제대혈 보관 건수는 54만 3258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유형별로는 가족 제대혈이 49만 1967건으로 90.6%를 차지했고, 기증 제대혈은 5만 1291건이었죠.

제대혈 보관 건수는 54만 건에 이르지만, 2011년 7월 제대혈법 시행 이후 이식 건수는 556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가족 제대혈 이식 건수는 144건으로 전체 보관 건수 중 0.02%에 그쳤고, 기증 제대혈도 50.8%만 이식에 활용됐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제대혈 보관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입니다.

보관만 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 부실 관리가 초래한 '제대혈 불법 시술'

제대혈 보관과 이식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보관되고 있는 제대혈 조차도 부실 관리 논란에 휩싸여 왔다는 겁니다.

차병원의 제대혈 불법 시술 의혹이 불거지기 전부터 제대혈 은행 부실 관리 문제는 수년간 도마 위에 올랐지만, 보건 당국의 온정적인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제대혈 관리업무 심사평가 최종 결과' 자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013년과 2015년~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제대혈 은행을 대상으로 업무 평가를 실시했습니다.

2013년 1차 평가에서 16개 제대혈 은행 중 8개가 위탁동의서 미비, 제대혈 폐기 사항 미기록, 만기 제대혈 미폐기 등의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2015년 말 1차 평가에서도 17개 은행 중 7개가 부적합 판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대응은 '고치고 재검사'였을 뿐입니다.

2013년에도 결국 모든 제대혈 은행이 적합판정을 받았고, 2016년에도 재심사를 신청하지 않은 1곳을 제외한 16개 은행이 적합 판정을 받은 겁니다.

2차례에 걸친 제대혈 은행 평가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미진하게 대처해, 차병원과 같은 불법 시술 사건이 발생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꼭 필요한 제대혈…신뢰 잃으면 기증도 없다

'제대혈 불법 시술' 의혹에 아이의 혈액을 기증한 엄마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제대혈 기증 엄마들의 모임 측은 '제대혈은 단순한 아기의 피가 아니'라면서 '엄마들에게 제대혈은 아기 몸의 일부'라고 말했습니다.

"제대혈 기증에는 엄마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데 차광렬 회장 일가가 이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 돼 자칫 제대혈 기증이 확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제대혈 이식은 난치성 혈액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법입니다.

전문가들은 각종 난치병 치료를 위해 기증 제대혈을 통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국의 부실 관리로 제대혈 불법 시술이 횡행하고, 기증자들의 신뢰마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실질적인 피해는 제대혈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부는 이달 말 차병원에 대한 국가지정 기증 제대혈 은행 취소절차를 마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석 달에 걸쳐 제대혈 관리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임수연)    

김도균 기자gets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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