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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초충도, 과연 본인이 전부 그렸을까?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입력 2017. 02. 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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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화가로 살고 어머니로 기억된 여인'
'신사임당: 화가로 살고 어머니로 기억된 여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책이다.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난초 그림에 능했다. 그녀의 나이 45세 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소세양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시를 지었을 정도였다. 어숙권은 당대의 예술 동향을 기록한 '패관잡기'에서 그녀를 안견 다음가는 화가로 평가했다.

사임당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 많지만, 무엇보다 아들 율곡 이이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인 '선비행장'을 주목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7백여 자로 구성된 율곡의 '선비행장'은 사임당을 기억하고 재생하는 5백 년 역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율곡이 기술한 어머니 사임당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성품에 관한 것으로, 사임당은 온화하고 고상했으며 태도는 조용하고 섬세하며 신중하고 겸손했다. 두번째로 사임당은 어릴 때부터 경전과 문장을 익히는 등 학구열이 높았으며 바느질과 자수, 그림 등에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진정성을 들 수 있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 시어머니에 대한 예의, 남편에 대한 충언, 자녀에게 주는 교훈, 아랫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사임당이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깊었고, 혼인하여 친정을 떠날 때는 홀로 남겨진 어머니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서울 시댁에서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늘 그리워하여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본 사임당은 무엇보다 효녀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이가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버팀목이 되면서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서인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해 이이의 명예를 격상시키고 그를 신화적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신사임당은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이이의 어머니로 평가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인정받기 힘든 일이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이를 높이는 작업에 가장 힘을 쓴 사람은 송시열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신사임당을 이상적인 어머니로 부각시키면서, 신사임당이 그림을 “마지못해” 그렸다고 적었다. 송시열이 원하는 이이의 이미지에 화가 신사임당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서인은 송시열이 잡은 방향대로 율곡과 신사임당을 이상화시켰고, 나중에 가서는 신사임당이 풀과 벌레 그림을 그린 이유도 그녀가 '시경'에 수록된 시 '초충'을 형상화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사임당이 유교적 덕을 충실히 수행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17세기의 사임당은 율곡을 종주로 한 서인의 결집이 요청되던 시대의 산물이다. 처음에 사임당은 행장이나 비지 등의 율곡 관련 서술에서 그의 어머니로 언급되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구체적인 그림 작품과 함께 부덕을 갖춘 여성으로 서술된다. 송시열의 노력으로 사임당과 율곡은 모범적인 모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것은 서인들에게 이념적인 정통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다시피 한 18세기에는 사임당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송시열의 문인이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정통 서인 계열 인사들은 경쟁하듯 사임당의 그림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들은 대폭 늘어난 전傳 사임당의 그림을 감상하는 가운데 당파적 결속을 다졌던 것이다. 사임당이 동인 계열 인사들에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것을 보면 분명 그녀는 율곡을 종주로 하는 서인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서 사임당은 유교 윤리로 재구성되며 중국 고대의 성녀들과 맞먹는 위상을 갖게 된다.

19세기의 사임당 이야기는 후손인 신씨와 송시열의 후손들이 주도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새롭다기보다 기존에 나온 내용을 종합하면서 심화한 것이다. 그들은 노론에 연원을 둔 인사들이었지만 당파적 결속보다는 서화 소장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역사적 인물로 이미 명성이 난 사임당의 작품을 만나거나 소장하는 것이 이 시기의 인사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109, 110쪽)

