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육아휴직 실태 리포트] "아이도 우리도 행복할 수 없었어요" 죄책감 키우는 사회

이현미 2017. 2. 1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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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보고 싶은데.. 사내 눈총에 말 꺼내기도 어려워요" <1회> 부모의 죄책감 키우는 사회/부모 10명 중 7명 직접 양육 희망/대다수가 보육시설에 아이 맡겨/무상보육 시행에도 부담은 여전/45% "인사 불이익" 17% "동료 눈치"/육아휴직·유연근무 등 이용 못해/고용 불안 비정규직은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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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 최하위인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투입된 혈세만도 80조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서다. 육아휴직으로 대표되는 일·가정 양립제도의 경우 대다수 근로자들이 이를 사용하지 못한 채 죄책감과 고통으로 점철된 ‘육아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저출산 대책의 핵심인 일·가정 양립제도의 시행 실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마음 놓고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해 본다.

“비용이나 근무상의 제약 없이 원하는 대로 양육형태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으십니까?”

“부모인 제 자신입니다.”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이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치 바늘 구멍처럼 좁아진 정규직 취업문을 뚫고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내 아이를 직접 돌보기 위해서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 등 일·가정 양립제도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고용이 안정된 사람들도 ‘사내 눈칫법’에 걸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에게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그림의 떡’이다.

세계일보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직장인 1496명을 대상으로 ‘부모·예비부모가 희망하는 영유아 양육형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실의 제약이 없을 경우 아이를 맡기고 싶은 주양육자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7명(67.9%)이 ‘본인’이라고 답했다. 눈에 띄는 건 직접 아이를 돌보고 싶다는 기혼 남성의 비율(70.1%)이 여성(64.3%)보다 높은 점이었다.
그러나 직장인들의 희망사항과 달리 이들 대다수는 어린이집·유치원 등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있었다. 응답자의 58.1%가 시설을 이용했고 직장인 기혼여성(64.3%)의 이용 비율은 전체보다 높았다.

어린이집, 베이비시터, 조부모, 아이돌보미 등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경우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안심하고 맡기기 어렵다’(29.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힘이 든다(25.3%) △비용이 많이 든다(20.9%) △갈등상황이 자주 벌어진다(17.6%) △양육자가 자주 바뀐다(3.3%) 등이 뒤따랐다. 2013년 영유아 무상보육이 이뤄졌지만 부모들이 느끼는 돌봄 비용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컸고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일·가정 양립제도를 인사상 유무형의 불이익(45.1%)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고용불안정(34.8%), 동료들의 눈치(17.5%)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일에 대한 열망은 1.2%에 그쳤다.

최근 대선주자들이 육아휴직 관련 공약을 내놓는 등 사회적 관심이 커졌지만 육아기근로시간단축, 유연근무제 등 일·가정 양립제도 전반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 등 일·가정 양립제도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48.7%가 ‘대충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름만 들어봤다’ 25.2%, ‘모른다’도 8.0%나 있었다. 5명 중 1명(18.2%)만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의 육아휴직이 근무 연속성, 전문성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직종·근무 형태, 기업 규모, 고용 상황에 따라 부모들의 양육을 돕는 다양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는 일·가정 양립제도의 개념에 대한 인식마저 저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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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들은 ‘국가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양육 과제’로 ‘육아휴직 의무화’(36.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다음으로 △근로시간 단축(17.5%)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돌봄서비스 강화(15.9%) △임신·출산·양육수당 등 지원금 확대(15.9%) △유연근무제 확대(7.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육아휴직 의무화 등 일·가정 양립제도를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94.6%)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국민의 열망과 달리 지금까지 일·가정 양립제도가 도입 및 보완되는 과정을 보면 정부에서 형식적으로 제도만 갖춰 놓았을 뿐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제시한 적이 없었다.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안 쓰면 바보가 되는 유인책’을 준 적이 없었고 노사정 합의가 필요한 일·가정 양립제도 의무화에 대한 사회적 중지를 모으려는 노력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례로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은 현재 급여의 40%, 최대 100만원으로 지난해 기준 3인 가구 최저소득(143만원)에도 못 미친다. 이렇다 보니 양육 비용 부담이 큰 상황에서 외벌이 비율이 높은 남성 직장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출산·육아와 관련해 비정규직의 고용관계를 보호해 주는 장치도 사실상 없어 계약기간 연장이 불투명한 비정규직에게 현재 일·가정 양립제도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저출산·고령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합계출산율 수치에 집중하며 과거 출산억제 정책을 펴던 시기에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던 것을 거꾸로 따라하면서 소소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편 한계가 있었다”며 “저출산은 국민의 삶의 질과 관계된 문제인 만큼 고용·주거·교육 등 사회 전반의 변화와 함께 돌봄이 가장 필요한 영아 시기의 아이를 부모가 직접 돌볼 수 있도록 일·가정 양립제도를 현실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윤지로·김준영·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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