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인터뷰] "미국이 北 선제타격하면 서울은 核불바다"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주승현 | 북한이탈주민·정치학박사 2017. 2. 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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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신동아]

● 北 주민은 암살된 김정남 존재 자체 몰라
● 허리춤에 칼 찬 경호원들… 내 신변은 걱정 안 해
● 남조선 해방→초토화로 전략 바꿔
● 신심(信心) 허물어뜨려야 北 무너져
● 통일만이 한국 국민이 살아남는 길

[김성남 기자]
2월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터 잡은 미술관 겸 레스토랑 충정각에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만났다.

충정각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이웃한 건물에 자리 잡은'벙커1'에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올랭피아'를 패러디한'더러운 잠'이 전시됐다. 명화 속 누드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작품.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국회 전시에 걸렸다 모욕 논란을 부른  그림이다.

태극기를 손에 든 노인 20여 명이 "종북 세력 물러나라" "박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면서 벙커1 앞에서'더러운 잠' 전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나선 이보다 더 많은 30여 명의 경찰이 충정각, 벙커1 주변을 경비했다. 태 전 공사를 태운 승합차가 시위대와 경찰 병력을 뚫고 충정각 앞에 도착했다. 국가정보원 혹은 경찰청 소속으로 보이는 경호원 5명이 내렸다. 경호원은 경비하던 경찰 병력을 벽을 보고 서 있게 했다.

"김정남 암살은 스탠딩 오더"

2월 13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김정은 이복형)이 습격을 당해 사망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김정남 암살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였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내 신변은 걱정 안 해"라고 말했으나 충정각 안은 삼엄했다. 경호원들이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창문을 두들기고 시건장치를 확인했다. 경호원들은 허리춤에 칼을 찼다. 농담을 건네도 웃는 법이 없었다. 태 전 공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알아요? 한국 시민들은 부정의에는 참지 못하는 DNA를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진화했어요. 승리해본 경험도 있습니다. 6월 항쟁을 보면서 자랐죠. 최순실 국정농단이 참을 수 없는 겁니다. 누가 나오라 말 안 해도 뛰쳐나와요. 북한 사람들도 의심하고 하나씩 알아가고 행동해 저항하게 만들어야 통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태 전 공사는 평양외국어학원,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덴마크, 스웨덴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2000년 영국 근무를 시작해 2014년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2016년 7월 한국으로 망명해 12월부터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北 붕괴하지 않은 까닭

태 전 공사는 "아들을 노예주의 노예로 살게 할 수 없어 탈북했다"면서 "수령에 대한 신심(信心)을 허물어뜨려야 북한이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또 "핵, 경제 병진노선의 실체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핵 타격"이라면서 "한국에서 그간 나온 북한 붕괴론은 주관적 바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통치 체제만 바뀌어도 북한이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할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의 신심이 수령에서 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에서 북한 붕괴론이 크게 4차례 거론됐습니다. 옛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시기,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사망 직후 시기, 권력 투쟁 가능성이 제기된 장성택 숙청 전후 시기입니다. 북한의 통치구조가 이 같은 위기를 거치면서 내구성을 입증해낸 형국입니다. 문명사적 상식이나 인류의 보편적 발전 과정에서 볼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체제가 유지된 까닭이 뭘까요.

"6·25전쟁 이후 북한이 위험하거나 힘들던 때를 기준으로 북한 붕괴론이 나온 듯합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후 아사(餓死)가 일어나자 세계는 북한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봤습니다만 사람이 죽고 경제가 혼란을 겪는데도 살아남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혼란, 사회적 무질서가 나타나면 나라가 망하거나 체제가 붕괴된다고 봅니다만 북한에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주관적인 바람일 뿐입니다. 북한은 달라요. 경제생활의 악조건이 조성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만으로는 체제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상과 이론에 따라 사람을 단합시켜 위기를 극복하기에 경제적 혼란으로 인해 체제가 붕괴하지 않습니다."

▼ 사상과 이론이 붕괴를 막았다?

"고난의 행군 시기 때도 북한에서 체제 유지를 의심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고위직, 엘리트는 더욱 그랬고요. 어떻게 극복했느냐. 신념과 이념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극복이 가능했습니다. 고난의 행군보다 더 어려운 6·25전쟁 때도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한국도 파괴됐지만 북한은 큰 도시가 다 잿더미가 됐습니다. 잿더미를 헤치고 일어난 것은 공산주의가 옳다고 믿었기에 사회주의로 나가면 누구나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 때 주민에게'곤란과 시련은 동구권 사회주의가 예견치 않게 붕괴해 경제적 관계가 끊어져 생긴 일시적 어려움이다. 전쟁 때 잿더미에서도 헤집고 일어나지 않았느냐, 이건 일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우리는 신심을 갖고 살았어요. 붕괴한다고 여긴 것은 외부에서 잘못 판단한 겁니다."

