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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아냐? 펄펄 끓는 목욕탕 휴대폰 갈등

이슬비 기자 입력 2017. 02. 28. 03:06 수정 2017. 02. 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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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체 사진 찍힐라" 공포
방수폰 반입 늘어 곳곳서 시비
탕에서 영상통화하는 고등학생·아이 사진 찍어주는 엄마들..
"여기서 뭔 짓" 세대갈등도 유발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김모(36)씨는 지난달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여중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여중생 2명이 샤워를 하는 김씨 방향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키득키득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김씨가 "지금 몰카(몰래카메라) 찍은 것 아니냐"고 하자, 학생들은 "사진 안 찍었는데"라며 반말로 응수했다. 김씨가 휴대폰을 빼앗으려 하자 학생들은 "내 폰 내가 쓰는데 왜 참견이냐. 미친X이 왜 폰을 뺏으려고 난리야"라며 욕설을 했다. 화가 난 김씨가 "경찰 불러"라고 고함치면서 한바탕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최신 방수(防水)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공중목욕탕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목욕탕 안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늘면서 '몰카 공포'가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 방수 기능이 없는 스마트폰을 목욕탕 안으로 가져가려면 비닐로 만든 방수팩에 넣어야 했다. 이 방수팩은 더운 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김이 서리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불편했다. 또 부피가 커서 몰카를 찍으려 해도 들통나기 쉬웠다. 그러나 방수 스마트폰은 물속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아졌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몰카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몰카 공포 때문에 아예 목욕탕 발길을 끊는 사람들도 생겼다. 직장인 강모(여·26)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피로를 풀러 목욕탕에 가곤 했는데 요즘은 휴대폰 사용자가 많아져 아예 가지 않는다"며 "인터넷에 가끔 목욕탕 나체 사진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지난 7일에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목욕탕에서 찍은 남성들의 나체사진이 올라와 문제가 됐다.

특히 어르신들이 목욕탕 내 스마트폰 사용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세대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안모(여·30)씨는 최근 목욕탕에서 고객과 카카오톡을 하다 봉변을 당했다. 한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급하면 나가서 하라"며 고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회사원 최모(33)씨도 "점심시간 짬 내서 사우나를 할 때도 언제 급한 전화가 올지 몰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요즘 젊은것들은 목욕탕에서도 전화기를 쥐고 산다'며 욕을 퍼부어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목욕탕 주인과 목욕관리사들도 방수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기도 안성의 한 사우나에서 7년째 목욕관리 일을 하고 있는 김모(56)씨는 "1년 전만 해도 목욕탕 안으로 휴대폰을 들고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하루 서너 명씩 있다"며 "영상통화를 하는 고등학생을 뜯어말리고, 엄마들에게 아이들 사진 찍지 말라고 부탁했다가 항의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일부 부모는 어린아이가 목욕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방수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A씨는 매주 유명 목욕탕에서 노는 아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 A씨는 "타인의 신체가 나오지 않고 아들의 사진만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목욕탕 갈 때 방수폰은 필수 준비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아이 사진을 찍는 부모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주부 김다혜(31)씨는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이지만, 아무리 아이의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은 "목욕탕 내 몰카 촬영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몰카 촬영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휴대폰을 강제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은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압수하려면 확실한 물증을 갖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피하는 스마트폰 이용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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