오늘날 신사임당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그림은 상당수가 18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혹은 신사임당의 후손이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등장한 작품들이다. 그림의 종류 또한 산수화, 포도, 난초, 풀과 벌레, 꽃과 풀, 물고기, 대나무, 매화 등으로 다양하다. 이 그림들에는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란이 따라다녔고, 유명한 사람들의 글을 실어서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과연 그중에 진짜 신사임당의 작품은 얼마나 될까. 신사임당의 7대손인 이언유와 이선해는, 세상에 떠도는 신사임당의 그림은 대개 가짜라고 말했다. 진본은 대개 한두 점 정도만을 명문가에서 보배롭게 소장한다고 말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신사임당’ 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초충도에 관한 부분이다. 아들 이이는 어머니가 산수화나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는데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초충도는 18세기 이후로 ‘새로 나온’ 그림이 많다. 과연 전부 사임당이 그린 그림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8세기 이후 새로 나온 사임당의 그림에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이와 더불어 사임당이 능한 분야가 초충도라는 인식이 18세기 미술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종휘는 “우리나라 그림은 솔거의 소나무와 이정의 묵죽, 신부인의 초충이 유명하다”고 했다. 또 이긍익은 “사임당 신씨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데 포도와 풀벌레를 잘 그렸다”고 했다. 그런데 율곡이 16세기에 쓴 '선비행장'에서 사임당이 산수도와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 것을 참고하면, 18세기에 등장한 초충도에 대해서는 미술사적인 해명이 요청된다. 이들 그림 모두를 사임당이 직접 그렸다고 보기보다는,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초충도의 번성’이라는 회화 문화가 생성되었다는 것이 적당한 해석일 것이다. (49쪽)

사임당 이야기의 재료가 되었던 그림 또한 시대별로 차이를 보였다. 사임당 생존시에는 산수도가 주목받았는데, 율곡도 어머니가 산수도와 포도 그림에 능했다고 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사임당이 세상을 뜬 지 1백 년이 지난 17세기 중반에 이르면, 산수도 외에 난초 그림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새로운 그림들이 쏟아지듯 나오는데 풀과 벌레, 꽃과 풀, 물고기, 대나무, 매화 등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새로운 그림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사임당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커졌다는 뜻이다. (중략)

현재 사임당의 것으로 불리는 작품은 8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전칭 작품을 모두 사임당이 직접 그렸다고 보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그 작품들은 소재와 기법 면에서 한 사람의 그림이나 한 시대의 그림으로 보기도 어려울 만큼 작품의 양식적인 진폭이나 질적인 편차가 심하다고 한다. (111, 112쪽)

신사임당에 관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가 제한되던 시절에 시대에서 손꼽히는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녀는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였으며, 효녀이기도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신사임당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상을 투영했다. 사임당은 역사의 마디마디마다 ‘완벽한 여성상’으로 거듭 다시 그려졌다.

그렇다면 사임당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여성의 역사에서 사임당은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일까. 그림을 재료로 삼아 각 시대는 그녀를 ‘완벽한 여성’으로 소환했다. 다시 말해 사임당이라는 어젠다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대변하는 젠더 정치의 구심이었다. 17세기의 이데올로그 송시열은 사임당의 그림을 놓고 “율곡을 낳으심이 당연하다”며 사임당을 부인의 덕을 갖춘 모범 여성이라고 했다. 18세기 인사들은 사임당의 그림이 '시경'의 뜻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여 유교적 실천의 한 행위로 보았고, 사임당을 태교와 교육으로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낸 모범적인 어머니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사임당은 어머니의 이념적 모델이 되었다.

성공한 모든 아들에게는 어머니가 있지만, 그 모든 어머니가 역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다. 지난 5세기 동안 그녀는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완벽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왔다. 근대 이전의 남자들은 그녀를 통해 당파의 결속과 문화적 자존심을 주문했고, 근대 이후 각종 권력은 그녀를 통해 세상의 여자들을 훈계했다. 무엇보다 사임당에게는 수준 높은 그림을 그린 화가이자 대학자를 낳은 어머니라는 유혹적인 두 가지 사실이 있었기에, 다양한 이야기로의 변주가 가능했을 것이다. 자료의 대부분은 사실에 관한 것보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임당을 이야기하는가. (112, 113쪽)

이숙인 지음 | 문학동네 | 128쪽 | 10,000원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grea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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