"수령에서 돈으로"

▼ 신심이 여전합니까.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가거나 이웃집 사람이 배가 곯아 죽어나가는 일이 북한에서 더는 없습니다. 북한 경제가 과거처럼 혼란스럽지도 않고요. 경제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는 듯한데 북한 붕괴론이 왜 다시 머리를 드느냐?"

▼ 신심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거죠. 바로 그겁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신심과 마음이 변해야 허물어집니다. 경제적 곤란은 다 극복할 수 있어요."

▼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념이 바뀌었습니다.'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집단주의 정신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수령에 대한 믿음 또한 존재했고요. 이제는 돈이 없으면 죽는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장마당에 나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먹고사는 사회예요. 신심의 대상이 수령에서 돈으로 옮겨가는 거죠. 북한 노동자가 베트남, 라오스, 아프리카 나라 등에 가서 일합니다. 북한이 과거에 배로 쌀 실어다주면서 돕던 나라에 인력을 파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 같은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공산 정권에 미래가 있다고 여길까요. 수십 년을 버텼으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는 거죠. 북한 주민들의 마음과 사상이 지금 달라지고 있어요."

▼ 시장이 북한 주민의 생명줄이군요.  

"김정은이 장마당을 닫으면 폭동이 일어납니다. 장마당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북한 장마당을 한국 물건과 돈에 의해 가동되도록 만들어야 해요. 정부 주도의 대북 지원을 더는 하면 안 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기도 하고요. 한국이 제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중국에 제재하라고 말합니까. 대북 지원에 나서면 세계 정치에서 한국이 예측 불가능한 나라가 됩니다.

북한에 전단을 날려 보낼 때 5달러 지폐를 붙인다고 가정해봅시다. 10리 밖에서도 전단을 찾으러 올 겁니다. 북한 주민을 계몽하는 사업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엮어 진행했을 때 효과가 있습니다. 북한 주민에게 직접 돈을 전달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서울 상공을 지향하고 서울로 달려오게 해야 합니다.

"노예해방 위해 일어서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2월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동북아 안보 정세 전망과 대한민국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원칙 있는 대북 협력이 중요합니다. 한국 농민들이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더군요. 북한에 쌀을 지원할 때는 이 쌀이 한국 국민이 먹으라고 보낸 쌀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인프라 협력과 관련해서도 이 도로는 한국 국민이 돈을 내 닦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죠. 지금까지의 대북 협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왜 한국은 잘살까 의문을 갖게 해야 합니다. 북한의 교육 체제는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의문이 생기면 알고 싶어 하고, 알아서 해답을 찾으면 행동하는 게 사람입니다."

신동아가 창간 85주년을 맞은 20 16년 11월호에서 리서치 기업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20세 이상 전국 남녀 1000명을 표본으로 삼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가까운 장래에 남북통일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50대 이상은 61.2%, 40대는 61.6%가'원한다'고 답했으나, 20대는'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5.6%로 더 많았다. 30대는'원한다' 49.2%,'원하지 않는다' 50.8%로 엇비슷했다.

▼ 한국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왜 통일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북한을 잘 모릅니다. 호기심도 없고요. 관심 대상이 아닌 거죠. 요즘 강연을 많이 하는데 청중의 90%가 60대 이상입니다. 통일이 언제 이뤄지느냐고 열성껏 묻습니다.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나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습니다."

▼ 통일하면 삶이 더 버거워지리라고 여기는 듯도 싶습니다.  

"뭣 하러 부담을 지느냐는 거죠. 물질적 풍요로움 탓입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데 복잡해지는 게 싫다는 거죠. 한국 사회가 민주화됐습니다. 지난 시기에는 반공 교육을 철저하게 했죠. 요즘은 반공 교육을 하면 정치 선전으로 욕을 먹습니다. 민주주의에 장점, 단점이 각각 있습니다. 북한 현실을 젊은이에게 똑바로 알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 반공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세습 통치를 반대해요. 북한은 노예주(主)가 다스리는 노예사회입니다. 노예사회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느낌이 듭니까. 젊은이라면 노예해방을 위해 일어서야죠. 서구의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개념을 다 받아들입니다.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죠. 그러나 노예사회는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되는 체제입니다."

