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측 공격, 왜 강일원 재판관에 집중됐을까

김태훈 2017. 2. 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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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사건 주심 재판관의 비중 등 감안해 견제구로 '심리적 위축' 노려 / 최근 증인신문에서 던진 잇단 '사이다 질문'이 박 대통령 측 자극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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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원(58·사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핵심 표적이 됐을까.’ 22일 헌재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대통령 측으로부터 ‘국회 수석대변인’이란 비난을 듣고 심지어 재판관 기피 신청까지 당한 강 재판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다.

23일 헌재에 따르면 강 재판관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고 있다. 재판관 9명이 모두 심리에 참여하고 투표를 결론을 내는 헌재에서 주심 재판관의 역할은 외부에 알려진 것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사안의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와 증인신문을 주도하며 결정문 초안을 집필한다는 점에서 주심의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이번 탄핵심판 사건의 경우 강 재판관의 ‘존재감’이 재판장이자 헌재소장 권한대행인 이정미 재판관 못지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주심 재판관의 역할·비중 감안한 견제구”

비록 15분 만에 각하되긴 했으나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강 재판관을 상대로 기피 신청을 낸 것은 이같은 주심의 역할과 비중을 감안한 일종의 ‘견제구’로 풀이된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최종변론기일 진행과 결정문 집필, 그리고 선고 등 남은 절차에서 박 대통령 측을 최대한 의식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일반인들 눈에는 강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으로 몰아붙이고 기피 신청을 내고 하는 것이 다소 어이없어 보일 수 있겠으나, 강 재판관이 실제로 느낀 심리적 압박은 상당할 것”이라며 “당장 최종변론기일이 24일에서 27일로 연기된 점만 봐도 김평우 변호사, 이동흡 변호사 등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헌법학계를 독일 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강 재판관은 미국 유학파 출신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사법시험(23회)에 합격한 뒤 미국으로 유학해 미시간대학교에서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소송절차와 연방대법원의 헌법재판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날 변론에서 강 재판관과 설전을 벌인 김 변호사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수료하고 미국 로펌에서 근무한 대표적 ‘미국통’이다. 김 변호사는 강 재판관을 향해 “미국에서 오래 공부해 잘 아시겠지만”이란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이는 ‘당신이 나만큼 미국을 잘 아느냐’는 일종의 깎아내림처럼 들렸다는 게 일부 방청객의 전언이다. 실제로 탄핵에 반대하고 강 재판관에 부정적인 일부 진영은 강 재판관의 미시간대 석사논문에 혹시 흠은 없는지 ‘현미경 검증’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잇따른 ‘사이다 질문’에 심경 불편해진 듯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강 재판관을 ‘타깃’으로 지목한 것은 그가 평소 증인신문 때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곡을 찌르는 답변을 이끌어낸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강 재판관의 물음은 ‘이상하지 않나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미르·K스포츠재단은 좋은 취지라고 하는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왜 재단 설립 관련 증거를 인멸했나”,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인맥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들을 사기업 임원에 꽂아준 건 이상하지 않느냐”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 측은 미르·K스포츠재단을 왜 군사작전 하듯이 비밀스럽게 추진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의 설명은 “최순실씨가 재단 임원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7개 대기업 회장과 독대한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해야 할 상황이었다” 등 군색하기 그지없다.

차씨가 추천한 인물들이 낙하산처럼 KT 임원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추천’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안 전 수석 본인도 “개인의 취업을 대통령이 나서 알선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일부 누리꾼이 강 재판관을 ‘사이다 질문’으로 부르며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강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2012년 9월 여야 합의 추천으로 국회 몫 헌법재판관에 선출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여당이자 원내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최대 계파가 지금의 ‘친박(친박근혜)’이란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태훈·김민순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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