태 전 공사는 "핵 개발 이후 북한은 대남 전략을 남조선 해방에서 초토화로 바꿨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핵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겁니다. 북한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없애려는 마당에 나를 죽이려는 사람과 결혼할지, 말지 망설이는 겁니다. 통일은 이득, 손해를 계산할 문제가 아니에요. 통일만이 한국 국민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핵은 南 겨냥"

▼ 북한의 대남 전략이 언제, 어떻게 바뀐 겁니까.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확대집행회의에서'핵, 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합니다. 북한은 한국과 군비 경쟁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경제력이 안 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대칭 무기로 싸우는 수밖에요. 한국을 초토화할 지름길이 핵무기예요."

▼ 핵, 경제 병진노선이 가능한 얘깁니까. 핵을 가지면 제재를 당하는데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킵니까.  

"북한 체제의 목적은 딱 하나예요. 체제 유지! 암흑시대가 이어져도 김씨 일가의 장기 집권에 도움이 되면 뭐든 다 합니다. 핵무기도 갖고 경제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북한에 전기가 부족합니다. 밤이면 평양도 새카맣거든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게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결할 수 있어요."

▼ 핵 포기 후 민수용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 된다는 건가요.

"핵 포기 안 해도 가능해요. 김정은이 결심만 하면 외화를 벌 일이 많습니다. 중국이 10년 전부터 단둥-개성-서울을 잇는 고속도로를 놓자고 합니다. 통과료를 북한에 주겠다는 조건이죠. 도로가 이어지면 단둥에서 서울로 가는 차에 화물이 가득 찰 겁니다. 냉장고든, 휴대전화든 배로 가는 것보다 육로로 가는 게 기업 처지에서 유리하니까요. 서울을 찾는 중국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고속도로를 내달릴 것이고요. 북한 농민이 중국에 놀러 가는 한국 관광객과 물자를 가득 실은 차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고속 경제 발전 가능"

태영호 전 공사는 2월 7일 ‘신동아’와의 대담에서 “노예주는 노예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역사 발전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의는 항상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김성남 기자]
▼ 김정은에 대한 신심이 약화하겠죠.

"신심이 약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김정은 저거 없애버리고 한국과 함께 살자는 마음이 들겠죠. 사정이 이러니 북한 처지에서 중국이 매달 10억 달러씩 준대도 고속도로를 놓을 수 없는 겁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제안한 게 있습니다.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가스관입니다. 가스관이 지나가는 길에 가스발전소를 세우면 에너지 문제가 단박에 해결됩니다. 동유럽이 서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 통과료를 받아 먹고살아요. 푸틴 제안만 받아들여도 전기 걱정할 일이 없죠. 통치체제가 바뀌면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이 가능합니다."

▼ 김정은이 체제 유지에 성공할까요.  

"성공할 것 같아서 막으려고 한국으로 망명한 겁니다. 한국 시민이 북한의 실태를 잘 몰라요. 한국 시민을 계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이'대북 제재 아무리 해봐야 김정은이 핵 포기 안 한다'면서 동결 협상을 먼저 한 후 순차적으로 북한 문제를 풀자고 주장합니다. 핵 실험 더 안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안 쏠 테니 제재를 풀라는 게 김정은의 요구거든요. 그것을 따르자는 겁니다."

▼ 말씀한 방식의 담판을 워싱턴이 평양과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동결부터 하자고 주장한다니까요. 핵 문제를 일단 덮고 김정은에게 인센티브를 주자, 돈맛을 들여 북한을 변하게 하는 게 통일로 가는 길에 이롭지 않으냐는 주장인데 논리적으로는 훌륭해요. 북한이 핵무기, ICBM을 다 해체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이 한국 대통령이라면 합의문에 서명하겠습니까?"

"검증 가능 核 폐기 어려워"

▼ 미국과 중국이 담보하면 서명할 것 같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국 국가주석을 다 앉혀놓고 서명했다고 가정합시다. 국제사회가 핵무기를 폐기한 북한에 1000억 달러를 지원합니다. 3년, 4년 후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뒤틀어집니다. 김정은이 갱도에 숨겨놓은 핵무기를 딱 꺼내다'너희 그러면 나 이거 쏠래'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핵 폐기가 이뤄질 수가 없어요."

▼ 말씀의 요지를 알겠습니다. 북한 주민이 각성해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죠.

"해법은 오직 그것 하나예요. 북핵, 북한 문제를 분리한 단계적 해결 방안은 말이 안 됩니다. 국제사회가 이제껏 몇 번 속았습니까. 또 사기 칠 겁니다. 속여온 체질이 변할까요? 변하지 않아요. 북한 사람들은요? 김정은 위에 배다른 형 김정남, 이복누이 김설송, 같은 피 김정철이 있다는 것도 몰라요. 사람들이 내부 실상을 아는 날 큰일이 나기 시작합니다. 북한에 정보를 꾸준히 넣어 각성하게 해야 합니다."

디바이드 앤드 룰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2월 7일 미국 육군협회가 워싱턴에서 개최한 미사일방어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타격할 공격 역량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면서 북한 선제 타격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미국이 북한 핵 시설 등을 선제 타격하는 것은 어떻게 봅니까.

"선제 타격할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이 못 한다는 것을 북한도 알아요. 김정은은 미국의 공격으로 평양이 불바다가 되는 것은 괘념하지 않습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북한은 노예사회예요. 인민이 다 죽어도 노예주 안전만 보장되면 됩니다. 노예주는 노예를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살아남을 벙커만 있으면 됩니다.

미국이 선제 타격해 얼마나 손실이 생기는지는 김정은의 머릿속에 없어요.'미국에 맞는 순간 나도 한국을 때린다, 지금껏 준비한 핵폭탄과 장사정포 다 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겁니다. 선제 타격이 일어나면 서울도 완전히 불바다가 됩니다. 미국이 그런 엄청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 북한에서는 왜 쿠데타, 암살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철권통치를 한 다른 나라에서는 암살, 쿠데타가 빈번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어떻게 하면 쿠데타를 막을지 별의별 방법을 다 연구했습니다. 국군은 군력이 합동참모본부에 집중돼 있습니다만, 북한은 달라요. 통일적 지휘 체계를 정립하지 않았습니다.

최전방의 전연군단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가 김정은의 지시를 받아 지휘권을 행사합니다. 평양시 외곽은 수도방위사령부가 지킵니다. 수도방위사령부는 총참모부장 말을 절대로 안 듣죠. 평양시 내부는 호위사령부(호위총국)가 관할합니다.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은 1개 소대도 평양에 들어오지 못해요. 호위사령부 무력 외에 국가안전보위성, 인민보안성에도 무력이 따로 있습니다.

이렇듯 김정은을 정점으로 삼아 종적으로만 연결됐지 횡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없습니다. 김정은이 어느 곳에서 살며 어느 곳에서 집무하는지 아는 사람도 극소수예요. 쿠데타가 일어나면 우선 두목을 잡아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알아야 잡죠."

▼ 세계가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북한 외교관들이 가진 자기모순이 심할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자기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죠. 그런데도 탈북을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연좌제 탓입니다. 자식이 한 명이면 그나마 나은데 두 명이 넘으면 한 명은 평양에 남겨둬야 합니다. 7~11세 때는 무조건 북한에서 소학교를 다녀야 합니다. 14~16세 때도 북한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고요. 자식을 데리고 나오기가 힘든 구조입니다."

"부정의는 정의 못 이겨"

태 전 공사는 아내, 두 아들과 서울에 왔다.

"운이 좋았죠. 아들을 노예주의 노예로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지 불확실한 것도 탈북을 못하는 또 다른 이유예요. 외교관 정도면 북한에서도 잘살거든요. 모든 게 불확실한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외교관이 아닌 평양의 간부들은 세계 돌아가는 것을 얼마나 이해합니까.

"이해의 정도가 완전히 낮죠. 핵심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은 외국에 내보내지도 않습니다. 조직지도부 인사 중 외국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 10명도 안 돼요."

▼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외부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영향력이 강하지 못합니다. 북한은 중국에 상당히 자주적이에요. 평양이 베이징의 약점을 잘 압니다. 미국을 견제하려면 말썽을 일으켜도 북한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 거죠."

▼ 한국 사회에 탈북민이 3만 명입니다. 탈북민을 끌어안는 것은'작은 통일'입니다.

"탈북민은 통일의 선봉투사예요. 한국에서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일을 앞당기려 투쟁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탈북민입니다. 역사 발전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의는 항상 승리했습니다. 부정의는 정의를 이기지 못합니다. 5년, 10년, 15년이 될지 모르겠으나 김정은 정권은 무너집니다. 북한 사람들이 걸어오느냐, 달려오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투쟁하는지에 달렸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부정의와 싸우는 것을 본 한국 시민들처럼 탈북민도 저항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주승현 | 북한이탈주민·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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